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D 2-3

제2부 사후생

by 김진광

제4장 뇌와 정신


정신의학자 브루스 그레이슨(Bruce Greyson)의 저서 「사후생(After)」에서 뇌와 정신(생각, 의식)의 관계에 관한 부분을 읽으며 珍光은 놀라움을 느낀다.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연구해 온 결과와 일반인의 사유 수준 사이에 간극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mind)이란 우리가 의식하는 사유와 감정, 욕망과 기억, 그리고 희망까지를 아우르는 총체적 개념이다. 데카르트는 ‘정신’을 ‘물질’과도 다르고, 신의 영역인 ‘영혼’과도 별개인 비물질적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과학적 탐구의 실마리를 열었다. 그러나 그는 신의 영역인 ‘영혼’을 침범해서는 안 되었다.


이후 과학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유물론과 진화론의 세례를 받은 대부분의 과학자와 의사들은 정신은 뇌의 작용에 불과하다고 단정하였다. 그만큼 의학은 눈으로 관찰할 수 있고 검증 가능한 사실만 따라가기에도 벅찰 만큼 발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와 정신의 관계에 대한 탐구는 신경정신과 의사나 뇌과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이어져 왔다. 여기에 임사체험의 증거들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축적되면서, 뇌와 정신의 관계는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다.


뇌의 구조는 제1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뇌피질, 변연계, 뇌간으로 나눌 수 있다. 대뇌피질은 사고와 의식을 담당하며, 전두엽은 계획과 판단을, 두정엽은 공간지각과 계산을, 측두엽은 청각∙기억∙언어를 담당하고, 후두엽은 시각과 상상을 맡는다. 변연계에서는 편도체가 공포와 분노를 조절하고, 해마가 장기기억을 형성하며, 시상하부가 식욕∙성욕∙체온∙호르몬을 조절한다. 뇌간은 호흡과 심장박동, 혈압 등 생명 유지의 근본 기능을 담당한다.


우리가 책의 글자를 읽을 때, 눈의 신경세포는 후두엽의 시각중추와 측두엽의 언어중추에 전기적 신호를 전달한다.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특정한 정신 능력이 발휘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수많은 임상 사례로 입증되었다. 뇌질환이 발생하면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는 능력이 분명히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정신이나 의식은 뇌에서 만들어진다는 주장은 일견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레이슨 박사는 말한다. ‘정신은 뇌가 하는 일’이라는 말은 ‘소화는 위장이 하는 일’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악기가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지만,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악기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 남는다.


지난 수십 년간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철학자들이 모여 뇌가 어떻게 의식을 만들어내는지를 연구했지만, 결론은 여전히 ‘실마리가 없다’였다. 신의 영역을 피해 가면서도 과학적 유물론을 유지해야 하는 제약조건 속에서 뇌와 정신의 관계를 파헤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주전자에서 증기가 나오고 폭포가 전력을 생산하듯, 뇌가 생각을 만들어낸다고 한다면 뇌가 죽으면 더 이상 생각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임사체험을 인정한다면 뇌와 정신의 밀접한 관계는 느슨해지거나 무너진다. 지금까지 축적된 수많은 사례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이상, ‘뇌가 죽어도 무언가는 살아 있다’는 명제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정신은 뇌의 단순한 산물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뇌는 거대한 정신세계에서 인간이 육신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필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필터가 사라지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정신세계의 본래 모습이 드러난다. 임사체험은 그러한 세계의 일단을 언뜻 보여주는 창이 될 수 있다. 이 거대한 명제를 현대 과학이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뇌와 정신의 관계가 과연 의사와 과학자의 전유물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육체(body), 정신(mind), 그리고 영혼(spirit)의 관계는 여전히 학문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주제이다. 현대 신경과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정신은 뇌의 활동과 밀접하게 연결된 인지, 의식, 사고, 판단 등의 기능을 의미한다. 반면 영혼은 종교적·철학적 전통에서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으로, 죽음 이후에도 존속한다고 믿어지지만 과학적으로는 그 실체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육체와 영혼으로 구분하는 관점에서, 정신은 육체적 삶 동안은 뇌와 연결된 의식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죽음 이후 정신은 본래의 고향 또는 영혼과 같은 영역으로 돌아간다고 이해할 수 있다. 명상, 기도, 임사체험, 전생기억 등은 이러한 영혼 개념을 탐구하는 문화적·종교적 현상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최근에는 여러 증거자료를 통해 과학적 연구가 본격화되는 추세를 보고 있다.


