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9 내게 너무 긴 로마의 휴일

by 장소연

시작에 앞서 아직도 첫 날의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매우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악몽같은 로마의 휴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게 너무 길었던 로마에서의 첫 휴일, 그 마지막을 장식할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그땐 미처 몰랐다.


지하철을 타고 환승할 역에 내려 숙소 근처까지 오는 버스를 타고 나서야 나는 조금 여유를 찾았다. 그건 엄마나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거리의 정류장에 내린 후 우리는 물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위해 마트에 들러 재빠르게 몇 가지만 구입해 나와 아파트를 향해 걸었다. 온 거리에 내려앉은 어둠 속을 걸으며 그래도 이제 정말 오늘의 끝이 보이는구나, 적어도 그때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오전에 체크인을 위해 잠깐 들러 확인했던 것처럼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총 세 개의 문을 열어야 했다. 첫 번째 아파트의 현관, 두 번째 우리 동의 중문, 마지막으로 우리 집의 정문.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아파트도 비슷한 구조로 되어있는데 다만 다른 것은 우리나라는 도어락, 여기는 열쇠라는 점이었다. 그래도 혹시 헷갈릴까봐 문마다 짝꿍인 열쇠를 사진까지 찰칵 찍어 놓았으니 큰 걱정은 없었다. 자 어디 문을 열어볼까. 아파트 현관은 큰 네모 모양 열쇠, 중문은 큰 동그라미 모양 열쇠. 무리 없이 두 단계를 클리어 한 나는 자신 만만하게 마지막 남은 문 열기를 시도했다. 집 앞 문은 이제 하나 남은 작은 동그라미 열쇠. 찰칵, 마지막 열쇠까지 홈에 딱 맞게 들어가자 슬쩍 긴장이 풀렸다. 그런데.


“...엄마 문이 안 열려”


분명히 이 열쇠가 맞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방향이 틀렸나 싶어 오른쪽 왼쪽 번갈아 돌렸지만 문은 묵묵부답. 이제 정말 다 왔는데 이 문만 열면 되는데. 더 이상 뭘 해볼 힘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던 나는 결국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았다. 로마의 휴일? 웃기고 있네. 로마에 온지 하루 만에 나는 로마가 지긋지긋해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집주인한테 전화라도 해볼게.”


한참을 온 가족이 문 앞에서 끙끙 거렸지만 열지 못한 문 때문에 결국 나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거의 저녁 9시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실례고 뭐고 이러다가는 문 앞에서 노숙을 해야 할 판이었으니 선택지는 없었다.


그나마 가장 다행이었던 것은 늦은 시간임에도 집주인이 금방 전화를 받아주었다는 것이었다.


"Hello, I'm your guest today, sorry It's too late.

But I have some problum... I CAN'NT OPEN THE DOOR"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게스트인데,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겨서요... 문이 안열려요)


가끔 생기는 일인지 아니면 워낙 긍정적인 성격인지는 모르겠으나 거의 울먹이는 나의 목소리에도 집주인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아 별 문제 아니에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열 수 있어요."


주문을 걸듯 집주인은 나를 다독였다. 에어비앤비를 빌리는 경우 무책임한 집주인들도 많은데 그나마 기꺼이 나를 도와주려는 그 덕분에 나는 가까스로 터지려던 멘탈을 잡았다.


그리고 그가 시키는 대로 차근차근 문 열기를 시도했다. 윗 열쇠를 오른쪽으로 완전히 돌리고

밑 열쇠는 반대편으로, 자 이제 밀기만 하면...!


"...Still Not OPEN."


분명 그는 훌륭한 테라피스트였지만 문을 여는 데는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렇게 또 수 분간 문을 열기위해 통화가 이어지던 그 때


"..."


그와의 전화가 끊겼다. 아니 정확히는 내 핸드폰에 인터넷 연결이 사라졌다. 순간 나는 온 몸에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 했다.


맨 처음엔 단순한 연결 오류인 줄만 알았다. 조금 기다리면 인터넷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그냥 나의 바람이었을 뿐. 안 그래도 모뎀에 문제가 있었다고 했으니 건물(?)의 문제인가 싶어 재빠르게 건물 밖으로 달려 나가보았지만 아파트 정문을 벗어나도 내 핸드폰은 여전히 먹통이었다. 아무래도 E-Sim의 문제인 듯싶었다. 그러나 로마와 서울의 시차는 7시간. 지금이 저녁 9시라는 건 서울은 새벽 4시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 시간에 고객센터를 운영할리는 당연히 없었다.


