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D 2-5

제2부 사후생

by 김진광

제6장 과학과 영성


1. 요한복음 9장 3절


호주 출신의 신경생물학자 존 에클스(John Eccles, 1903-1997)는 과학과 철학을 잇는 다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는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와 협업하여 의식과 뇌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에클스는 정신세계의 모든 현상을 뉴런 활동으로만 설명하려는 ‘과학적 환원주의’를 비판하며, 그러한 신념을 일종의 미신이라 단언했다.


”우리는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몸과 뇌를 가진 물질적 존재인 동시에, 영적 세계에 존재하는 영혼을 지닌 영적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영혼이나 사후세계를 이해하는 데 처음부터 영성(靈性)에만 의존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대부분의 과학주의자들은 이를 남의 이야기쯤으로 흘려듣고 말 것이다. 따라서 과학과 영성의 조화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신은 여기에 적합한 인물을 한 명 내셨으니, 2008년 11월 어느 날, 미국 하버드 출신의 저명한 뇌신경외과 의사 이븐 알렉산더(Eben Alexander, 1953-)가 갑작스러운 경련과 극심한 두통으로 응급실에 실려왔다. 珍光은 이븐 알렉산더의 경험을 통해 요한복음의 한 구절을 비로소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요한복음 9: 2~3)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때문입니까, 그의 부모 때문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Neither this man nor his parents sinned, said Jesus, but this happened so that the works of God might be displayed in him. (NIV)


나면서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자신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는 점은 위로가 된다. 그러나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the works of God)’을 나타내려 하심이라는 말씀은 때로 너무 가혹하게 들린다. 하지만 우주의 창조 질서와 자연의 순환 앞에서 영혼의 존재와 생명의 무한한 윤회와 환생을 믿는다면, 나면서 맹인으로 태어난 인생이 반드시 불공평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윤회의 한 가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주와 영혼의 순환의 한 과정에서 이 또한 지나갈 일이다.


신이 전도유망한 54세의 뇌신경외과 의사 이븐 알렉산더에게 임사체험을 선물하여, 과학주의와 유물론에 경도된 현대 의학에 경종을 울리게 하셨다면, 그것을 원망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2. 이븐 알렉산더


11월 10일, 응급실 의사는 요추천자를 시행했다. 척추 맨 아래 부분에서 추출한 뇌척수액은 백혈구의 잔해로 가득한 하얀 고름이었다. 박테리아 감염을 체크하는 그램염색검사 결과 양성이었고, 뇌 CT에서는 뇌막이 심하게 부어오르며 염증이 발견되었다. 최종 진단은 급성 대장균성 뇌수막염이었다. 생존율은 기껏해야 10%에 불과했으며, 항생제가 수일 내 효과를 보이지 못하면 사망 확률은 거의 100%에 달할 것이었다. 훗날 그의 저서 「나는 천국을 보았다(Proof of Heaven), 2012」는 바로 이 7일간의 혼수상태에서 겪은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현대 신경과학은 뇌가 의식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뇌는 의식을 만들어내는 기계이기에, 기계가 고장 나면 의식도 멈춘다. 이는 전원 코드를 뽑으면 텔레비전이 꺼지는 이치와 같다. 여기서 의식(consciousness)은 마음, 정신(mind) 혹은 영혼(soul, spirit)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무방하다.


현미경으로 길고 섬세한 뉴런을 관찰하면, 뉴런이 시냅스 연결 부위에서 전기적 신호를 발화할 때 의식이 발생한다. 뉴런의 불꽃은 작은 별빛처럼 깜박이며 의식을 일으킨다. 환자가 두통과 지각 장애로 병원을 찾아 MRI 검사에서 종양이 발견되면, 전신마취 후 종양을 제거한다. 몇 시간 뒤 환자가 깨어나면 두통과 지각 장애는 사라진다. 과학은 정직하고 단순하며 무엇보다 확실하다. 확실하지 않으면 과학은 버려진다.


이븐 알렉산더는 7일째, 혼수상태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이를 지켜본 전염병 전문의 스콧 웨이드(Scott Wade)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이븐 알렉산더 박사가 2008년 11월 10일 병원에 실려와 박테리아성 뇌막염에 걸린 것으로 알려졌을 때, 나는 전염병 전문가로서 도움을 요청받았다. 그는 응급실로 실려와 뇌 CT를 촬영하였으며, 요추천자 검사 결과 그램음성 뇌막염이 진단되었다. 곧바로 항생제 정맥주사를 맞았고, 혼수상태로 위급한 상황이어서 인공호흡기를 달게 되었다.

