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투어리스트와 가이드 그 사이

(부제 : 바티칸 투어)

by 장소연

숙소 근처에서 이탈리아식 피자로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드디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바티칸시국. 바티칸은 이탈리아 로마 안에 위치한 지구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가톨릭 교황청이 있는 곳이다. 학생 시절 로마에 왔을 땐 미처 바티칸 투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도 바티칸은 처음이었다. 바티칸은 종교와 상관없이 워낙 역사와 의미가 깊은 곳이기도 하고 ‘아테네 학당’, ‘천지창조’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들이 있는 곳이기에 로마에 가면 꼭 가야하는 곳으로 꼽힌다.


효율적인 관람을 위해 대다수가 투어를 신청하는데, 나 역시 한국인 단체 투어를 예약했다. 약속 시간은 오후 한 시. 체력도 아끼고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서 택시를 불렀다. 유럽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모바일 어플 하나만 있으면 된다. 다만 핸드폰 인증번호를 입력해야 가입이 되기 때문에 어플을 한국에서 미리 설치를 하고 오는 것이 좋다. 다른 얘기지만, 이번 여행을 하면서 티켓이나 식당 예약 등 이제는 유럽도 대부분이 모바일로 돌아가는 게 신기했다. 택시 어플만 해도 예전엔 미국계 회사인 ‘우버’가 유일했으나 이제는 다른 어플들도 꽤 대중화가 된 모양이었다. 엄마와의 여행에 택시는 필수였으므로 나는 ‘우버’를 기본으로 깔고 혹시 몰라 ‘프리나우’라는 어플을 추가로 받아왔다.


현재 위치에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 바티칸 근처에서 교통체증이 워낙 심해 좀 더 걸렸지만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오면서는 창밖으로 천상의 성이며 베네치아 광장이 보였다. 옆에는 말이 끄는 마차도 지나갔다. 유럽이네, 유럽이야. 뭐랄까, 확실히 유럽은 화가 나도 얼굴 때문에 풀릴 것 같은 애인 같은 느낌이다. 아 젠장, 난 너무 외모지상주의야(?).


약간의 트래픽 잼을 뚫고 도착한 바티칸은 확실히 관광지였다. 엄청난 인파가 입장을 위해 모여 있어 마치 시장 한복판을 연상케 했다. 수많은 관광객들을 뚫고 신청한 투어가 있는 곳으로 향하자 이질적인 풍경 속 반가운 한국말이 들렸다.


“여기 오니까 한국 사람들 많네~”


엄마도 하루 만에 듣는 한국말이 제법 반가운 듯 속삭였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바티칸은 대부분 투어를 신청해 오게 되는데 나 역시 투어를 추천한다. 우선 입장부터 개인보다 단체가 수월하다. (줄이 다르다) 게다가 바티칸 자체가 종교, 역사적 문화유산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수많은 작품들을 효율적으로 관람하기 위해서라도 투어를 신청하는 것이 좋다. 심지어 이렇게 투어를 신청하면 진짜 가이드가 생기기 때문에 가족과 하는 여행에서 잠시 가이드 신분을 내려놓을 수 있다!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앙?


실컷 투어를 찬양한 것과는 별개로, 체력이슈가 온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이 조금씩 떨어졌다. 지구에서 가장 작은 나라라곤 하지만 그 오랜 역사를 반나절 만에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주요 유물과 작품들 위주로만 관람했지만 그 내용은 너무 방대했다. 게다가 이미 20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이른 아침부터 온갖 일을 다 겪고 온 엄마와 나는 최대한 설명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생각보다 힘에 부쳤다.


“너무 멋있고 좋은데, 좀 힘드니까 잘 안 들어온다.”

잠시 주어진 쉬는 시간, 엄마는 슬며시 말했다.


“그치, 나도 그래, 좀 무리였나 봐. 그래도 카페인이 들어가니까 살겠네.

엄마도 커피 좀 마셔.”


나는 거의 다 녹았지만 아직 얼음 몇 개가 둥둥 떠 있는 커피를 엄마에게 권하며 대답했다. 엄마는 왜 유럽 애들은 이렇게 얼음에 인색한지 궁금해 했지만 그나마 이 커피는 이탈리아에서 만날 수 있는 최선으로 보였다. 9월의 마지막 주인데도 한낮의 최고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로마, 그럼에도 대부분에 이탈리아 카페에는 아이스 메뉴가 없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아대는 탓에 아이스 메뉴를 팔고 있다는 바티칸 시국 내의 카페. 절대 한국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비할 맛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마치 오아시스라도 찾은 듯이 카페인을 수혈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괜찮아, 좀 설렁 설렁 듣지 뭐. 어차피 이거 끝나면 오늘은 아무 것도 없잖아”


엄마는 미적지근한 커피를 포기하고 동생이 주문한 콜라를 몇 모금 마시며 답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인건 엄마 말대로 오늘은 바티칸 투어만 끝나면 아무 일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 생각만으로 남은 투어를 버티기로 했다. 그런데,


“Good afternoon

Internet provider let us know about problems on internet network, not depending by us. So we will try to take to the apartment a new mobile router to be used.


If possible we will go in late afternoon or evening, I’m sorry, but this is the only quick solution found.“


다시 투어가 시작 하고 얼마 후, 호스트로부터 왓츠앱 메신저가 도착했다. OMG. 눈앞에 ‘천지창조’가 있으면 무엇 하나. 문자를 받은 순간 나는 바로 가이드 모드가 되어 상황을 파악했다. 내용을 보니 숙소 인터넷에 문제가 생긴 듯 했고 저녁 쯤 방문한다는 얘기였다. 저녁이라... 지금이 벌써 대략 오후 다섯 시. 인터넷이고 뭐고 모두 편안하게 쉬고 싶은 상태인데 누군가의 방문이라니. 나는 얼른 호스트에게 지금 우리는 밖이고 오후 8시쯤에는 들어갈 예정인데 그 사이에 방문한다면 마스터키로 알아서 들어오라는 답변을 남겼다. 혹시 방문이 늦어진다고 해도 최소 저녁 10시 이후에는 방해 받지 않고 쉬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게 보면 별거 아닌 일이지만 그 순간 난 마치 휴무일에 회사로부터 바로 처리해야 하는 일을 전달 받은 기분이었다. 귀에 꼽은 이어폰으로는 가이드님의 설명이 흐르고, 발은 동선을 따라 움직이기 바쁜데 손으로는 열심히 메시지를 작성했다. 집주인이 쏘아올린 왓츠앱 메시지 하나에 투어리스트로서의 나의 자아는 모두 증발하고 가이드인 자아만 남았다. 가이드 투어 속 가이드를 하고 있는 형국이라니. 엄청난 액자식 구성이군. 그렇게 어찌어찌 호스트와의 대화를 마무리 하고 나는 다시 투어에 집중하려 하였으나 이미 바닥난 체력에 정신력까지 빼앗기니 그 이후로는 좀처럼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물론 나의 가이드 선생님과 바티칸은 죄가 없었다.


오후 다섯 시 반 쯤 베드로 대성당 셀프 방문을 마지막으로 바티칸 투어가 모두 끝났다. 투어가 끝나니 좀 여유가 생겼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니 아침에 일어난 일에 비하면 숙소에 인터넷이 안 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 해결해 준다고까지 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호스트가 편하게 모뎀을 교체할 수 있도록 천천히 귀가하자. 게다가 열심히 설명을 듣느라 당이 떨어진 상태였으므로 우리는 당 충전 겸 젤라또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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