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D 2-4

제2부 사후생

by 김진광

제5장 죽음과 영혼


2. 선물


디팩 초프라가 보스턴 어느 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할 때였다. 늙은 부부가 함께 병원에 입원하였다. 남편은 결장암 말기였고, 부인은 심장병 경력이 있었다. 남편이 의식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면서 고통에 시달리자, 아내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여러 날을 병상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부인의 침상이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전날 밤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었다. 마침 남편이 의식이 돌아온 상태여서 나는 부인의 사망 소식을 전해주어야 했다. 나는 환자가 받을 충격을 염려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아주 평온해 보였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 된 것 같군요, 사실 이제까지 기다렸어요”

”기다리시다니요? “

”신사는 항상 숙녀가 먼저 가기를 기다리는 법이지요 “


그렇게 말한 환자는 잠시 뒤 의식을 잃고, 그날 오후 세상을 떠났다. 생의 마지막에 유머 한마디를 선물처럼 남기고 떠나는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선물(The Gift) 타고르(Tagore)

죽음이 당신의 방문을 두드릴 때

그대는 무엇을 줄 것인가?

내 인생의 충만함,

여름밤의 달콤한 포도주,

오랜 세월 쌓아온 내 조그만 지식의 창고,

그리고 삶으로 풍요롭게 채워진 시간들,

이것들이 내가 주어야 할 선물,

죽음이 내 방문을 두드릴 때


3. 영혼의 빛은 어디에 있는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에릭 코넬(Eric Cornell)은 ”의식(consciousness)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당신은 과학의 언어를 벗어나게 된다 “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곧 의식에 접근하는 일이 얼마나 난해한지를 암시한다.


죽음 직전에서 살아난 사람들 중 약 20%가 임사체험을 경험한 것으로 보고된다. 그들은 육체를 떠나 수술대 위에 누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거, 심폐소생술을 벌이는 의료진을 바라보기도 한다. 또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터널을 걷거나,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이들과 조우하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심장 전문의 롬멜(Lommel)은 심장병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두뇌활동이 멈춘 뒤에도 임사체험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는 약물이나 마취제가 환자들의 진술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하며, 이는 뇌의 시계가 멈춘 후에도 의식이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죽음 이후에도 정신세계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 영혼의 빛

성자(聖者) 라마다(Ramada)는 죽음의 신 야마(Yama)에게 물었다.

”나는 당신과 영원히 머물 생각은 없소이다. 내 첫 번째 소원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아는 것입니다. “

야마는 미소를 지으며 동쪽을 가리켰다.

”저 해 뜨는 곳으로 가면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을 찾게 될 것이오. “

”내 두 번째 소원은 당신도 사랑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

야마는 대답했다.

”사랑은 창조의 힘이지만, 내가 맡은 일은 파괴라오. 그러므로 내게 사랑은 필요 없소이다. “

라마다는 세 번째 소원을 말했다.

”위대한 현인들이 영혼은 죽음을 넘어 살아남는다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오? “

야마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소. 지혜의 길과 무지의 길. 지혜는 진리를 추구하고 무지는 쾌락을 추구하오. 쾌락은 감각에서 태어나 순간적이니 곧 죽음으로 떨어지겠지. 무지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소. 그러나 지혜는 불멸의 빛이오. 그 빛은 자기 자신 안에서 나오며, 그것은 곧 영혼의 빛이오. 그러나 이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소. “

이 말을 남기고 야마는 서둘러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나무꾼의 아내 사비트리(Savitri)는 현자 라마다에게 물었다.

”그 빛이 우리 안에서 빛나고 있다면 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할까요? “

라마다는 나뭇가지를 들어 웅덩이 물을 휘저었다. 그러자 가라앉아 있던 흙이 떠올라 물은 혼탁해지고, 조금 전까지 웅덩이에 비치던 햇빛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영혼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라오. 마음이 쉼 없이 흔들리고 의심과 혼란의 때가 끼어 영혼의 빛을 가리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해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영혼 또한 사라지지 않소. 죽음의 신조차 이를 어찌하지 못하오. 이것이 영혼의 비밀이오. “


4. 영양공급관 제거에 걸린 시간 15년


1990년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테리 쉬아보(Terri Schiavo)라는 26세 여성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PVS)에 빠졌다. 남편은 아내가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길 원했으나, 부모는 회복 가능성을 주장하며 영양공급관 제거를 강력히 반대하였다.


2000년 플로리다 법원은 남편의 요청을 받아들여 영양공급관 제거를 허용했으나, 반대 여론으로 즉시 집행되지는 못했다. 2003년 플로리다 주 의회는 종교계의 주장을 반영해 특별법(일명 Terri’s Law)을 제정하여, 당시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서명하고 그의 동생 제브 부시(플로리다 주지사)가 영양공급관 재연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 특별법은 곧 위헌 판결을 받았다.