인간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육체에 머무르지 않고 뇌의 작용인 정신으로 확장하며, 더 나아가 죽음 이후에도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세계를 탐험하는 흐름은 분명 바람직하다. 이는 과학과 종교와 철학이 만나는 접점이기도 하다. 한국의 의사가 인간의 육체에 머물기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이다. 살아서 정신세계, 죽어서 영혼세계라는 거대한 우주를 부인하고 육신세계에 안주하려는 태도와 자세는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어차피 전문가들조차 아직 실마리를 풀지 못한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의 관계를 죽음과 연관하여 살펴보는 입장에서 珍光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넓은 의미의 영혼(spirit)’ 중에서 육신의 몸으로 살아가는 동안 뇌의 필터로 걸러진 영역을 ‘정신(mind)’이라 할 수 있으며, 육신의 죽음 이후의 영역, 즉 뇌를 비롯한 육신으로부터 해방된 영역을 ‘본래의 정신(natural mind)’ 또는 ‘영혼(spirit)’이라 부르는 것이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육신이 살아 있을 때, 정신은 생각, 마음, 감정, 사고, 의식, 인지(인식, 판단, 계획, 결정), 상상의 형태로 나타나며, 영혼은 영성(spirituality) 혹은 성령(Holy Spirit)의 이름으로 발현된다. 영혼은 명상, 기도, 임사체험, 전생기억 등을 통해 다가오거나 어렴풋이 짐작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영혼의 차원을 나누어 재해석하는 일은 종교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임사체험은 인간의 정신세계가 뇌라는 필터를 넘어설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 고유한 정신의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종래 뇌가 걸러내던 감각과 사고의 경계가 무너지며, 본래의 정신세계가 드러난다. 임사체험은 그 세계의 일단을 보여주는 창이며, 인간 존재의 깊은 신비를 암시한다.


죽음학이 케이스 스터디에만 몰두하는 정신의학자, 유물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뇌과학자, 영혼을 부분적으로만 인정하는 소수의 의사, 그리고 교조적인 종교인에 의해 편향된 관점에서만 기술되고 있는 현실은 유감스럽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죽음을 앞둔 ’ 죽음의 당사자‘이자 ’ 고독한 고령의 예비환자‘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그들은 내면의 침잠, 사유, 통찰, 상상, 명상과 기도를 통해 자연과 우주, 더 나아가 신과 조우할 기회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5장 죽음과 영혼


1. 죽음 이후의 삶


앞에서 인간의 정신(생각과 의식)이란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숨 쉬고 심장이 뛰며 뇌파가 활동하는 그 시간 속에서 뇌가 필터링한 영혼의 한 조각이라고 상정하였다. 양자역학의 아이디어를 빌리자면, 어쩌면 정신은 뇌에 국한되지 않고 몸 전체의 세포 구름 속에 숨어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영혼에 대해서 살펴볼 시간이다. 영혼에 대해서는 영성적인 접근이 불가피하다. 현재까지 과학은 기껏해야 뇌파를 관찰하고 MRI와 CT 촬영을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인도 철학의 깊이를 배경으로 성장한 디팩 초프라(Deepak Chopra, 1946- )는 미국에서 현대 의학을 배우면서 ’ 영혼‘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디팩 초프라는 저서 「죽음 이후의 삶(Life after Death)」에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려낸다. 생명은 탄생을 위해 어머니 뱃속에서 9개월 동안 50번의 세포분열을 거치며, 매 분마다 100만 개의 뇌 세포를 만들어낸다. 수십 년 뒤에는 그동안 7억 번 이상 펌프질하던 심장이 멈추고, 수십억 개의 뉴런도 활동을 멈추며, 30억 개의 DNA 염기와 수십조 개의 세포들 역시 뇌와 함께 죽음을 맞는다.


