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넉넉한 마음은 넉넉한 체력에서 온다.

(부제 : 오지 않는 택시)

by 장소연

바티칸 투어를 마치고 나와 ‘올드브릿지’에서 젤라또로 잠깐 당 충전을 한 뒤 나는 얼른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구글맵을 켰다. 진짜 가이드였다면 눈 감고도 길을 다녔겠지만 나 역시 초행길에 서 있는 관광객일 뿐. 의존할 데라고는 구글 맵 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티칸 앞은 너무 복잡해서 택시를 부를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나는 엄마와 동생에게 근처 지하철역까지만 걸어가자고 얘기했다. 힘내자, 택시를 타면 20분 만에 집에 갈 수 있다. 이제 모두의 피로도가 한계에 가깝게 올라왔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금방 나올 것 같았던 지하철역은 생각보다 거리가 있었다. 하나도 피곤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모를까 그때 당시의 체력으로는 사실 5분 거리도 50분처럼 길게 느껴졌을 거다. 무거운 발을 이끌고 드디어 지하철역 사거리 도착하자 나는 택시 어플을 켜서 택시 호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평일 퇴근시간과 겹쳐 서였을까 아님 바티칸에서 벗어난 것이 문제였을까? 애석하게도 나에게 어떤 택시도 응답하지 않았다.


“택시가 안 잡혀?”


나만큼이나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로 엄마가 묻자 나는 금세 초조해졌다. 추가 금액을 내는 프리미엄 호출을 시도하고, 다운 받아온 택시 어플을 총 동원해 호출을 시도해도 계속 실패하는 배차. 나는 초조를 넘어 점점 심각해졌다. 비상사태, 이건 진짜다.


“왜 안 잡히는 거야?”


아, 걱정이 가득한 엄마의 물음에 나는 잔뜩 예민하게 날이 섰다. 나 역시 이유라도 알았으면 좋겠는 마음이 굴뚝같았으니까. 하지만 시간대가 문제인지 택시를 부르는 장소의 문제인지 로마에서 고작 두 번째 택시를 잡아보는 내가 알 길이 있을 리가. 그리고 하필 그걸 물어보는 엄마가 그 순간엔 얼마나 야속한지. 택시한테 거절당하고 엄마한테 짜증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의 입에선 짜증 섞인 소리가 삐져나왔다.


“하... 나도 몰라, 엄마.”


오늘만 해도 몇 번째 울고 싶은 건지 셀 수도 없었다. 한 숨을 내쉬는 나를 보며 엄마는 같이 심각해졌다. 동시에 계속 ‘그럼 어떡해야 돼?, 왜 안 잡히지?’ 같은 질문형 추임새를 넣었다. 안다. 그 질문들이 분명 나를 독촉하거나 채근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나오는 걱정의 표현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로마 시내 한 복판에서 택시 하나 부르지 못하는 딸내미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삼십 분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더 이상 택시에게 거절당하는 걸 참을 수 없던 나는 결국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아무래도 택시가 안 잡힐 것 같아. 우리 대중교통으로 가자.”


사실 피곤한 엄마를 제외하고도 30분이 넘게 길바닥에서 택시를 잡았던 건 바로 택시로 20분이면 되는 숙소까지의 거리가 대중교통으로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 번에 가는 버스나 지하철도 없이 환승은 필수. 심지어 당연히 택시를 타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로마 교통권 시스템에 대해 알아본 바가 없었으며 소매치기가 빈번하다는 로마의 지하철을 엄마를 데리고 타는 것 역시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감내해야 할 만큼 야속한 택시는 잡히지 않았고 그나마 가장 희망적인 것은 우리가 지하철 역 앞에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오죽하면 쟤가 지하철을 타고 가자고 했을까 싶었던 엄마는 별다른 짜증을 내지 않고 따라섰다. 잔뜩 예민해진 딸을 향한 배려인지 눈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 말 없이 따라와 준 엄마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당신이 선택한 것이 패키지 투어가 아니라면 여행에서 돌발 상황은 수도 없이 발생한다. 간혹 그런 상황들이 생겼을 때 무사히 그 상황을 해쳐나갈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은 의외로 당신의 체력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분을 간과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피곤함은 예민함이 되고 넉넉한 마음은 넉넉한 체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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