2005년 3월 18일 법원의 명령에 따라 그녀의 식도에 부착된 영양공급관이 제거되었다. 그로부터 2주 뒤인 3월 31일 테리 쉬아보는 향년 41세로 세상을 떠났다.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기까지 무려 15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은 상황이 2026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식물인간 상태에서는 영양공급관을 제거할 방법을 허용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장기기증 의사를 밝히고 뇌사 판정을 통해 사망으로 처리한 뒤 장기적출 절차를 밟는 것뿐이다.


의료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조차 테리 쉬아보 사건에는 15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하였다. 독실한 기독교인 부시의 실패한 결정은 누구도 보상할 수 없었다. 플로리다 주가 여타 주에 비해 안락사 문제에 전향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콧줄과 인공호흡기, 그리고 수많은 라인과 튜브에 매여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아내를 16년째 바라보는 남편의 심정은 얼마나 무거웠겠는가. 그의 인생은 과연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었을까. 연명의료 중단의 과정은 단계 단계마다 독하디 독한 매듭과 흔적을 남긴다.


이것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병원 중환자실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다. 한국에서 안락사 허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중환자실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같은 문서는 무기력하다. 임종과정의 판단, 영양공급을 연명의료 중단 대상에 포함할지 여부, 요양병원과 호스피스 제도의 현실, 단식에 의한 존엄사와 자살방조죄의 관계, 의사조력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 등 안락사 이전에 건너야 갈 강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珍光은 쉽게 고쳐지지 못할 제도를 막연히 기다리기보다, ‘죽음 사용설명서’를 각자 스스로 만들어 현실을 직시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고쳐지고 개선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의사나 판사는 자신의 부모에게는 연명의료를 거부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존속살인방조의 선고를 하는 데 무리가 없다. 실제 그런 사례를 발견하였다.


5. 장자처사(莊子妻死)


장자의 아내가 죽자 친구 혜자(惠子)가 조문을 왔다.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말하기를, 아내와 함께 살고 자식을 키우며 늙어갔는데, 죽었을 때 곡을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다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고 힐난하였다. 장자가 대답하길, 처음에는 슬펐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내는 본래 생명도, 형체도, 기(氣)도 없는 상태에서 변화하여 태어난 존재인 것을. 이제 다시 변화하여 죽음으로 돌아간 것일 뿐, 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순환과 같은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겠는가. 아내는 이제 천지라는 큰 집에 편히 잠들었는데, 곡을 하면 오히려 천명을 깨닫지 못한 짓이라 여겨 노래를 부른 것이라고 말하였다.


莊子(外篇) 第18篇 至樂


莊子妻死 惠子弔之 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

(장자처사 혜자조지 장자즉방기거고분이가)

惠子曰 : 與人居 長者老身死 不哭 亦足矣 又鼓盆而歌 不亦甚乎

(혜자왈, 여인거 장자노신사 불곡 역족의 우고분이가 불역심호)

莊子曰 : 不然 是其始死也 我獨何能無槪然 察其始而本無生

(장자왈, 불연 시기시사야 아독하능무개연 찰기시이본무생)

非徒無生也而本無形 非徒無形也而本無氣 雜乎芒芴之間 變而有氣

(비도무생야이본무형 비도무형야이본무기 잡호망홀지간 변이유기)

氣變而有形 形變而有生 今又變而之死 是相與爲春秋冬夏四時行也

(기변이유형 형변이유생 금우변이지사 시상여위춘추동하사시행야)

人且偃然寢於巨室 而我噭噭然隨而哭之 自以爲不通乎命 故止也

(인차언연침어거실 이아교교연수이곡지 자이위불통호명 고지야)


망홀(芒忽, 혼돈, chaos)에서 변화하여 기(氣)가 생겨나고, 기가 변화하여 형(形)이 생겨나며, 형이 변화하여 생(生)이 되고, 생이 변화하여 사(死)가 되어 큰 집(巨室)에 잠드니, 이 거대한 우주와 자연의 순리 앞에서 죽음을 두고 곡(哭)하는 것은 천명(天命)을 깨닫지 못한 일이다.


2026년 한국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조선시대의 유교적 관습, 서구에서 유입된 유물론적 과학주의, 그리고 기독교의 보수적 창조론 사이에서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다. 영혼의 존재와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되고, 대부분의 의사들은 첨단 기기에 의존하여 생명의 연장에만 몰두한다.


먼저, 우리는 사후세계와 윤회의 원리를 탐구하기 전에,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변화와 순환을 깨닫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세, 영혼, 사후세계를 이야기한다면, 과학주의에 세뇌된 현대인에게는 허공에 흩날리는 메아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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