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자식.

by 토마토샘

엄마와 나란히 누워 자는 건 얼마만일까? 일 년에 몇 번 고향 집에 와도 아이들을 재우느라 엄마와는 다른 층에서 잠을 잔다. 결혼 전에도 상황이 허락한다면 홀로 자는 것이 편했다. 마지막으로 엄마 옆에서 편하게 잠이 들었던 건, 서울로 대학을 가기 전이려나? 이제는 엄마 옆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여행을 가도 엄마, 우리 가족, 동생네 가족이 따로 방을 이용했다. 이제는 조카 다섯 살, 둘째 아이 섯 살 두 꼬맹이들이 꽤 자라 의사 표현을 하고, 방을 세 개 구하는 것보다는 두 개 구하는 것이 저렴하니, 남녀로 나누어 방을 사용한다. 하나 더 하자면 사위들의 한 잔 하는 시간과 할머니의 편안한 쉼을 위해서기도 하다.


엄마의 부산 첫 방문, 해운대뿐만 아니라 더 많은 장소들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워커홀릭인, 누구보다 바쁜 엄마 때문에 1박 2일이라는 짧은 일정은 결국 '부산을 방문했다.' 정도 외의 다른 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장장 다섯 시간에 걸쳐 부산에 왔지만, 안개가 자욱해 해운대의 풍경도. 스카이전망대에서 볼 수 있다는 수평선도 보지 못했다. 그냥 근처의 횟집에서 생선회와 킹크랩을 엄마에게 얻어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엄마와 나, 딸과 동생, 침대가 두 개인 방이라 두 명은 바닥에서 자야 했다. 열두 살이 된 딸과 동생이 침대에서 자고, 나와 엄마는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감기 기운이 있던 데다가 환기가 되지 않는 도심 숙소는 지나치게 건조했다. 나도 피곤했는지 완전히 깨지는 못했지만,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내가 기침을 하고 있구나.' 알 정도의 기침을 밤새 했다. 내 기침 소리에 엄마가 깨셨다. 일흔의 엄마가 이불을 끌어다 마흔셋의 딸의 목까지 덮어준다. 지난 10년 간 두 아이를 키우며 늘 이불을 덮어만 주다 누군가 이불을 덮어주는, 이불 덮임을 당하는 느낌이 낯설어 순간 잠에서 깼다.


"날이 추운가 보다." 하시더니 엄마가 보일러 온도를 올린다. 손녀에게 " 왜 춥게 화장실 문을 열고 다니냐."며 핀잔을 준다.


고마운 마음, 한편에 작은 반항심이 올라온다. 1957년생인 엄마는 여전히 육아 중이다. 이 망할 육아는 언제 끝나는 거야? 나는 언제 서야, 독립할 수 있는 걸까? 아이 둘을 낳아 기르고, 돌아가신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지고, 직장에서 아무리 잘난 척을 하고, 입바른 말을 해대는 어른이라도 엄마에게 나는 그저 자식일 뿐이다.


동시에 언젠가는 이런 엄마가 옆에 없어진다는 두려움에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사람은 언제부터 어른이 될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너무도 쉽게, "우리 엄마가 세상에 없을 때?" 답했다. 엄마가 세상에 있는 동안은 경제적인 독립도, 지금 살고 있는 물리적인 거리와 상관없이, 나는 그저 엄마의 자식이다. 내 마음 안의 어린이는 늘 엄마 마음의 어딘가에 닿아 있다. 그리고 그 어린 마음은 오늘 엄마가 덮어준 이불의 기억을 차곡차곡 또 저장해 놓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더 이상 엄마의 자식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었을 때, 힘든 어느 날 이 기억을 끄집어낼 것이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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