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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너부리 May 24. 2023

5년 만에 유리창 청소

작지만, 큰 일들 해결하기


지은지 20년이 된 아파트에서 전세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새로 시작하는 가정보다는 이미 정착해서 오래 살고 계신 분들이 더 많았다. 넓은 평수에 아이들을 출가시키고 부부만 살거나, 손자들을 맡기기 위해 자녀들이 전세를 얻어 근처에서 사는 경우도 많았다.


 아이와 놀이터에 가거나 동네 산책을 할 때도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여러 나이대의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동 경비 아저씨와도 매일 인사를 나누고, 추석이나 설에는 선물을 드리기도 했다.  지상 주차의 어려움 말고는 불편함이 없었지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시기가 가까워 오자 고민이 많아졌다.


첫째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새 아파트에 입주를 했다. 입주 5년이 지난 지금도 상가와 오피스텔이 올라가고 있는 동네이다. 농담 삼아 처음에는 안방만 빼고 은행 집이었다. 여전히 어느 정도는 은행의 지분이 남아 있지만, 학원과 병원이 밀집해 있어서 맞벌이 부부인 우리에게는 감사한 동네이다. 부부와 아직 성년이 안 된 자녀로 구성된 가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 가끔 보이는 어르신들은 손자들을 돌보기 위해 자녀의 집에서 주중에 머무는 분들인 경우가 많다.


20평대에서 30평대 후반으로 이사왔을 때, 집안에 여백의 공간이 생겨 참 행복했지만^^ 아이가 하나에서 둘이 되고.. 시간이 흘러 더이상 여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짐이 많아졌다.  깨끗했던 공간들도 생활 흔적이 쌓였다.


일을 쉬면서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이 바로 창문이다. 맑은 날도 미세먼지가 낀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 정도로 오염이 되어 있었다.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침 일찍 나가, 해가 질 때쯤 들어왔으니... 또 물리적 심리적 여유가 없어서 창문을 본 기억도 없다.  반면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더러움이 불편하고,  사람을 초대하는 일이 잦으니 더 신경쓰인다.


둘째는 내가 만난 아이들 중에 가장 어려운 장난꾸러기이다.  갓 36개월이 지났는데, 전자렌지에 책을 돌리기를 시도하고, 얼마 전에는 각종 살림살이를 변기 안에 넣어 아저씨가 두 번이나 왔다 가셨다.


둘째가 잘 걷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 가족에게 창문은 멀리서 바라보는 곳이지 가까이 가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있는 시간에 유리창 청소는 정말 꿈도 꾸지 못한다. 휴직을 하고 나서 아이들이 없을 때 혼자 닦아 보려 했지만 이미 오염도가 너무 심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인터넷에서 자석으로 된 청소 도구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고층에 살면서 겁이 많은 나는 절대 사용할 수 없는 녀석이다.


하루 이틀쯤 고민을 하다, 전문가를 부르기로 했다. 늘 그렇듯 큰 돈이 들어갈 때 과감하게 행동하는 나의 패턴 대로. 몇 번의 검색을 한 후 지역 업체 중에서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청소 업체에 연락을 했다. 가격 안내를 받은 후, 유리창 청소에 대해 공부를 하다보니 방충망도 신경이 쓰인다. 방충망이 더러워서 실내 공기 오염이 되기도 한단다. 방충망도 바꾸고 싶어,  방충망 교체 후에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니 방충망 교체도 하신단다.


바로 날짜를 잡고, 사장님이 직접 오셔서 청소를 해주셨다. 모든 방을 하고 싶었으나 유리창 청소 특징 상 짐을 옮길 수 있는 거실과 안방만 부탁드렸다.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나중에 아이들 방을 옮길 때 다시 연락하면 나머지 방도 흔쾌히 해주신단다.


청소를 하고, 방충망 교체까지 하니 딱 네 시간이 걸렸다. 작업 하시는 도중에 나는 아이 미끄럼틀을 해체하고 아이 장난감 중에 버려야 할 것들을 추렸다. 아파트에 가서 작업을 하면, 대부분 그 시간에 함께 집안 청소를 하는 분들이 많다고.


아직 젊지만, 본인 일에 대한 자부심과 전문적인 태도가 멋있는 분이다. 원래 다른 일을 하셨단다. 유리창 청소는 외국에서 살 때 배워서 부업이나 알바로 하던 일이었는데 점차 수요가 많아져 일을 전문적으로 시작한지 7년 쯤 되셨단다. 주기적으로 상가 청소를 맡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새벽이나 사람이 없을 때 작업하는 상가와 달리 아파트는 직접 대면할 수 있고, 피드백이 즉각적이어서 본인이 직접 맡아 하시는 걸 좋아한다고.


10년 넘게 직장인으로 살고 있던 내 주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분이다. 용기가 정말 크신 분이다. 세상은 넓고, 만나야 할 분들은 많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점점... 창문이 깨끗해진다. 아니 창문이 꼭 없어진 것 같다.

성형전, 성형후처럼. 변화가 굉장히 극단적이다. 하늘이 맑은 날이라 그 차이가 진짜 크게 느껴진다.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자랑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 아이가 유리창이 없어져서 무섭다는 말과 자기방 창문이 더럽게 느껴지니 본인 방도 청소를 해달라 요구한다.


둘째는 유리창 청소를 하지 않은 누나 방에 가면 자꾸 눈이 온단다. 창문 밖 찌든 먼지들이 상대적으로 눈으로 보이는 것 같다.  ㅜㅡㅡ


사장님은 마지막까지 유리창과 방충망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법과 좋은 청소 도구까지 추천해 주고 가셨지만, 속으로 2년 뒤에 뵙겠습니다... 생각했다. 절대 문닫지 마시고, 더 성공하셔도.. 다시 와주세요.


창문이 깨끗해지니 집이 더 넓어보이고, 확실히 쾌적하다.  아이가 없을 때 창가 근처에 앉아 커피를 한 잔하는 시간이 기분이 좋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 시기에 청소하기를 잘했다.


임신, 출산의 와중에 코로나를 겪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소소한 일상과 일상을 살아가는 집의 소중함이다. 그리고 그걸 지키는 가장 기본이 청결이자, 청소일 텐데. 집안 일은, 생활 공간을 위한 일들은.. 쉬우면서도 참 어렵다. 작은 일이지만, 정말 큰 일이다.


깨끗해진 창문 덕분에 행복한 순간, 말 그대로 moment의 절대적 시간이 더 늘었다. 그 전에 너무 더러워서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행복인가?  휴일에는 쉬기만한 저질 체력의 워킹맘인 나에게도, 감사해야 하나.


일을 쉬고 있으니 쉽게 진행할 수 있었지만. 그래서 오늘도 또 찾아본다. 없는 돈이지만, 시간과 돈으로 올해 휴직 중에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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