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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너부리 May 27. 2023

나만의 순간을 허하기

대학 기숙사에서 나오기 전까지 혼자 방을 써본 적이 없었다. 10평 남짓의 작은 집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우리 세 가족은 집 안에 있는 동안 서로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늘 상대의 눈에 걸려 있었다.


버킷리스트라는 말을 몰랐을 때도 죽기 전에 나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이 이루고 싶은 일들 중 하나였다.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은 내 방, 나만의 안전한 공간.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작은 공간이지만 원룸을 얻어, 혼자 지내게 되었을 때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긴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 나에게 고민거리를 주는 사람들도,  돌아보면 의미가 있다.  만남은 나를 들뜨게 하고, 활기를 준다. 하지만 아무도 곁에 없는 시간과 공간은 나를 풍성하게 채운다.


에너지 급속 충전이 필요할 때는 사람들을 찾지만, 깊고 단단한 에너지가 필요할 때는 홀로 있어야 한다.


주중에는 밤 열 시까지 야근을 하더라도, 토요일에는 오전 열 시가 넘도록 침대 위를 굴러다니며 티브이를 보고, 책을 쌓아두며 읽던 시절이 있었다.


남편을 만나고, 아이들이 태어나 '엄마'가 된 후 혼자 있는 시간은 더욱 귀하고 달콤하다.  늦잠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매일이 여름 농부 같다. 주말에 오히려 일찍 일어나 자는 척하는 엄마를 깨운다. 지난 10년간  여덞 시를 넘겨 기상해 본 적이 없다.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일 분 일초를 정말 쪼개 생활한다. 그 사이에 내가 혼자 있을 여유는 없다. 집안 일과 업무,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소화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갈망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  타인과 물리적으로 단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이 나를 괴롭혔다. 방이 네 개라도 아이들과 나와의 주 생활은 결국 서로가 눈에 걸릴 수 있는 공간 안에서 일어난다. 안방, 첫째 방, 옷방, 남편이 업무를 하는 서재 방, 결국 나만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혼자 있어도 혼자 있지 못한다. 친구들과 좋은 곳에 가면 아이들이 생각난다.  뉴스를 보면서 아이들을 걱정한다. 항상 아이들과 함께이다. 거기다 겁쟁이인 '나'는 첫째가 여섯 살이 된 후에도 놀이터에서 반경 3m 거리를 유지했다. 엄마들과 대화를 할 때도 아이 주변에 누군가 오면 긴장했으며, 언제든 튀어갈 수 있는 준비를 했다.


결국 시간적, 공간적, 심리적으로도 오롯이 나만의 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아이와 처음 생활할 때 태어나 '절망'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 육아 초기에는 남편이 바빠 돕지 못하거나, 내 일이 많이 피곤할 때는 설거지를 하면서 울기도 했다. 숨이 막혔다. 아이들이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에 고의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해 만든 이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나만 사라졌으면 했다.


아이들에게 늘 집중하느라 나를 방치하고 있었다. 당연히 모두에게  '나만의 시간과 공간', '나와의 순간'이 필요하다.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 내가 쉬어야 가정을 더 잘 돌볼 수 있다.


직장에서 10년 정도의 경력이면 과하게 몰입하지 않고도 업무를 처리하는 여유가 생긴다. 다행히 육아도 마찬가지이다. 엄마의 '꼼수'도성장한다. 연습을 통해 아이와 놀면서 꾀를 부리거나, 짧은 시간의 여유로 마음을 회복하는 스킬이 는다.


단, 혼자의 시간을 무조건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즐기는 연습을 해야한다. 처음에 아이들과 떨어져 시간을 보내면 막막하고, 불안하다. 그 감정을 덜어내고, 나에게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의 시간을 누리기 위해서 동호회에 들어갈 수도, 온라인 학습을 할 수도, 운동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잠을 잘 수도 있다. 내가 가장 나답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 초조해하지 말고, 나를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자! 나 자신을 알아가자!


설득하기 가장 어려운 대상은 '아이들'이다. 정말 잠시 동안의 쉼이 있어야 엄마가 더 즐거운 엄마, 웃는 엄마가 된다는 것을 계속 이야기했다. 1년에 4-5번쯤,  1박 2일로 집 근처에 있는 호텔을 잡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다음날 집 상태도, 아이들 걱정도 다 잊고. 잠옷 한 벌과 책, 핸드폰만 들고. 아직 엄마와 떨어지기 어려워하는 둘째 아이에게는 늘 주문을 외운다.  


"자, 따라하렴! 엄마는 운동을 하면,  화를 안 내!" ,
 "엄마도 친구가 많아. 친구랑 놀다 집에 오면 엄마는 웃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스스로 나의 순간을 허락하는 것이다. 엄마로서 우리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우리는 좋은 엄마이고, 이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중요한 휴식과 재충전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사항이다.


죄책감을 덜고, 스스로에게 나만의 순간을 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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