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사후생
심정지 상태에서 소생한 사람의 약 10~20%가 임사체험을 경험했다고 보고된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심장의 박동과 호흡을 재개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오는 사례가 과거보다 늘어났다.
임사체험에는 몇 개의 공통된 패턴이 있다. 대표적인 패턴으로는 빛 체험, 인생 회고, 전생 기억 등이 있다. 임사체험자는 이를 종교적이라기보다 정신적 경험으로 인식하며, 이후 특정 종교 입장을 넘어 보다 보편적인 종교심을 탐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임사체험 후 건강 상태가 향상되거나 치유력을 얻었다고 보고하기도 하며,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평가하고 배려심이 늘어나며,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정신적 가치를 지향하는 변화가 나타난다.
죽음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퀴블러-로스 박사는 수많은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며 “인간의 육체는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싼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2004년 그녀의 장례식에서는 형형색색의 나비가 날아다녔다고 전해진다. 퀴블러-로스의 죽음관은 2,500년 전 플라톤의 사상과 맞닿아 있으며, 이는 죽음 앞에서는 첨단 의료 기술도 시공을 초월해 겸손해야 함을 시사한다.
미국의 한 수술실에서 심장외과 의사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수술에 참여했던 한인 마취과 의사가 지속적인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 그의 생명을 가까스로 구해냈다. 의식을 회복한 그는 자신이 체외이탈 경험을 하여 수술실 위에서 의료진의 응급조치를 지켜보았다고 증언하였다. 당시 의료진의 대화와 손길을 생생하게 기억했으며, 이는 단순한 환각이나 꿈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정현채 교수는 이 사례를 의식이 뇌와 육체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에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하였다.
임사체험자의 증언에 따르면 임사체험은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된다.
1) 체외이탈 경험(out-of-body experience) : 임사체험자는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벗어나 허공에서 자신을 내려다본다고 진술한다. 의식은 분명하고 생생하게 깨어있으며, 죽음이 끝이 아니라 육신과 영혼의 분리임을 체험한다. 아무런 고통도 없이 평온함과 행복감을 살아 있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느낀다.
2) 터널 통과 : 임사체험자는 칠흑 같은 어둠을 지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체험을 한다. 마치 터널 같은 곳을 통과하는 듯, 캄캄한 어둠 속을 지나 삶과는 다른 현실, 다른 세계를 만난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차원 없는 공간을 떠다니기도 하며, 급속도로 터널을 지나기도 한다. 흔히 저승이라고 일컫는 세계로, 살아있을 때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 다른 차원의 세계로 묘사된다.
3) 빛의 존재와 만남 : 임사체험자는 빛의 존재를 만난다고 증언한다. 이 빛의 존재는 예수, 붓다, 보살, 성모 마리아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지만, 이는 체험자의 종교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뿐이다. 임사체험자는 사랑으로 감싸는 빛의 존재와 함께 있으면서 축복을 가득 느낀다. 빛의 존재와 나누는 대화는 말이 아니라 이심전심의 교감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4) 인생 회고(파노라마 체험, panoramic life view) : 임사체험자들의 다양한 증언에 공통되는 또 다른 특징은 ‘파노라마처럼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경험’이다. 갑자기 등장한 빛의 존재와 함께 체험자는 자기 삶에서 일생 동안 겪었던 다양한 일들을 영상 이미지처럼 되돌아본다. 지나온 삶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회상을 통해 자기 삶에 대한 자발적 평가가 이루어진다.
5) 삶과 죽음의 경계선 도달 : 임사체험자는 돌연 어떤 장벽이나 경계선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먼저 죽은 친척이나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체험자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아직 성취하지 못한 삶의 목적을 위해, 혹은 사명감이나 봉사정신으로 인해 다시 삶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6) 삶의 변화 : 의학적으로 죽었다가 임사체험을 겪고 다시 살아난 체험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이 바뀐다. 체험자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고, 죽음이 끝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또한 체험 이전보다 훨씬 관대해지고 사랑을 베풀며, 영혼이나 영성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는 등 삶과 죽음을 보는 방식이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죽음을 한층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며,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정신적 의미를 추구하게 된다.