24시간 이내에 박테리아의 정체는 대장균으로 판명되었다. 성인에게 대장균성 뇌막염은 1,000만 명 중 1명 꼴로 극히 드물게 나타나는 질병이다. 당시 의학적 소견으로 그의 사망률은 90% 이상이었다. 강력한 항생제가 투여되었음에도 그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사망률은 97%로 높아졌다.

그러다가 7일째 되는 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는 눈을 떴고 의식은 명료해졌으며 곧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었다. 일주일을 혼수상태로 지낸 후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기적이라 할 만했다.”


혼수상태에서 알렉산더 박사는 임사체험을 경험하며 변화하였다.

“우리는 뇌의 필터가 허용하는 것만을 볼 수 있다. 특히 언어와 논리를 관장하는 좌뇌는 합리성에 대한 감각과 자아라는 인식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더 높은 차원을 알고 경험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영성은 서로 모순되고 양립할 수 없다고 고집한다. 그들은 잘못 알고 있다. 내 여정을 통해 체험한 ‘조건 없는 사랑과 수용’은 나에게 가장 위대하고, 가장 중요하며, 유일한 발견이었다.”


3. 임사체험에 대한 과학적 가설 검증


알렉산더 박사는 자신의 임사체험을 두고 동료 신경외과 의사와 뇌과학자들과 함께 논의하며 몇 가지 가설을 세워 검증하였다.


1) 뇌간의 원시적 프로그램일 가능성

임사체험은 임종 시의 통증과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뇌간의 ‘죽은 척하기’ 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뇌간의 단순한 작용으로 설명하기에는 알렉산더 박사가 경험한 기억들의 상호작용이 지나치게 명확하고 풍부하였다.


2) 변연계의 심층부위, 예컨대 편도체에서 기억이 왜곡 재생되었을 가능성

뇌막염은 주로 뇌의 표면에서 발생하므로 심층부위는 염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보호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알렉산더 박사의 임사체험 기억이 지닌 풍부하고 정교한 상호작용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3) 케타민(ketamine)에 의한 환각 가능성

강력한 마취제이자 진통제인 케타민은 환각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케타민 환각은 상당히 혼란스럽고 불쾌한 경험으로, 알렉산더 박사가 보고한 평화롭고 아름다운 체험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4) 세로토닌에 의한 시청각적 경험 가능성

뇌간에서 분비된 세로토닌이 시청각 경험을 발생시키려면 대뇌피질이 살아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알렉산더 박사의 대뇌피질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5) 대뇌피질의 특정 부위가 보존되었을 가능성

알렉산더 박사의 뇌막염은 일주일간의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모니터링 자료에 따르면 대뇌피질은 광범위하게 파괴되었으며, 뇌간 역시 상당 부분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6) 뉴런 네트워크의 비정상적 활성화 가능성

광범위한 뇌막염은 대뇌피질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더라도 신경학적 기능을 전체적으로 무력화시킨다. 따라서 대뇌피질의 깊은 부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보기 어렵다.


7) 재부팅 현상의 가능성

대뇌피질의 오래된 기억들이 무작위로 출력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뇌막염으로 전체 시스템이 고장 난 뒤, 대뇌피질이 다시 의식을 회복하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알렉산더 박사의 기억은 무작위 출력이라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명료하고 정교하였다.


4. 의식의 사후 존속 선언


2025년 4월 19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윤스칼라스튜디오에서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의식의 사후 존속에 관한 서울 선언 2025’가 발표되었다.


인간의 의식이 사후에도 존속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종래 뇌의 작용으로만 이해되던 ‘의식’에 대해 독립을 선언한 셈이었다. 珍光의 시각에서 볼 때, 앞으로 네 가지 정도의 도전이 예상된다.


