히스토리 D 3-1

제3부 죽음 준비

by 김진광

제1장 죽음 준비를 위한 프롤로그


지금까지 제1부 「대한민국 죽음사용설명서」에서는 죽음과 관련해 참고할 만한 자료들을 살펴보았고, 제2부 「사후생」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였다. 이제 죽음을 준비하려는 시점에서 珍光의 마음은, 이 모든 것을 잘 알지 못했던 때보다 오히려 더 착잡하다.


먼저 사후세계에 대한 논의와 관련하여, 한국처럼 죽음 담론이 척박한 현실에서 2025년에 ‘죽음 후에도 의식은 존속한다’는 선언이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의식’ 대신 ‘영혼’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것은 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신념과 저항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후세계 연구에서 앞서가는 나라들에서도 ‘의식’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이는 의식을 과학의 영역으로 보고, 과학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규명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의식’을 ‘영혼’으로 바꾼다면 과학과 영성은 평행선이 되어 따로 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주사위를 던져 어느 면이 나올지를 신에게 기도하여 아는 것과, 확률론으로 접근하여 아는 것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동전을 던져 어느 한 면이 나올 확률이 2분의 1이라고 해서, 두 번 중 한 번은 반드시 특정 면이 나온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학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태도다. 실제로 던져보면, 열 번 중 열 번 모두 같은 면이 나올 수도 있다.


분명 한계가 있다. 사후세계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암이나 치명적인 질환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사후세계는,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자가 실로암 못에서 눈을 뜨는 기적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운 영역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가 실려 있는 생존기계는 믿을지언정,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생각의 속도는 망상에 불과하다고 믿는 본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잘 모르는 것이 내세를 더 가치 있는 세계로 만드는 필요조건일지도 모른다.


당장은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자.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현실은 냉정하다. 친절하고 평화로운 죽음을 원하는 고령의 예비환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현실을 살펴본 결과는 여전히 비관적이다. 의료법과 노인복지법 사이에서 밀림처럼 우거지고 난마처럼 얽힌 수많은 실험적 서비스들은 주체성을 잃은 채, 유물론적 죽음관에 매몰된 일본의 프로그램을 뒤쫓아가기에 바쁘다. 2025년도에도 ‘간호간병 통합서비스’와 ‘의료중심 요양병원’에 대한 실험 계획이 발표되고 일부는 이미 시행 중인 모양이다. 그러나 중증 환자가 소외되고 요양병원의 반발이 거세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지원하는 쪽이나 지원을 받는 쪽 모두 손익계산서에 매몰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집에서 가족 중 한 사람이 사망하거나 사망에 임박한 것으로 보이면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도 여전히 분명치 않다. 119에 연락하여 어렵게 찾은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의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지는 순간, 의사가 사망을 판정하기 전까지는 연명의료의 라인과 튜브에서 벗어날 수 없다. 119는 사망을 추정할 뿐, 사망을 판정하는 권한은 오직 의사에게만 있다. 한국에는 주치의 제도가 없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DOA(병원 도착 시 사망)라는 편법이 생겨난다. 112에 신고하면 사망진단서가 시체검안서와 검시필증으로 바뀌는 것 외에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가족은 잘못하면 피의자 조사를 받기도 하고, 시신은 부검을 거쳐야 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아예 119에 연락하지 말라고 권한다. 심폐소생술과 연명치료의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방문간호 스테이션’(한국의 경우, 유사기관으로 건강보험공단 대표전화라고 추정)이나 주치의 또는 ‘케어매니저’(한국의 경우, 재가복지센터의 사회복지사와 유사한 역할로 추정)에게 연락하라고 한다. 한국에서 비상 콜센터가 있는지조차 불분명하고, 있다 하더라도 토털케어를 제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상조회사나 병원 장례식장에 연락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의사의 진단과 경찰의 검시 절차를 피할 수는 없다. 이 모든 과정은 애도의 마음에 집중해야 할 가족에게 불편하고 복잡하게 다가오며, 시신은 두 번 죽어야 할 수도 있다.


마음 같아서는 비싼 돈을 내고 스위스를 가지는 못할지언정, 친절하고 편한 죽음이 보장된다면 차라리 유사한 제도가 있는 나라에 가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나라가 실제로 존재할 것 같지도 않고(대부분 까다롭고 귀찮은 절차를 요구한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의사조력자살도 상당히 엄격한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통증이 심한 환자가 기다리기에는 너무 느리다.


