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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너부리 Jun 09. 2023

토닥토닥 노예

둘째가 한 달째 감기앓이 중이다. 어린이집을 가다 못 가다 반복 중이다. 요즘 첫째는 학교나 학원에서 더울 때는 마스크를 벗고 생활한다. 첫째가 옮아온 감기가 본인은 하루 만에 뚝하고 떨어졌는데, 면역력이 약한 둘째는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Bing이 그린 그림


짜증도 늘고, 힘들다며 식탁에서 소파까지 이동하는 데에도 안아달라 '엄마'를 외친다. 숟가락을 나에게 주며 밥을 먹여 달란다. 


"시금치 말고, 고기, 감자 말고, 물고기. " 


저 태도는 '상전일까? 아니면 진상일까?' 아프니까 참는다. 네 살이지만, 아파 울 때 달래기에는 아직 안고 '둥가둥가'가 최고이다. 운동으로 겨우 좋아지고 있던 허리에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다. 첫째도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어서야 아픈 횟수가 줄었다. 각종 전염병을 계속 바꿔가며 걸려 올 것이라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으면서도, 지친다.  


게다가 미디어에 너무 많은 노출이 있어서 줄이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 첫째 때는 케이블도 없이 채널 다섯 개로 버텼었는데, 둘째는 내 휴대전화에서 손가락으로 영상을 움직이며 정확히 '이거'라고 가리킨다. 엄마와 그리기, 만들기, 책 읽기를 하다가도 한 시간만 지나면 텔레비전이다. 다 나으면 두고 보자! 너는 이제 집에 못 들어간다. 


그중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더위이다. 딸은 요즘 내가 화가 난 것 같으면, 열려 있어 봤자 의미 없는 창문을 닫고, '우다다' 달려가 에어컨을 켠다. 엄마라는 인간과 10년 간 살며 터득한 지혜. 날은 덥지만 아이 때문에 찬바람을 쐴 수 없어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그냥 버티는 중이다. 낮잠 시간이 되면 누나가 전주 여행에서 사 온 판소리를 완창 할 때 쓸 것 같은 부채를 찾아들고 나와 나에게 쥐어준다. 


"부쳐 줘." 


선풍기 머리를 나에게만 향하게 하고, 선풍기 옆에 살짝 붙어 아이에게 부채질을 하는데, 자기 가까이 오란다. 착 옆으로 누운 다음 내 남은 한 손을 잡아 자기 배 쪽으로 끈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은 채로 두드린다. 


"토닥토닥." 


'내가 토닥토닥 노예니?' 힘이 들어 잠시 멈추면, 본인이 낼 수 있는 최대한 근엄하고, 진지한 목소리를 말한다. 


"토! 닥! 토! 닥!" 




첫째는 34주 둘째는 35주에 태어났다. 모두 몸이 약하고, 툭하면 감기에 걸린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례를 자주 했다. 친구들도 늘 콧물을 달고 살고, 웬만한 감기로는 병원도 잘 가지 않았었는데. 자주 아픈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아홉 살, 아빠와 단 둘이 큰 도시에 있는 한의원을 물어 물어 찾아가 진료를 보고 온 기억이 있다. 아빠와 둘이 보낸 유일한 기억.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는 아픈 나를 돌보는 것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늘 시간이 없으셨기 때문에, 병원도, 밥이나 약을 챙겨 먹는 것도 다 내가 해야 했지만. 그래도 밤에 돌아오셔서는 내가 잠이 들 때까지. 아니면 내가 잠들고 나서도 팔다리를 주무르거나,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 딸임에도 토닥토닥해주셨다.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어서 나아라."


이상한 가락에 맞추어 이상한 노래를 부르시며, 나를 만지셨다. 내가 기억하는 이후로는 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해주신 적 없지만, 나는 늘 그 손을 기억한다. 가끔 철없이, 조금만 더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으니까. 


'토닥토닥 노예' 


그 손이 지금까지 나를 지킨다.  '공부해라, 이 회사에 가라, 밤늦게까지 놀지 마라.' 자식이라면 당연히 잔소리를 들었을 법한 상황에서도 강요의 말씀을 전혀 하신 적이 없으신 분이라, 아무 가르침을 받지 못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 저 손을 생각하면 '아니네. 너무 많이 배웠네 '한다. 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도 엄마 발끝에도 못 따라갈 것 같다. 


체력이 늘 약한 나는,  토닥토닥을 하다. 지치지만. 결국 짜증이 나. 남편에게 넘기곤 하지만. 그 손을 기억하며, 다시 마음을 돌린다. 그래, 이 기억이 너를 지켜주겠지. 이런 부탁이 그리워지는 날도 있겠지. 원하는 만큼, 필요한 만큼. 너희들의 '토닥토닥 노예'가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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