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지나 바느질로 전해지는 사랑의 실
엄마는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셨다.
글씨도 익숙지 않으셨고, 계산도 늘 손가락으로 더하셨다.
어릴 땐 그게 부끄러웠다.
학교 숙제를 도와달라고 말해본 적도 없다.
그런 엄마가 쉰이 넘은 나이에 운전면허를 따셨고,
예순이 넘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하셨다.
그건 단순한 노력이 아니었다.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의지였다.
엄마는 늘 손으로 살아오신 분이다.
옷을 사드려도 꼭 허리선을 잘라 다시 맞추고,
목깃은 살짝 낮추고, 소매는 줄이고 늘리셨다.
“몸은 늘 바뀌지만 옷은 바뀌지 않으니, 내가 바꿔야지.”
그 말도, 그 손끝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담담하고 단단했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우린 ‘교복 자율화’ 1세대였다.
친구들은 각자 개성 있는 새 옷을 사 입었고,
나도 몰래 그런 옷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엄마는
“복장학원에서 배웠다”며
치마와 남방(셔츠)을 직접 만들어주셨다.
핏은 어정쩡했고,
색상은 촌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정말 너무 부끄러웠다.
입학식 날, 나는 고개를 숙이고 교문을 들어섰다.
그 해, 나는 엄마가 지어준 옷을
일 년 내내 입고 다녔다.
마지못해 입었고,
입는 내내 마음속 어딘가는 구겨졌다.
그 기억은 한동안 잊고 있었다.
내가 바느질을 배우기 전까진.
지금의 나는 침선 바느질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한복도 웬만하면 혼자 뚝딱 만들어 낸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 행사에 입히기 위해 직접 당의와 치마, 그리고 족두리를 지어줬다.
작고 여린 얼굴 위에 족두리를 얹히는 순간,
나는 괜히 울컥했었다.
아들(초등학교 4학년)에게는
‘저승사자’ 콘셉트의 검은 한복과 갓, 두루마기를 입혔다.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고,
사람들은 “기발하다”며 박수를 쳤다.
나는 흐뭇했지만,
한편으론 딸아이의 표정을 자꾸 바라보게 됐다.
그 아이는, 나처럼
조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예쁘다”는 말에도,
“엄마가 직접 만든 거야”라는 말에도
그 표정은 어쩐지 익숙했다.
그 순간,
나는 중학교 1학년의 내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가 만들어준 남방을 입고 고개를 숙였던 그날.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우리 아이가 느낀 감정도,
어릴 적 내가 느꼈던 그 감정도
결국은 사랑의 무게였다는 걸.
손으로 꿰맨 옷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이 담겨 있다.
실의 길이만큼,
바느질의 촘촘함만큼,
엄마의 사랑도, 나의 사랑도 그렇게 표현되어 왔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바늘과 실을 들고
한복을 짓고, 함을 만들고,
지승을 꼬고, 줌치를 두드리며
내가 받은 것들을 다음 세대에 꿰매듯 전하고 있다.
아이들이 지금은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알게 될 것이다.
가위질로 시작된 사랑이,
바느질로 이어져
결국 마음을 감싸는 옷이 된다는 걸.
나는 오늘도
그 옷을 짓는다.
말 대신, 손으로.
그 어떤 언어보다 오래 남는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