지방은 소멸하고 있으며 병원에서 맞는 죽음은 이미 70%를 넘어섰다. 이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고령의 만성질환자를 위한 의료제도를 보고 있자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유리 제품이 연상된다. 화로의 불은 이미 지펴졌고, 컨베이어 벨트를 멈출 수는 없다. 잘못 만들어진 제품은 원위치시켜 다시 녹여 만들 수는 있어도, 불을 끄거나 벨트를 정지시킬 수는 없다. 그러다가 주목할만한 큰 사고가 나면 한동안 ‘중대재해’라는 말이 오르내리지만, 불을 끄거나 벨트를 멈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위법한 건축물도 일단 완공되면 철거할 수 없다. 이 회사의 운영을 보장하는 담보물은 다름 아닌 인간의 생명이다.


중앙정부나 건강보험공단은 큰 그림을 그린 뒤 투명한 지원을 보장하는데 그치고, 나머지는 지방정부와 뜻있는 민간이 실정에 맞게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하여 성공한 사례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융통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리와 부패도 극복해나가야 한다. 왜 아날로그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을 따라가면서, 일본보다 더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고령자 복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의 제도는 김할머니 가족의 소송투쟁과 당시 유시민 장관의 호기가 없었더라면 지금만큼도 진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6년 상반기 현재, 珍光의 결론은 지금의 70대 이상 세대가 국가의 정책과 제도의 덕을 보며 친절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이라도, 각자도생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제2장 내 몸 건강진단서


고령의 예비환자로서 자신의 몸을 한번 냉정히 점검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잘 만들어진 건강보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고령자가 병이 있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치료하려는 것도 일종의 욕심이라고 본다. 다음은 비전문가의 극히 개인적인 내 맘대로 건강진단서이다. 전문 의사가 보기에는 근거가 빈약하고 황당하게 보일지라도 양해를 구한다.


1. 건망증

나이가 들면 건망증 증세는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특히 단기 기억의 상실은 누구도 쉽게 비켜갈 수 없는 듯하다. 가족 간 대화 중에도 이름이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말이 끊기고, 같은 질문을 두 번 이상 반복하는 일이 잦다.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져 큰 불편함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것이 정상적인 노화 범위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장기 기억은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으며, 기억과 기억을 연결하는 맥락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어 다행이다.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논리는 살아 있다.


병적 건망증의 대표적인 예로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있다. 전체 치매 환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은 최근의 일이나 대화 내용을 반복적으로 잊고, 시간·장소·사람에 대한 지남력(指南力, orientation)이 저하되는 특징을 보인다. 지남력의 의미를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시장 사람’들을 잘 못 알아본다고 생각하면 쉽다.


또한 경도인지장애(MCI, mild cognitive impairment)는 정상 노화와 치매 사이의 단계로, 기억력 저하가 뚜렷하지만 일상생활은 비교적 유지되는 상태이다. 거주지의 치매안심센터에서 무료로 치매 선별검사를 받을 수 있으며, 이상 소견이 나오면 전문병원으로 연계된다.


경도인지장애 환자가 시간이 지나 치매로 진단되면, 건강보험공단의 조사에 따라 인지지원등급이나 장기요양등급(5~1등급) 판정을 받게 되고, 장기요양보험의 범위 안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인지지원등급으로 판정되면 방문요양, 방문간호, 데이케어센터 등의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5~1등급에 해당하면 재가서비스 외에 요양원 입소도 가능하다.


* 치매선별검사표(MMSE, mini-mental state exam.)


(1) 지남력 (Orientation, 10점)

오늘은 몇 년, 몇 월, 며칠입니까?

오늘은 무슨 요일입니까?

지금은 어느 계절입니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예: 병원, 집, 도시, 나라 등)

(2) 기억 등록 (Registration, 3점)

제가 말하는 단어를 따라 해 보세요: “사과, 자동차, 집”

(3개 단어를 즉시 따라 말하면 점수 부여)

(3) 주의집중·계산 (Attention & Calculation, 5점)

100에서 7을 빼보세요. 계속 7씩 빼보세요. (예: 93, 86, 79…)

또는 “거꾸로 말해보세요: ‘세계’ → ‘계세’”

(4) 기억 회상 (Recall, 3점)

아까 제가 말했던 단어 3개를 다시 말해보세요. (사과, 자동차, 집)

(5) 언어 (Language, 8점)

이 물건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예: 연필, 시계)

제가 하는 말을 따라 해 보세요: “간장공장 공장장은 공장장이다.”