하나는 기존 주류 의학과 임상 현장에서의 지속적인 반발과 무시는 여전할 것이다. 둘은 의식 또는 영혼 연구에 대한 종교계의 저항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린다는 이유로 불경으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 셋은 의식 또는 영혼의 문제를 특정 종교(기독교나 힌두교)에 국한한다는 비판과 함께, 종교다원주의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넷은 의식을 동물과 식물, 나아가서는 모든 무생물에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의 근본적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참석자와 서명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로완 윌리암스(영국 캔터베리 대주교), 칼 베커(쿄토대 의대 교수), 핌 반 롬멜(네델란드 심장외과 의사), 최준식(한국죽음학회 회장), 박진여(전생연구소 소장), 성해영(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그리고 우리의 히어로, 이븐 알렉산더(전 하버드 의대 신경외과 의사)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의식의 사후 존속 선언문에 담긴 내용 중에서 의미 있는 몇 가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선언문의 작성자들은 다년간 인간 의식의 사후 존속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결과, 인간의 의식은 대뇌에서 이루어지는 뇌신경생리학적 과정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 기원과 존재 자체는 독립적으로 존속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2) 우리는 이 주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는 모임을 갖고, 인간 의식의 사후 존속과 이에 대한 지식이 실제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에 깊이 공감하였다. 그 결과를 공적인 선언문으로 명문화하여, 이를 통해 더 긍정적인 사회 변혁을 향해 함께 나아가기로 뜻을 모았다.


3) 현대인의 생명과 죽음 이해는 환원주의적 유물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단순히 뇌신경 회로망에서 일어나는 생리화학적 과정의 부산물에 불과하며, 육체적 죽음과 함께 완전히 소멸된다고 보는 견해가 주류를 형성해 왔다.


4) 지난 세기 동안 유물론과 과학주의가 지배적인 사상적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생명과 의식을 순전히 물질적 현상으로 환원해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지난 2,500여 년 동안 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비롯한 동서양의 주요 종교들은 인간의 의식이 단순한 물질적 산물이 아니라, 우주, 하늘, 신 등으로 표현되어 온 초월적 존재로부터 기원하며 육체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쳐 왔다. 이러한 가르침은 수천 년에 걸쳐 수많은 종교 지도자와 영적 수행자, 그리고 일반인들이 경험해 온 육체와 의식의 분리에 대한 방대한 증언들로도 뒷받침된다. 이는 곧 의식의 독립성이 단순히 종교적 교리에 기초한 형이상학적 주장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으로 축적된 거대한 경험적 데이터, 즉 일종의 빅데이터(Big Data)로 지지되는 사실임을 시사한다.


5) 의식의 사후 존속에 대한 이해는 서양의 선구적 연구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 이미 19세기에 프레드릭 마이어스(Frederic Myers)나 윌리엄 바렛(William Barrett) 같은 학자들은 영매 통신, 근사 체험, 사후 통신, 텔레파시, 원격 투시 등 다양한 사례를 연구하여, 죽은 자의 의식과 소통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20세기에는 이안 스티븐슨(Ian Stevenson), 피터 펜윅(Peter Fenwick) 등 영미권 연구자들이 이러한 연구를 확장하여, 이른바 ‘의식의 비국소성(非局所性, nonlocality)’, 즉 인간 의식이 뇌 기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꾸준히 피력해 왔다.


6) 이러한 학문적 배경에서 우리는 2015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Tucson)에서 발표된 ‘의식의 비국소성을 반영하는 통합적 근거중심의 말기 돌봄 선언(Declaration for Integrative, Evidence-Based, End-of-Life Care that Incorporates Nonlocal Consciousness)‘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이 선언은 서구 실증 연구자들에 의해 발표되었으며, (1) 근사 체험 (2) 사후 통신 (3) 임종 시 영적 경험 (4) 영매를 통한 죽은 자와의 교신 (5) 어린이들의 전생 기억을 포함하는 환생 사례 등 다섯 가지 분야를 탐구하여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의식이 지속될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이들은 이를 통해 공공선 증진에도 깊은 관심을 표하며, 특히 의료 현장의 말기 돌봄에 적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7) 의식의 사후 존속은 과학적 방법에만 의존해서 확인된 것이 아니다. 일반인의 종교적·영적 체험을 폭넓게 분석해 온 여러 인문학자들 역시 이 현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더불어 말기환자들을 돌보는 임상 현장에서도 국내외 의료진들이 임종 시 의식의 존속을 시사하는 특이한 경험을 꾸준히 보고하고 있다. 이처럼 의식의 사후 존속은 과학적 실증 연구와 인문학적 고찰, 그리고 의료 현장의 체험이 함께 축적되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경험으로 확인되고 있다.


