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랭클럽, 해체 위기에서 벗어나다

- 함께 만든 이야기의 주인을 찾아서

by 토마토샘

4학년이 된 첫 날 딸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우리 담임 선생님이 남자야.”

태어나 처음 만난 남자 담임 선생님. 어린이집 6년, 학교 3년, 태권도 학원을 뺀 선생님이 모두 여자였기에 남자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조금 낯설고, 어쩐지 긴장되는 일이었나 보다. 선생님이 어떤 분이시냐고 물었더니, 며칠 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본인은 진지한데 웃기고, 친절한데 또 무서워. 머리도 특이해. 머랭 같아.”

" 머랭? 그 쿠키 말하는 거야?”

딸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로 이렇게 동그랗게 말아 올렸는데, 진짜 머랭이랑 똑같아.”


그날 이후, 딸과 친구들 사이에서는 ‘머랭 선생님’이라는 별명이 자연스럽게 붙었다. 멀리 서울에서 왕복 네 시간씩 매일 출퇴근하신다는 사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선생님. 딸아이 말로는 다정하고 엄하지만 묘하게 재미있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으시단다. 그 무렵부터 딸과 친구들은 머랭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한 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자란 세대에게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창작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딸은 쉬는 날이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춤을 추고, 태권도 동작을 찍고, 노래를 부르며 영상을 만든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지도를 받는 것도 아니지만,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장면을 만들고 지금을 담는다.


“엄마! 우리끼리만 볼 거야. 절대 안 올릴게.”

우리 집의 규칙 하나. 딸이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어떤 창작물도 SNS에는 올리지 않기로 했다.
딸도 그 약속을 알고 있다. 나중에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때까지는 너의 모습을 우리끼리만 간직하자.'고 당부하고 있다.


선생님 스토리 만들기도 이 연장선상이었다.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놀이였다. 어렸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수업 중 선생님의 말투나 동작을 흉내 내거나 쉬는 시간에 머랭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짤막한 상황 정도를 정리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곧 그것은 놀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창작 활동’이 되었다. 한 명은 스토리를 쓰고, 한 명은 그림을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설정과 구성을 정리했다. 딸의 책상 서랍에는 수 권의 공책이 쌓여갔다. 스키를 타는 머랭, 이세계로 소환된 머랭, 감기에 걸린 머랭…

심지어 딸은 직접 만든 머랭 캐릭터로 키링을 만들고, 친구들과 나누기도 했다.


머랭 선생님 키링

그러다 어느 날, 클럽의 균형이 무너졌다.


"엄마, 머랭 클럽은 해체 되었어! 이제 절교야!"


다음 스토리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예전에 했던 작업을 리메이크 하고자 했던 딸과 세계관을 확장시키고 싶어하던 다른 친구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쓴 이야기야.”
“아니야, 캐릭터는 내가 그렸잖아.”
“그건 저작권 침해야."

"아니야. 저작권. 너가 포기해. 우리 각서 썼던 거 기억 안 나? 탈퇴하면 저작권 포기하기로."


친구와 통화하는 딸의 단호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슬그머니 문밖에서 귀를 기울였다.

머랭 클럽은 해체 위기를 맞았다. 통화가 끝난 후, 놀란 나는 조용히 물었다.


"저작권이 뭔지는 알아?”

“수업 시간에 배웠어.”

"근데 그 저작권이 그렇게 중요해?" "응! 중요해! 우리가 약속했으니까!"

그 순간,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고전을 가르칠 때마다 설명하는 구전 설화나 판소리의 '이본(異本)'. 그리고 그 이본이 지닌 다양성과 개성들.
누군가가 들려준 이야기를 다음 사람이 기억하고, 살을 붙이고, 변형하며 스토리가 풍부해진다. 같은 이야기라도 마을마다 인물도, 결말도, 이야기 안의 작은 사건들도 조금씩 달라진다. '심청전'도,'장화홍련'도 지역과 구전하는 사람에 따라 수없이 다른 버전이 존재한다.


머랭 클럽 아이들은 지금, 그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머랭이라는 하나의 인물 안에 각자가 좋아하는 색을 입히고, 본인들만의 목소리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갔다. 다만, 우리 어린 시절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이제 그 이야기는 '함께 만든 것'이자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는 점이다.


창작과 소유의 개념이 아이들의 세계에까지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함께 만든 이야기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낯설지만 중요한 질문이 던져졌다.


며칠간 머랭 클럽은 조용했다.

딸은 새로운 이야기도, 그림도 손대지 않았다.

“엄마, 나 이제 머랭 안 그릴 거야. 재미없을 것 같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책상 한쪽에 놓인 머랭 캐릭터 공책은 치우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머랭 클럽은 조금은 허무하게, 그리고 아주 아이답게 돌아왔다.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구와 딸은 서로를 만나자마자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같이 만든 거니까, 공동 저작권 하자.”


화해는 그렇게, 아주 단순하고 따뜻하게 찾아왔다. 누구의 잘잘못도 따지지 않았다. 그저, 처음 그랬듯 '머랭 선생님이 좋아서 시작한 일'을 다시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약속했다.


“머랭 이야기는 같이 만들자. 대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있으면, 각자 따로 만들고 그건 각자의 걸로 인정하자.”


아이들은 창작의 기쁨과 권리의 의미를 동시에 깨달은 듯했다. 공동의 창작물은 함께 나누고, 각자의 창작물은 서로 존중하기. 그 안에서 더 자유롭고 풍성한 머랭 세계관이 되살아났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인정하고, 캐릭터와 스토리를 공유하며, 때론 역할을 나누고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더 '진지하게'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분명한 것은, 누구 하나의 머랭이 아닌, 함께 만든 머랭, 서로를 존중하며 확장시킨 이야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어른인 나에게 저작권은 규칙이고 법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저작권은, 이야기를 만든 사람을 존중하는 약속이자 믿음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소유하고, 또 서로의 창작을 존중하며 다양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 이 시대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구전 설화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어른으로서, 엄마로서, 교사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이야기의 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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