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뭔가 끄적거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 전 작은 내 친구는 자신이 사랑하는 문학이야기나 주변에 재미있었던 일들, 슬프고 억울한 일들을 매일 같이 사소한 일들조차 내게 종알 거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답하느라 정신없어 조금은 지쳤을 무렵이었을까. (사실 그때 내 감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친구는 강단에 선 교수님이 동성애는 병이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분노에 찬 듯 이야기를 뿜어냈었다.
당시 내가 얘기했던 것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 그 사람은 기독교이고 그 사람은 평생 그게 맞다고 생각한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라고 얘기했었다.
'그걸 듣는 너희는 성인들이고 옳고 그름 정도는 파악할 수 있지 않냐'라고.
그 친구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아이들이 권위있다 생각하는 교수가 그렇게 대중이 다 듣는 자리에서 그러한 자신의 말도 생각을 말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
했을 때 아차 했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리 또 답했을까.
아마 나는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니야. 그런데 그 사람이 왜 그런 얘길했는지는 알겠다는 말을 한 거야.'
라는 변명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거의 그러한 변명으로 하루종일을 보냈던 것 같다.
결국 내가 잘못 생각했는 것을 인정하며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그 이후 그 친구와는 만나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누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왜 그렇게 상처를 받고 소리를 지르고 울고 있는지. 나와의 우정은 이렇게 단칼에 자를 수 있는 것인지.
오래도록 앓았던 것 같다.
내게 큰 상처였으니까. 사람을 잃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상실감으로 자리하니 말이다.
기운을 차리고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환치료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었다. 퀴어재단의 강의도 들어보고 책도 읽고 인터넷에서 글도 읽고 하며 내가 무엇을 잘못 알았는지 나도 강단에 서는 사람으로서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가 계속 심장에 박힌 가시처럼 떠올리면 아프고 숨이 막히는 그런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상처준 사람이니까.
그 친구는 나에게 평생 얻지 못할 선물을 주었었다. 누구도 그 친구처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 친구처럼 절실하게 이야기하는 친구도 없었다.
삶에 대해 깊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하는 작은 친구라 명명하며 참 행복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이후 거의 글을 쓰지 않는다. 독서모임도 가보고 글쓰는 모임도 가봤지만 그 어떤 것도 동기가 되지않았다. 그래서 이젠 마음의 동요가 없는 한 책도 잘 읽지 않는다.
가끔 나는 내가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나무 밑에 떨어져 누군가에게 밟히고 바람에 흩어져버리는 그런 낙엽. 어떻게 하겠다는 작은 의지조차 없이 그저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주 긴 편지인데 오랜 시간 많이 아팠고 무서웠고 힘들어서 사람을 만나는 것 조차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내 아픔은 아픔인 것 같지도 않아 또 오래도록 그 친구의 이야기를 붙잡고 울었었다. 톡이 오고 이야기가 오갔으나 그 친구를 힘들게했다는 죄책감이었는지 오랜 시간 흐른 뒤의 연락이라 낯설었는지 난 그저 웃는 것 말고는 해 줄 말이 없었다. 단지 애쓰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잘 얘기해줘야지..싶어서.
그렇게 오래도록 그 친구의 긴 편지에 아직도 나는 답신을 쓰지 못했다. 단 한 줄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괘념치 말라 했지만 나는 내가 부끄럽고 아프다.
오랜만에 문득 떠올라 또 긴 편지를 읽었다. 내가 농담처럼 해댄 말들에 상처받았을 그때의 그 친구를 생각하니 또 마음 한 곳이 저릿하다. 내가 이렇게 오랜만에 일기를 쓰는 것은 그 친구가 생각나서인 것 같다. 아직도 나는 답장을 보내지 못하는 겁쟁이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친구에게 마음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언젠가 더 시간이 흐르고나면 나는 답장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먼 곳으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전에 썼으면 좋겠다. 오랜시간 준비하고 있었던 미안함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