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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Mar 08. 2023

상품화 되는 개인

보이즈플래닛 후기


나는 원래 아이돌에 크게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가사와 밴드 사운드에 집중하는 나에게 댄스곡은 무언가 부족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이번 년도가 되어서야 뉴진스, 르세라핌 등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그룹들을 접하고 편견이 깨지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보이즈 플래닛을 접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글로벌 팀의 < 백도어 >를 인상깊게 본 나는...


공교롭게도 입덕을 하게 되었다!


https://youtu.be/IURvaWWIP5E


무대가 특별히 감명 깊다거나, 실력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특히 밴드 음악을 주로 듣는 나로서는, 기본적인 가창력이라거나, 음악적 특별성이라거나 하는 부분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러한 부분은 신경도 쓰지 않았구나, 싶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킬링 파트를 맡은 '리키'의 외모였다.


내가 좋아하는 여러 아티스트를 종합해 생각해 보면...


( 차례로 왕허디, 진비우, 그리고 이승윤이다 )



정확히 무엇이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공통적인 분위기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치켜뜬 눈빛에 날카롭고, 피폐한 분위기. 건장한 체격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셋 다 빼빼 마른 것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친구의 말을 빌리면, 약간은 양아치 같은 외모를 좋아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말투나, 행동에서까지 그러한 것은 싫다. 알고보면 점잖거나 해맑은; 하여간 어렵다. 아마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연애를 못하는 이유겠지...어찌되었건 간에, 보이즈 플래닛의 '리키'는 그러한 나의 취향을 100% 저격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외모라, 연예인 중에서도 손꼽히고는 한다. 그나마 중국에서는 좀 있고, 우리 나라에서는 전멸한 정도인데, 그것도 아이돌, 주류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발견하게 되어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순위도 그렇게 낮은 편은 아니라, 데뷔 가능성도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3회를 시청하고 별안간 마음이 불편해졌다. 다음은, 문제가 된 영상이다.


https://youtu.be/3JShZn7ax9Y


언뜻 보면, 언어와 국적의 차이를 배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왕따 사건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평소 학교에서 중국인 친구들과 어울리고는 하는 나 또한 비슷한 일을 겪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요즘 진지하게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혐중 정서가 심각해지는 요즘, 한국의 시청자들에게 위 영상은 적잖아 불편하게 여겨졌을 터이다. 캠든을 제외한, 영상에 등장한 연습생들의 순위기 하락함은 물론일 것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나는 주동자인 크리스티안을 포함한 연습생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영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것이 보이고, 언뜻 리키가 자신들이 나눈 대화를 번역해 주는 장면도 나오다 말았다. 한마디로, 갈등이 심화되어 보이도록 유도하고, 편집한 것이라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갈등이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천지안위와 같은 경우에는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많이 어렵다고 들었다. 다국적 멤버인 만큼, 소통이 쉽지 않은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리고, 중국 멤버들이, 일단 자신들끼리나마 편하자는 마음으로, 이기적으로 굴었을 수도 있다.


내가 화가 난 것은, 그러한 편집이, 그리고 멤버들 사이의 갈등이 개개인의 성취, 즉 데뷔와 직관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 시스템이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렇다. 우리는 학교에서 성적을 매길 때, 인성을 포함하지 않는다. 개인이 부도덕적이고, 도덕적이고간에 노력을 한 것은 노력을 한 것이고, 성취는 성취다. 물론, 직장 생활에서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 몇몇 사회성이 좋지 못한 직원들이 배제되거나, 승진을 못하고, 해고 당하는 경우 또한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성이 좋지 못한 그 몇몇이 전부 인성이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직원들을 배제하는 이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더 많다. 무엇보다, 우리 일반 사람들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동료들과 사소한 갈등이 생겼다고 하여, 전국민적으로 비난을 받거나, 조롱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돌의 경우에는 다르다. 매순간, 감시라도 당하는 듯, 사소한 행동과 말 하나 하나가 평가된다. 실은 아무 생각없이, 또는 무의식적으로 저지른 것이었지만, 대중들에 의해 곡히 해석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꼬투리라도 하나 잡히면, 그동안 쏟아부은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된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잔인한 시스템이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들이 많아봤자, 30대가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나는 참 많은 아티스트들을 문어발식으로 덕질한다. 건강한(?)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 신조가 하나 있다면, 거리를 두자는 것이다.


그들은 내 자식도, 친구도, 애인도 아니다. 엄연한 성인이고, 그들이 인성이 나쁘든, 좋든,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그들 자신의 정체성에 아주 작은 부분일 것이다.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모두 완벽하지 않은 하나의 인간이며, 팬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그런 그들의 정체성을 파헤칠 권리는 없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비열하든, 못되었든, 학교 폭력의 가해자이든, 마약을 했든, 성 관련 병크를 내었든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떻게 해도, 나는 진실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알고리즘을 통해 전해지는 모든 정보는 하나같이 누군가 '그랬다더라' 하는 것 뿐이다. 만약, 그렇게 '그랬다더라' 하는 것 가지고 그 아티스트에게 정이 더 이상 가지 않는다면, 소비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들을 끌어내리고자 악성 댓글을 쓰거나,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것 뿐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아이돌이라는 시스템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지로 먹고 살기 때문이다. 실력이라거나, 외모라거나 하는 것은 전부 부수적인 것 뿐이다. 레트로의 뉴진스, 당당함의 르세라핌, 하이틴의 있지와 같이, 각 그룹은 그 그룹을 연상시키는 한가지의 키워드가 존재한다. 각각의 멤버들 또한, 대중에게 그 키워드에 맞는 스타일링과 외모, 그리고 더해 성격까지, 철저하게 관리되어 나타난다. 어쩌면 그들 개인의 정체성을 죽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 보이즈 플래닛 >에서 또한, 피디는, 소위 자신의 픽이라고 손꼽은 몇몇의 멤버들을 집중하여 보여준다. 성격과 서사를 조작하고, 급기야는 슬로우모션, 보정 그리고 후보정을 통해 보이는 실력까지 통제한다. 각각의 개인이 들인 그 모든 노력들을 무력화시킬 만큼, 그 힘은 대단하다.


나는 그렇게 엄연히 살아있는 누군가를, 그리고 예술을 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를 상품화시키는 것은 학대의 일종이자, 방송사, 그리고 자본의 갑질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실력적인 부분을 등급을 매기면서까지 강조하는 부분은 위선이라 생각한다. 그 모든 아이돌이, 상품이 아닌, 회사, 그리고 스텝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예술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주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 보이즈 플래닛 >에서 리키가 반드시 데뷔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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