일부 의식 있는 연구자들이 ‘의식’을 어렵사리 뇌와 장기로부터 분리해 내었다. 그러나 그 의식이 데카르트의 ‘정신(cogito)’인지, 혹은 또 다른 차원인 ‘영혼(spirit)’의 영역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진화론자나 유물론자가 영혼을 이야기하면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되어 그들의 학문적 기초가 무너지는 것 같아 불편해진다. 다만 뇌파의 작용이라 당연시되던 ‘의식’을 뇌로부터 분리해 독립을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양보가 아닐 수 없다.
체외이탈 현상에 대한 과학자들의 비판도 만만치 않다. 체외이탈은 극심한 스트레스, 외상, 뇌 자극으로 인해 의식∙기억∙ 정체성∙지각 등이 일시적으로 분리되는 심리적 해리 현상(解離, dissociation)으로 설명된다. 이들은 체외이탈을 착각, 환상, 혹은 죽음에 대한 방어 메커니즘으로 본다.
그러나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과학의 역사는 인간의 인지기능을 통해 신의 영역이라 치부되던 것을 탐구하고 발견해 온 과정이었다. 앞으로 인간의 뇌와 영혼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갈릴레이, 케플러, 파스칼,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에서 오늘날의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사유는 금기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어 왔다. ‘의식’의 독립 선언은 그 긴 여정의 서막이 될 것이다.
체외이탈이 가능하다면 영혼 여행도 가능해질 것이다. 영혼의 여행에는 빛의 속도나 시간과 공간의 개념도 무의미해질 수 있다. 육체적 죽음 후 영혼은 광활한 우주를 아무런 물리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임종의 순간에 지나간 삶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재현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2023년 유럽심폐소생협회가 발간한 학술지 ‘소생(Resuscitation)’에 따르면, 심정지로 쓰러진 567명의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결과, 약 10%인 53명이 소생하였다. 이 중 28명을 인터뷰한 결과, 일부 환자는 육체와 분리된 느낌, 삶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경험, 편안한 곳에 갔다가 돌아온 듯한 인식을 진술하였다. 또한 심정지 중 뇌파 활동이 치솟는 스파이크 현상이 관찰되었다.
인간의 의식 또는 영혼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회고(life review)하고 반성하는 기회를 체험하는 것은 두렵기도 하다. 의료진과 가족이 임종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생사의 기로에 있는 환자는 길고 긴 천국과 지옥을 파노라마 영상처럼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이때 자신이 가해자였던 경험에서는 피해자가 겪었을 참담한 심정을 그대로 느낀다. 가시 돋친 말이나 이기적인 행동으로 남을 괴롭히며 살아왔던 사람은 무척이나 괴로운 시간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전에 잘못한 일이 많은 사람은 엄청나게 긴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한다. 반면 자신의 선한 의도나 행동을 다시 경험하는 순간에는 무한한 기쁨과 평안을 맛보게 된다.
인생 회고의 시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긴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견해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사고를 확장한다면 충분한 근거를 가질 수도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하얀 토끼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영원’이냐고 묻자, 하얀 토끼는 1초도 영원이 돼ᅟ길 수 있다고 답한다. 영원이 순간이 되고 순간이 영원이 되는 것을 과학자들이 증명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1겁(劫, kalpa)은 1천 년에 한 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내는 시간이거나, 1백 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치맛자락에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데 필요한 시간이라고 한다. 전생에 쌓은 5백 겁의 인연으로 옷깃을 스치고, 1천 겁의 인연으로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며, 2천 겁의 인연으로 하루를 동행하고, 3천 겁의 인연으로 하룻밤을 함께 한다. 부부의 인연은 전생에서 7천 겁의 선행이 쌓여 만나는 것이라 한다. 우리는 하룻밤 인연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겁’을 오남용 하는 셈이 된다.