종이에 적힌 지시를 읽고 따라 해 보세요: “눈을 감으시오.”

문장을 하나 직접 써보세요.

(6) 시공간 구성 (Visuospatial ability, 1점)

겹쳐진 오각형 그림을 보고 그대로 따라 그려보세요.

** 판정 기준 : 24~30점 정상, 20~23점 경도인지저하 가능성, 19점 이하 치매가능성 높음


2. 두피염

오래전부터 지루성 두피염에 시달려 왔다. 젊은 시절 두피 염증을 치료하기 위해 유명 피부과에서 처방한 스테로이드 연고를 많이 사용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영향을 준 듯하다. 하루라도 머리를 감지 않으면 가렵고 비듬이 생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샴푸를 바꾸어 사용해 보았지만, 효과가 있다가도 곧 내성이 생겨 다신 원점으로 돌아가곤 한다.


두피에 열이 많은 것이 원인으로 보이며, 이를 샴푸만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헛수고이고 열을 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향이 선택과 집중형이라 머리를 쓸 때 남들보다 뇌 에너지 소모가 많고 열도 많이 발생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뇌 사용 후 과감히 머리를 식혀주는 등 리드미칼하게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탈모도 상당히 진전되어, 앞에서 보면 정면에 작은 운동장이 보일 정도다.


하루 한 번 머리를 감는 것이 나름의 처방이라면 처방이다. 특별한 치료를 받을 생각은 없다. 머리의 열을 식히기 위해 글루텐(gluten)이 많은 밀가루 음식과 탄산음료를 피하고, 수시로 물을 마시며 스트레스나 화를 유발하는 상황을 피하려 노력하고 있다.


3. 이명(耳鳴)

가끔 오른쪽 귀에서 이명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상당히 신경이 쓰였으나, 약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동일한 주파수를 가진 소리(파도소리, 풀벌레소리, 빗소리)로 상쇄간섭(Destructive Interference)을 시도해 보니 효과가 좋았다. 이 역시 병원에서 특별한 치료받을 생각은 없다. 젊어서 수영장에 갔다가 귀에 염증이 생긴 채로 군사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영향을 준 듯하다. 그래서인지 귓속이 자주 가렵고 귀지가 잘 생긴다.


4. 치아 흔들림

아직도 치아가 몇 개 흔들린다. 임플란트를 해보니 그 옆 치아나 대칭되는 치아가 영향을 받아 약해지는 것 같다. 심하게 흔들리는 치아부터 발치할 예정이며, 추가적인 임플란트는 하지 않고 버틸 생각이다. 그 대신 질기거나 끈적이는 음식은 피하고, 콜라 같은 음료도 삼가고 있다. 칫솔질은 하루 두 번 이상 하고 있다. 치아가 약한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듯하다. 치아도 오복 중 하나라는데 감수할 수밖에 없다.


5. 비염

항상 비염 증세가 있고 콧물이 자주 나온다. 후각이 선천적으로 예민한 듯하며, 남들보다 미세먼지에 취약하다. 바닷가나 공기 맑은 곳에 가면 호흡이 후련해지는 것을 실감한다. 콧물이 자주 나오고 축농증 증세가 있는 것은 안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금연을 하면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6. 수전증

오래전부터 오른손에 떨림 증세가 있었다. 노트북을 쓰거나 인터넷 작업을 위해 마우스를 클릭할 때 유난히 손이 떨린다. 그러나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잔을 받을 때는 전혀 떨리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수전증은 파킨슨병의 전조증세라는 말이 있어 지켜보고 있다.


7. 변비

가끔 변비 증세가 나타난다. 특히 커피를 마시면 이뇨 작용이 활발해지고, 물 보충을 하지 않으면 그날은 변비로 이어진다. 그래서 배출한 만큼 물을 보충해 주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8. 야간뇨(nocturia)

자다가 소변을 보기 위해 한두 번 깬다. 이제는 소변이 마려워 잠을 깨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만족한다.


9. 거품뇨

특히 아침 첫 소변에 거품이 많아졌다. 냄새도 나는 듯하다. 야간뇨로 인해 소변 농도가 진해진 것이 원인으로 보이지만, 신장 기능 이상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다. 현재까지 비뇨기관에서 다른 증세는 없다.