조물주는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힘들게 빚어낸 작품을 그토록 쉽게 버리는 것일까. 생명의 당사자인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충실히 살지 않으면 ’ 몸값도 못하고 죽는 ‘ 존재가 되고 만다. 그 몸값에는 육신뿐 아니라 정신도 포함될 것이다. 인간은 육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신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정신은 뇌와 협업하여 사유와 통찰, 상상을 통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정신을 단순한 전자계산기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신 사용법이 돈 계산이나 인터넷 검색에 그친다면, 이는 고성능 휴대폰으로 덧셈이나 뺄셈만 하고 있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죽음 이전의 오늘을 더 충실히 살아갈 수 있다. 죽음 이후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영혼을 알아감으로써 우리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 영혼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현재의 ’ 나와 너‘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게 된다. 죽음 사용설명서는 곧 정신의 사용설명서이자 영혼의 사용설명서이기도 하다.


“당신들 지금 무슨 농담을 하고 있는 거야, 죽으면 그냥 끝이야, 끝이라고!”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자일 가능성이 크다. 과학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물질주의자의 주장이 더 솔직한 의견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육신의 유한한 세계와 뇌파의 작용에 불과한 정신의 유한한 세계만을 인정할 때에나 맞는 말이다. 임사체험도 전생기억도 단지 환각작용이나 약물 부작용으로 치부된다. 환생도 없고, 부활도 없고, 영생도 없다.


그렇다면 내세(來世, afterlife)를 인정하는 사람은 내세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의 무한한 확장, 즉 영혼의 세계를 증명해 보여야 할 의무가 있는가, 그것도 관찰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과학적 방식으로? 이것은 백 퍼센트 실패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아마도 영혼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이는 순간, 그것은 이미 영혼이 아닐 것이다. 영혼은 우리의 두뇌 밖에 있으며, 죽음 이후의 세계에 속한다. 그곳은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에너지도, 중력도 없고 빛의 속도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런 세계를 누가 증명해 보일 수 있겠는가.


영혼의 세계는 구름 속 틈새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현상으로부터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 임사체험이며, 성령의 은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영혼의 영역 가운데 신의 영역에 대한 논의는 제외하기로 한다. 간신히 정신이라는 고개를 넘어왔는데, 신의 영역이라는 설산(雪山)을 넘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넘기 전에 포기할 가능성이 많다. 신의 영역에 대해서는 별도로 탐구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신의 영역을 일단 접어두려 하는 것은, 극히 비과학적인 영혼의 영역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거짓 선지자와 예언자, 영매, 신비주의자, 무당, 종교인, 심지어 과학자까지 마주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의 세계를 쉽게 유형화하거나 단순화하는 것은 큰 위험을 내포한다. 오히려 고집을 내려놓고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접근이 가능한 분야라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중요한 목표는 죽음 후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가에 있다. 만약 존재한다면, 죽음에 매우 근접한 고령자의 입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절박한 질문에 직면한다. 거기에도 통행세 같은 것이 있다면, 혹시 집문서라도 한 장 들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급박한 문제들이 우리의 관심사다. 이는 철학자의 끝없는 사변이나 영성주의자의 그럴듯한 매혹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 죽음 사용설명서‘의 매뉴얼을 독파하면서, 이 땅에서 육신의 죽음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알고 목하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더하여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감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몇 가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법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으리라는 정도의 현실적인 문제만 남는다. 그 이상의 사유는 더 위대하고 더 젊은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에게는 죽음이 바로 현실적인 민생고(民生苦)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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