珍光은 저서 「히스토리 A」에서 ‘파노라마 지옥론’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는 임사체험 중 인생 회고가 단순히 기억의 재현을 넘어, 기나 긴 고통이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임사체험자의 3분의 2가 사후세계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을 만났다고 증언한다. 그중에는 이미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이들도 있었다. 이는 단순히 죽은 뒤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희망이 투사된 것이라는 가설을 무너뜨린다.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 AD 23-79)의 「박물지(Natural History)」 제7권에는 천문학자 코르피디우스(Corpidius)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가 호흡을 멈추자 의사는 사망을 선고했고, 동생을 상속인으로 하는 유언장이 공개되었다.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 장의사가 왔다. 시신을 방부 처리하려는 즈음에 코르피디우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쳤다. 그는 방금 동생의 집에 다녀왔다고 말하며, 동생이 자신의 딸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한다. 또한 동생은 마당 한 곳에 금을 묻어둔 장소를 알려주었다. 놀란 장의사가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사이, 동생의 하인이 들어와 동생이 조금 전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후세계가 존재하는가?’라는 주제로 열띤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철학자는 ‘사후세계는 허구다. 육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단언하고, 어떤 심리학자는 ‘사후세계가 있다면 영혼의 존재가 이미 증명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한 신부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라고 말하고, 한 정신과 의사는 ‘사후세계는 실제로 존재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연구한 끝에 그 증거를 찾았다’고 증언한다.
珍光은 생각한다. 만약 그들에게 ‘바울의 회심’과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들은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단순히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요한복음에 다음과 같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나면서 맹인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행하였을 때, 바리새인들은 그가 안식일을 범했다고 단정하며 그 맹인을 불러 증언을 요구했다. 그는 담대히 말하였다.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아는 한 가지는 내가 맹인이었다가 지금은 본다는 사실입니다.”
He replied, ‘Whether he is a sinner or not, I don’t know. One thing I do know. I was blind but now I see!‘
나면서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뜬 사실이 본질이지, 안식일법 몇 조 몇 항을 위반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one thing I do know’라는 고백 외의 모든 것은 하찮아진다. 얼음과 눈송이와 수증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본질이 물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처럼, 문제의 핵심은 영혼이다.
죽음을 경험하고 살아난 열두 살 소녀가 있었다. 어느 날 아이는 아버지에게 그 경험을 털어놓았다. 아이는 그곳의 아름다움과 감싸는 듯한 분위기, 놀라운 사랑, 그리고 그것들을 실어 나르는 빛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그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아이의 오빠가 안내인이 되어 부드러움과 애정, 연민으로 대해주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아이는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저에겐 오빠가 없다는 사실이에요.” 이 말을 듣고 아이의 아버지는 울며 대답하였다. “사실은 네가 태어나기 3개월 전에 네 오빠가 죽었단다.”
하버드 출신 신경외과 의사 이븐 알렉산더(Eben Alexander) 역시 임사체험이 없었다면 유물론적 과학주의자의 한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깊은 혼수상태에서 경험한 사건을 통해 ‘의식은 뇌의 산물이 아니며, 죽음 이후에도 지속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저서 「나는 천국을 보았다(Proof of Heaven)」에서 과학과 영성의 경계에서 인간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음을 증언한다. 2008년, 예기치 못한 뇌수막염으로 일주일간 깊은 혼수상태에 빠진 순간, 그의 세계는 완전히 뒤집혔다. 깊은 어둠 속에서 그는 빛의 회오리를 보았고, 음악 같은 울림이 그를 감싸 안았다. 나비의 날개를 타고 여행하는 듯한 체험 속에서 한 여성 안내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따뜻한 미소로 그를 안내했다. 알렉산더는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평화와 사랑을 느꼈다. 나중에 그는 그 여성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이복누나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또한 무한한 사랑과 지혜를 가진 존재와 교감했다고 말한다. 그곳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의미가 없었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만이 존재했다. 이 체험은 그에게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 의식이 뇌를 넘어 존재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미셸 브라운은 중학교 다이빙팀의 학생이었다. 연습 도중 그는 머리를 다이빙대에 부딪힌 채 물속으로 추락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수일이 지나, 의식이 없다가 깨어난 그는 혼수상태에서 경험한 느낌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특히 네 번째 느낌, 곧 뇌와 정신(생각, 의식)의 관계는 현대 의학에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중요한 의제로 남아 있다.
