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유럽여행의 환상과 민낯

by 장소연

버스 사건으로 잔뜩 지쳤지만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약속한 시간 보다 조금 늦었으나 다행히 호스트는 개의치 않았다. 게다가 알고 보니 우리를 맞이해 준 건 호스트가 아니라 청소를 해주는 분이었다. 우리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하자 호스트는 집 청소를 하고 있던 근무자에게 연락했고 그가 내려와 우리를 맞이했다. 워낙 정신이 없었기도 했고 이탈리아식 이름이 생소한 탓에 애석하게도 그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는 매우 친절했고, 우리를 보며 로마는 처음이냐고도 물어봐 주었다.


“나는 몇 년 전에 와본 적 있고, 우리 엄마는 처음이야.”

“오 그렇구나, 로마에 다시 온 걸 환영해.”


짧은 사이 많은 일이 나를 몰아치고 갔지만 현지인의 환영 인사에 조금 마음이 풀렸다. 그가 설명해주는 집 안내를 야무지게 듣고, 2시 이후부터는 집을 써도 된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그와 인사했다.

한국인 후기가 없어 걱정했지만 거의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자랑하는 우리의 숙소는 적당히 넓고 깨끗한 전형적인 유럽식 아파트였다. 엄마와 내가 쓸 큰 침대가 있는 방 하나와 부엌과 이어진 거실, 빨간색 소파와 긴 창문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동생은 거실에 있는 소파 베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아직 체크인 시간이 좀 남기도 했고 다음 일정이 있던 우리는 캐리어만 두고 열쇠를 챙겨 아파트를 나왔다. 가벼운 몸으로 현관을 나오고 나니 그제 서야 로마의 풍경과 찬란한 날씨가 눈에 들어왔다. 집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조금 긴장이 풀리자 제법 배가 고파진 우리는 옆에 시장으로 향했다.

실내 아케이드 형식으로 된 시장은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 동네 로컬들이 자주 찾는 곳 같았다. 나는 여행을 가면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로컬 문화를 체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오히려 신이 났다. 엄마도 곳곳에 있는 야채 가게나 정육점을 흥미롭게 구경하는 듯 했다.

시장 안에는 푸드 코트처럼 다양한 종류의 먹거리를 파는 작은 가게들이 여러 개 있었고 시장의 가운데 쯤 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 바퀴 둘러본 후 우리는 이탈리아의 첫 끼로 피자를 먹기로 했다. ‘Casa Manco’. 그 곳은 한 눈에 보기에도 맛집 같았지만 검색해보니 무려 구글 평점 4.9에 빛나는 곳이었다. 가게 앞엔 이미 피자를 사려는 로컬들과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CasaManco’는 쇼케이스에 다양한 피자들을 전시해 두고 피자를 고르면 그램 수에 맞춰 구매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족히 열 가지는 돼 보이는 피자들을 보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안쪽에서는 커다란 화덕을 통해 뜨끈뜨끈한 피자가 끊임없이 구워져 나왔다. 시내에 위치한 가게도 아니고 테이블이 있는 레스토랑도 아니다보니 가격 역시 매우 합리적인 편이었다. 나와 동생은 피자와 음료수를 사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는 엄마에게 갔다. 시장 안 카페에서 따끈한 카푸치노도 한 잔 구매했다. 피자와 커피. 완벽한 이탈리아의 점심이었다.


한 입 먹어보자 높은 평점을 증명이나 하는 듯 피자는 하나같이 맛있었다. 햄이 많이 올라간 피자는 조금 짰지만 대체적으로 간도 적당했다. 가족 모두가 만족한 식사였다. 단점은 레스토랑이 아니다보니 개방된 공간에서 식사를 해야 했는데 구걸을 하러 다니는 히피들이나 노숙자 분들이 가까이 접근한다는 점이었다. 유럽인들에겐 익숙할지 모르겠으나(그렇지는 않겠지) 한국인에게는 워낙 생경한 풍경이라 엄마는 많이 당황해 했다.

“쟤넨 엄청 어린 데도 구걸을 하러 다니니 어쩜 좋아.”

히피 소녀들을 향한 불편함과 걱정스러움을 같이 담고 있는 엄마의 표정.

“개인이 아니라 누군가 위에 있을 거야. 그리고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겠지.”


게다가 저런 히피들이 단체로 다니며 소매치기를 하는 경우가 워낙 흔하기에 나는 동정심을 빼고 대답했다. 안타깝지만 이게 낭만이 가득한 유럽의 민낯이다.


앞에서 얘기 했었지만, 나는 대학생 때 유럽에서 약 1년 간 살아본 경험이 있다. 때문에 나에게는 아름답지만 더럽고 낡은 건물들, 생각보다 많이 보이는 구걸하는 소녀들과 마약인지 술인지 모를 것에 절어 있는 노숙자들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너무나 놀랍고 안타까운 관경이었으리라. 게다가 반 야외인 공간이라 건너편에서는 담배를 펴대고, 빵 부스러기를 찾아온 비둘기들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우리는 이쯤해서 자리를 뜨기로 했다. 로컬 놀이는 끝이다, 로망을 되찾아줄 바티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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