10. 수면 장애(insomnia)

깊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편이다. 자다가 몇 번 깨고, 바로 다시 잠들지 못하다 보니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유튜브에서 유용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휴대폰을 버릴 생각은 없지만, 시사 뉴스 등에 빠져 들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 티브이 시청은 거의 하지 않으며, 드라마나 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은 안 본 지 오래되었다. 홈쇼핑 중독자를 보게 되는데 일체 관심이 없다.


인터넷에 댓글(comment)을 달거나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극히 유의한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문자를 남기면 내가 죽은 뒤에도 클라우드에 남거나 우주 먼지가 되어 떠돌아다닐 것 같은 상상을 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상대로 익명에 힘입어 막말을 주고받는 심리를 경멸한다.


불을 켜놓고 자는 습관이 있다. 야간뇨로 잠이 깨고 다시 잠들면서 입을 벌리고 자는 습관 때문에 구강건조증 (xerostomia)이 심해졌다. 소변을 본 후에는 반드시 물 한 컵을 마시려 노력 중이다.


11. 피부 가려움증(pruritus)

선천적으로 피부가 얇고 건조한 편이다. 아마도 모친이 늦은 나이에 출산한 탓으로 생각한다. 여름에 바닷가 태양빛에 노출되면 피부가 즉각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오래전부터 여름철 바닷가를 피하게 되었다. 피부 가려움증도 심하여 벌레의 공격에 특히 취약하다.


12. 길치(bad sense of direction)

선천적인 요인으로 추정되는데, 운동신경이 둔하고 방향감각이 취약하다. 젊었을 때 술에 취하면 반대 방향으로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금도 시내에 나가면 길 찾기에 엄청 신경을 써야 한다. 운동신경이 취약하다 보니 취미로 삼을 만한 운동이나 특기가 없는 것이 아쉽다.


13. 절주와 금연

유감스럽게도 아직 금주와 금연을 완전히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술은 거의 마시지 않지만, 끊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담배는 약한 것으로 일주일에 두 갑 정도 수준이다. 담배가 더 몸에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처럼 글을 쓰다 보면 일정 시간 후에 담배연기와 니코틴으로 머리를 정리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올해에는 흡연 시간을 줄이고 흡연량도 점차 줄여나가기로 결심한 정도다.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사모님의 강력한 민원을 용케 버티고 있는 난감한 실정이다.


14. 도박 성향(gambling disorder)

유전적으로 도박에 쉽게 빠져드는 성격인 듯하다. 집안에서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하면 성질이 급해지고 감정적인 본성이 튀어나와 일을 망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잘 나가다가 한 방에 무너지는 체질이다. 이 성향 때문에 남들에게 피해를 준 적도 있다. 그렇다고 단기 투자에 능한 것도 아니다. 도박을 좋아하지만 도박을 잘하지는 못한다.


현재 돈벌이를 전혀 못하고 있음에도, 이재(理財)는 나와 인연이 없음을 인정하고 주식이나 부동산 등 돈과 관련한 일은 일체 회피하고 있다. 이러한 성향을 조금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얼마 없는 재산이 모두 배우자 명의로 되어 있어 거의 노숙자와 같은 처지이기는 하나, 돈 걱정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지금이 일생 중 가장 평온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15. 집중력의 폐해(executive attention)

관심 있는 과제를 만나면 집중력이 뛰어난 편이다. 그나마 이것이 남과 다른 특장이 되어 지금까지 굶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집중력이 유일한 자산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집중하다 보면 전체를 종합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뒤처지기도 한다. 나사를 한두 개 빼놓고 다니는 듯 보여, 남들에게는 실력보다 낮게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주위 사람들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면이 타인에게 들여다보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며 적극적으로 방어한다. 외부에는 무심하지만 내면은 철저히 지키려는 ‘자기 보호형 독립 성향’이라 할 수 있다.


16. 고혈압

혈압은 높은 편이다. 대한고혈압학회의의 기준에 따르면 수축기 혈압이 고혈압 1기에 해당하며, 약물치료를 고려하고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수준이라 한다. 음식 절제와 꾸준한 운동, 정기적 목욕으로 조절해 나갈 계획이다.


* 병(病)에게 조지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약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虛無)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 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生)에의 집착과 미련(未練)은 없어도

이 생(生)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地獄)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人生)을 얘기해 보세그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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