느낌 1: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한 체험
느낌 2: 자신이 몸에서 분리되어 나온 듯한 체험
느낌 3: 먼저 세상을 떠난 지인들에 둘러싸여 있는 듯한 체험
느낌 4: 뇌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듯한 체험
느낌 5: 사랑과 평화, 그리고 자유를 맘껏 누리는 듯한 체험
대학생 존 밀리아치오는 바람이 심하게 불던 7월 어느 날, 뉴저지 해변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던 중 익사 상태에 빠졌다가 임사체험을 경험하였다.
“그게 죽는 거라면 죽는 게 두렵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나쁘지 않았고 평화로웠으니까요.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아무 걱정도 할 필요 없이 이끌리는 기분이었어요. 그저 어둠이 내려앉는 느낌이랄까요. 편안하고 고요했어요. 그냥 휴식 상태라고 할 수 있겠네요. 봄날에 시냇가를 따라 풀밭에 아주 천천히 피는 꽃과 같아요. 화창하고 밝고 평화롭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어요. 나는 ‘죽음이 이런 거라면 나쁘지 않아’라고 혼자 말했어요. 이 경험을 하고 나서 확인한 게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가 왜 아직 살아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더 이상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다른 가족들처럼 괴롭지 않았습니다”
톰 소여는 트럭 수리 중 사고로 죽음에 몰렸을 때 임사체험을 하며,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피해자의 처지에서 경험하였다.
“열아홉 살 때 픽업트럭을 몰고 가던 중 한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부딪힐 뻔했다. 나는 창문을 내리고 비꼬는 말투로 ‘다음부터는 횡단보도를 이용하시죠’라고 말했다. 그 남자는 큰 소리로 욕을 하면서 창문 너머로 손을 뻗어 내 뺨을 철썩 때렸다. 나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서, 차에서 내려 그 남자를 두들겨 팼다. 그는 뒤로 벌러덩 넘어져 도로에 머리를 부딪쳤다. 길 건너 주유소에서 사람들이 달려왔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도 그가 나를 먼저 때리는 걸 봤잖아요!’라고 말하고 차를 몰고 떠났다.
싸움을 벌이기 전이나 후에도 나는 그 남자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임사체험 중에 그가 취한 상태였고, 아내와 사별한 후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술을 마셨던 술집 의자를 보았다. 그가 내 트럭 앞으로 뛰어들기 전 한 블록 반을 걸어온 길이 보였다. 나는 그 남자를 정확히 서른두 번 때렸다. 그의 코를 부러뜨리고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는 곧장 뒤로 나자빠져서 인도에 뒤통수를 부딪쳤다.
나는 그 남자의 몸 안에서 그의 눈을 통해 보고 있었다. 화가 잔뜩 난 톰을 보았다. 나는 그의 입장이 되어 주먹이 얼굴로 날아오는 걸 체험하였다. 분하고 화나고 당황하고 좌절하고 육체적 고통을 느꼈다. 아랫입술을 깨무는 걸 느꼈다. 그의 입장이 되어 그렇게 얻어맞으니 육체적 고통, 모멸감, 당혹감, 수치심과 무력감을 느꼈다.”