어쩌면 이대로 문 앞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하 이탈리아 로마에 까지 와서 문 하나를 두고 노숙이라니. 차라리 여행 유튜버였다면 콘텐츠 각이라도 나온다고 긍정회로를 돌렸을텐데... 아님 차라리 정말 혼자였다면 다 내려놓았을지도 모르겠으나 20시간을 날아 멀리 유럽까지 온 엄마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꼭 방법을 찾아야만했다.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다. 혼자가 아니다... 어, 그렇다는건?


엄마와 동생의 핸드폰은 E-Sim이 아닌 유심을 구매해 넣어둔 것이 기억났다. 그렇다는 건 두 사람의 핸드폰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다. 갑자기 희망이 생긴 나는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던 호스트의 번호를 찾아냈다. 그리고 '쓰리 유심'을 통해 받은 영국 번호로 동생의 핸드폰에 와츠앱을 설치했다. 유럽이나 미국권에서 많이 사용하는 '와츠앱'은 우리나라의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어플인데 카톡처럼 처음 사용할 때 번호로 인증을 받아야한다. 그러니까 비록 미리 어플을 설치해 오지 않았지만 유심을 사 외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번호를 받아둔 덕분에 인증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와츠앱 인증이 성공하자 나는 당장 호스트에게 다시 보이스콜을 걸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호스트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Are you okay?"


갑자기 전화에서 사라진 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던 호스트는 내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여전히 문을 열지 못했다는 소식에 바로 이쪽으로 오겠다는 말을 전했다. 직접 오겠다는 그의 말에 비로소 오늘의 끝이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Thank you really, Then how long does you take to come?"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혹시 오려면 얼마나 걸리세요?)

"About 20min"

(20분 정도 걸릴 거예요)


나는 곧장 이 소식을 엄마에게 전했고 전화를 받고 있는 나를 계속 걱정스레 바라보던 엄마도 그제서야 조금 마음을 놓는 듯했다. 그래, 이십 분만 지나면 이제 쉴 수 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모든 영혼이 털린 나는 무기력 하게 털썩 주저앉았다. 한켠에 힘없이 놓인 마트 비닐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쟤네를 살 때까지만 해도 이쯤이면 저녁을 먹고 쉬고 있을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같은 모양새로 문 앞에 널부러져 있는 중이라니. 심지어 이게 여행 첫 날인데 정말 앞으로 괜찮은걸까. 그렇게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휘몰아칠 무렵 또 한 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문... 열렸는데...?"


뭐라고? 믿을 수 없는 소리에 비닐봉지처럼 추욱 처져있던 내가 고개를 들어 보자 다름이 아닌 엄마가 문을 열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럴 수가.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 나는 간신히 이곳으로 오겠다고 했던 호스트를 떠올렸다. 전화를 걸어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다행히 아직 출발하지 않았던 그는 나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열릴 거였으면서 한 시간이 넘도록 나는 무엇을 위해 동동 거렸나.


집 나간 고양이를 밤새 애타게 찾다가 집 안 구석 어디에선가 발견한 사람처럼 허무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래, 그래도 어쩌겠나. 우리는 문을 열었고 드디어 로마의 첫날을 끝낼 수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아니 엄마 근데 도대체 어떻게 열었어?"

"보니까 완전 옛날식이네, 방향이 문제가 아니라 이걸 열쇠를 돌리면서 문을 밀어야 돼"


그렇다. 빈티지한 게 아니라 유럽식 빈티지 그 자체였던 이 낡은 아파트는 문 여는 방식 또한 굉장히 올드 했는데 열쇠를 다 돌려놓고 문을 여는 게 아니라 열쇠를 넣어 잠그는 홈을 눌러 놓은 상태로 동시에 문을 밀어야 열리는 구조였던 거다. 그래서 결국 도어락 세대인 나와 동생이 아닌 엄마가 이리저리 시도한 끝에 문을 열게 된 거다. 혹시나 이 글을 본 누군가가 유럽에 가서 안 열리는 문을 마주하게 된다면 열쇠를 돌리면서 동시에 문을 밀어보시라. 단 한 사람이라도 구했다면 나의 고생이 의미가 있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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