8) 우리는 인간 의식의 사후 존속을 뒷받침하는 폭넓은 연구와 고찰을, 이 지식이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핵심 분야부터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의료 현장의 생애 말기 돌봄 영역이다. 의식의 사후 존속에 대한 지식 공유는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막연히 품고 있는 죽음의 두려움을 덜어내고, 보다 차분하게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는다. 이는 자신의 죽음을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환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뿐 아니라, 유족들에게도 ‘재회’에 대한 희망을 제공하여 애도 과정을 이겨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환자의 죽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의료진이 성숙한 생사관을 확립하도록 돕고, 심리적 외상을 줄이며, 생애 말기 돌봄 현장에서 더 나은 의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인도할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과도한 연명 치료를 줄이고, 암울한 죽음 문화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9) 현대 사회에 만연한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피상적 죽음 이해는 깊은 실존적 불안과 고통을 야기한다. 개인 차원에서는 분노와 절망을 일으키고, 사회 차원에서는 천박한 경쟁을 부추기며, 문명 차원에서는 과소비와 전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개인과 공동체 모두가 한층 더 성숙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삶과 문명을 영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10) 사후 의식의 존속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아직 제한적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연구와 실천을 꾸준히 이어 갈 수 있는 심적·물질적 지원 체계의 구축이 시급하다. 동시에, 이 지식을 우리의 삶과 교육에 다각도로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실천적 노력을 토대로 행복한 미래 세대를 길러 내고, 새로운 한국 사회를 열어 갈 수 있도록 함께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5. 내가 아는 한 가지(one thing I do know)


인간의 정신, 곧 의식은 살아있는 동안에는 뇌라는 필터를 통해 작용한다. 그러나 죽음 이후, 정신은 본래의 고향인 영혼의 영역에 합류한다. 영혼의 영역이 신과 어떻게 작용하고 협력하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영혼의 등급별 단계(이른바 유유상종론), 환생과 윤회, 카르마의 운행 원리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또한 우리는 영혼 중 신과 교통하는 부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Holy Spirit)과 일치하는지, 영혼이 우주적으로 통합되어 운행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적어도 죽음을 논할 때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거의 확실한 부분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임사체험을 종합해 보면, 영혼이 운행하는 세계에서는 감각기관을 통한 지각이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중력의 법칙, 질량과 에너지의 법칙, 열역학 법칙,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법칙 등 인류가 어렵게 이루어낸 과학의 토대가 되는 원리들은 그곳에서는 무력화된다. 이는 아마도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조차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영혼이 전생을 넘나들며 이생에서 쌓아온 카르마를 회고하고 정리하며, 우주에너지 혹은 우주기억 저장소(Akasha)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영혼의 문제를 과학이나 영성 어느 한쪽에만 의지하여 접근하는 것은 불편하다. 우리는 애니미즘과 첨단 과학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만 비로소 편안해질 것이다. 확실히 믿고 싶은 것은, 죽음이 이번 생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죽음 이후에 본연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차이는 죽음을 앞에 두고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달라진 관점은 중환자실에서 신음하는 말기환자에게나, 그 곁을 지키는 가족과 의료진 모두에게 생각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의미 있는 작용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6. 의사 박중철


본서를 기록하면서 밝혀두어야 할 게 있다. 죽음에 관한 답을 찾아보기로 결심한 순간, 珍光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수십 권의 책을 모았다. 암 질환을 직접 경험한 의사들의 기록에서부터 철학자와 문학가, 해외의 죽음 전문가들, 호스피스, 유품관리사, 법의학자, 영매들의 저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을 접하였다.


이 중에서 수차례 정독한 책이 한 권 있다. 지금까지 珍光이 애독해 온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정수일의 ‘고대문명교류사’, 쓰기야마의 ‘중앙아시아 유목민족교류사’ 조차 다섯 번 이상 정독한 책은 없었다. 하지만 珍光은 박중철 의사의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를 수시로 읽으며 이 책을 쓰고 있다. 매번 읽을 때마다 영감을 주는 문장들을 옮겨 적은 노트만 해도 여러 권에 달한다.


珍光이 300여 쪽에 불과한 이 책에 깊이 감동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인간 박중철의 진솔함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료 현실에서 죽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환자의 편에 서서 친절하게 목소리를 내어주는 의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만큼, 예기치 못한 기쁨은 더욱 크다. 그래서 珍光은 고령의 예비환자의 입장에서 이 책자를 쓰면서도 박 선생의 근황을 여전히 살피고 있다. 아마도 珍光은 머지않아 ‘친절한 죽음’의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다시금 박 선생의 책을 펼쳐 들고 있을 것이다. 박중철 의사가 말하는 ‘친절한 죽음’은 척박한 한국 의료계에서 탄생한 귀중한 보물이다. 죽음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싶다면, 먼저 박중철 의사의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를 읽어보기를 권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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