24세 해병 스티브 프라이스는 베트남에서 전투 중 총알 파편이 폐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다. 필리핀 미군병원으로 옮겨져 수술 중에 임사체험이 찾아왔다.
“갑자기 내가 천장 근처로 올라가 내 몸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얗고 눈부신 빛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따뜻하고 평화롭고 즐거운 기분에 휩싸였다. 이제는 그 빛이 하나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임사체험 후에는 총을 쏠 수가 없었다. 해병 말고는 되고 싶은 게 없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해병대를 떠났고 지금은 실험실 기사로 일하고 있다. 나는 온화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변하였다.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그걸 느낄 수 있다.”
61세의 교사 세실리아는 맹장 파열로 열이 치솟는 중에 임사체험을 경험하였다.
“나의 죽음은 해변에서 모래알 하나, 바다에서 물방울 하나 줄어드는 것만큼 미미한 일입니다. 죽음은 전혀 두려울 게 없어요. 죽음 덕분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사랑과 평화를 느꼈어요. 나는 갈 준비가 되었으나 나를 지켜보던 안내인들은 나를 두고 떠났습니다. 나는 ‘나, 여기 있어요. 나도 데려가 줘요’라고 애원하였습니다.
현실로 돌아온 후, 내 몸은 치유되고 있었지만 죽지 못했던 게 아쉬웠습니다. 내가 체험한 참으로 아름다운 평화를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를 몰라서 일기장을 한 권 샀습니다. 일기장 첫 장에 ‘왜 내가 살아 있나요?’라고 적었습니다.”
국제적으로 수많은 임사체험 사례가 보고되었으며, ‘몸 밖 경험’, ‘죽은 이들과의 만남’, ‘사랑과 평화의 감정’ 등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신성한 존재’를 만나기도 한다.
한국의 의학계는 임사체험을 환각, 뇌의 산소 부족, 약물 효과 등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브루스 그레이슨과 같은 연구자는 임사체험을 단순히 뇌의 작용으로 환원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들의 수많은 사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공통된 사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사람이 죽어 뇌∙심장∙폐가 기능을 상실하고, 의사가 의식도 없고 호흡과 심장박동이 멈추었다고 사망을 판정한 이후에도 또 다른 차원의 정신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임사체험이 보편적으로 일어남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뇌를 통해서만 인지하던 정신이 아닌 더 광대하고 자유로운 정신, 혹은 영혼의 경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체외이탈은 기본적으로 일어나며, 터널을 지나 황홀한 빛으로 나아간다. 안내인의 인도를 받아 죽은 가족이나 지인을 만날 수 있고,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회고하며 잘못한 일들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의 체험을 하게 된다. 잘못이 많을수록 파노라마 극장의 상영시간은 끝없이 늘어날 수 있다. 신의 경지를 체험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그것이 자신이 믿는 신이든 혹은 초월적 존재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죽음이 두렵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다는 점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또한 물질과 나르시즘에 도취되어 살아온 삶이 배려와 봉사의 삶으로 변화한다는 점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임사체험의 후유증은 그 좋은 세계를 잠시 구경만 하고 다시 이승으로 되돌려졌다는 데서 비롯한다. 두렵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으며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세계로 가려는 순간, 의사들은 심장충격기와 인공호흡기, 인공영양공급관을 들고 길목에 서서 내 몸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본서를 작성하면서 珍光은 매일매일 지금 이 순간에 더 충실하고 감사하게 살기로 마음먹게 된다. 길가에서 만나는 이름 없는 풀이나 나무, 바위에게도 더 친절하고,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감사와 명상의 시간을 결심하게 된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대단한 변화는 아닐 것이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珍光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신봉하기에 거룩한 자들의 위선을 경계한다. 다만 하루를 시작하며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 정도를 대단한 양보처럼 여길 만큼 이기적이거나 오만하지는 않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