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젤라또와 램프의 요정

(부제 : 너 하고 싶은 거라는 말이 싫은 이유.)

by 장소연

미식에 남다른 부심이 있는 이탈리아에서 젤라또는 꼭 먹어봐야하는 음식으로 꼽힌다. 심지어 여기는 로마. 로마의 휴일을 즐기는 이에게 1일 1 젤라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게다가 영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로마에는 3대 젤라또 집이 존재한다. ‘지올리띠, 올드브릿지, 지오바니 파시’가 바로 로마의 3대 젤라또 집인데 이 세 가게는 서로 조금씩 거리가 있다. 따라서 하루에 세 군데를 모두 방문하기보다는 당일 관광 동선에 맞추어 근처에 있는 곳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바티칸 근처에는 ‘올드브릿지’가 있다. 정문 바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 바티칸 투어 전후로 방문하기 좋다.

게다가 아이스크림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 중 하나. 달콤한 젤라또 한 컵에 피곤을 좀 덜어볼 겸 우리는 ‘올드브릿지’로 향했다.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작은 가게에는 다양한 맛의 젤라또가 형형색색 전시되어있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오는지 알 수 있게 우리가 들어가자 직원들은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가끔 보면 나 빼고 다들 열심히 놀러 다니는 모양이다.


“엄마! 무슨 맛 먹을래?”

어림잡아도 스무 가지 이상 되어 보이는 종류의 젤라또를 본 나는 밖에서 기다리는 엄마를 향해 물었다.

“너 먹고 싶은 걸로 사.”

들려온 엄마의 대답에 젤라또를 보고 잠시나마 들떴던 기분이 축 가라앉고 말았다.


너 하고 싶은 거. 너 가고 싶은 데. 너 먹고 싶은 거.


나한테는 마치 버튼 같은 문장이다. 그리고 이건 여행에서 엄마에게 어떤 선호를 물어보면 보통 돌아오는 말이자 내가 여행에서 엄마와 가장 많이 싸우는 이유다.


딸인 나의 입장은 이렇다. 부모님과 함께 간 여행, ‘네가 하고 싶은 거로 해라’한다고 해서 어느 아들, 딸이 본인의 선호로 무언갈 결정 할 수 있을까. 보통은 독심술이나 관심법으로 부모님의 취향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부투 하다가 결국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떠안아야 한다. 일종의 감정노동인 셈이다.

솔직히 가이드를 하는 입장에서 고객의 명확한 선호만 있어도 일은 훨씬 수월해진다. 예를 들어 엄마가 콜로세움이 보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콜로세움 입장권을 예매하고, 가는 길을 알아보고, 콜로세움에 도착해 엄마에게 설명해 줄 간단한 역사적 사실을 공부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분명 노동이지만 어렵지 않다. 딸이 된 도리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는 이 일을 기꺼이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다. 포인트는 그 후다. 가령 콜로세움이 막상 엄마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고 해보자. 그러나 그것은 콜로세움의 탓, 나의 잘 못은 아니다. 생각보다 별거 없네 라는 반응이 와도 그렇구나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선호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나는 일정을 짜기 전은 물론 다니는 내내 엄마의 반응을 살피고 눈치를 봐야 한다. 만일 내 맘대로 짠 일정에 콜로세움이 엄마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콜로세움의 탓이 아니라 일정을 짠 내 탓이 된다. 콜로세움 말고 다른 데에 갈 걸. 심지어 엄마가 별 생각 없이 막상 오니 별거 없다는 식의 얘기를 하면 나는 마음에 타격을 입는다.

지나친 비약이 아니냐고? 그러니까 원하는 것을 말해주기만 하면 된다니까. 램프의 요정 지니도 소원을 말해야 들어준다.


그렇게 버튼이 눌린 상태로 젤라또 앞에 서 있던 나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세 가지 맛의 젤라또를 골랐다. 31가지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맛인 ‘피스타치오’와 엄마가 좋아할 법한 ‘코코넛’ 그리고 내가 먹고 싶은 ‘레몬’까지.


계산을 마치고 나와 젤라또 컵을 엄마에게 넘기자 엄마는 한 가지씩 맛을 봤다. 역시 레몬 맛은 꽝이었다.

봐 엄마, 그게 내가 먹고 싶은 맛이었거든?


“맛있네, 근데 피스타치오 맛이 좀 다른데?”


피스타치오 맛 젤라또가 기존에 알던 맛과는 좀 다른 모양이었다. 맞다. 젤라또는 천연의 재료로 만드는 게 특징이라 선택하는 맛에 따라 그 재료 본연의 맛이 나는데 피스타치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스크림 맛이 아닌 견과류 본연의 고소한 맛이 난다. 체리 맛 아이스크림과 생 체리의 맛이 다른 정도의 다름이라고 해야 하나. 엄마는 세 가지 맛 중 코코넛 맛이 제일 맘에 든 눈치였다. 그래 하나라도 성공한 게 어디랴. 나는 별말 없이 새콤한 레몬 젤라또만 열심히 먹었다. 역시 생각이 많을 땐 레몬 사탕.. 아니 레몬맛 젤라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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