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드디어 출발, 환갑 엄마와 20시간의 비행

by 장소연

약 6개월의 시간이 지나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출국 날이 왔다. 워낙 미리 여행 날짜를 잡아 둔 탓에 오히려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게다가 전날 까지도 빡쎘던 회사 스케쥴에 정신을 못 차리던 나는 결국 출발 당일 짐을 챙겼다. 사실 거의 저녁 비행기였고 오후 3시까지만 인천 공항에 도착하면 되었으므로 짐을 챙기기에 부족한 시간은 아니었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 비행기에 대해 잠깐 얘기해보자면 우리가 탈 비행기는 ‘에티하드 항공’으로 아부다비에서 1회 경유하는 비행이었다. 저녁 6시쯤 인천에서 출발하여 다음 날 아침 7시쯤 로마에 도착하는 총 20시간의 여정. 환갑인 엄마를 모시고 가면서 왜 직항으로 예약하지 않았냐고? 유럽에 가기로 결정한 것이 3월. 거의 6개월 전에 구매한 항공권임에도 국제 정세와 명절 연휴라는 상황 덕분에 우리나라 국적기는 도저히 용납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비즈니스 가격으로 이코노미를 타는 기분이랄까) 심지어 이렇게 1회를 경유하는 여정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금액으로 구매해야만 했다. 라떼는 유럽 왕복을 90만 원 정도에 끊었던 것 같은데 두 배 이상의 돈을 지불하면서 이게 맞나 싶었으나 이미 결정한 일, 눈물을 머금고 결제했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그저 비싸서 경유를 선택한 것 같이 들리지만 금액적인 부분을 제하고라도 경유하는 일정이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교통수단에서는 좀처럼 잠들지 못 한다. 다시 돌아오는 대학시절 짧은 어학연수 생활을 마치고 아일랜드에서 귀국하는 비행기를 탔을 때도 무려 15시간을 내리 깨어있어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 역시 긴 비행시간이 너무 두려웠던 나는 14시간 혹은 15시간을 꼼짝 없이 갇혀있는 것 보다 중간에 한 번 땅을 밟을 수 있는 비행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 역시 10시간이 넘는 긴 비행을 해 본 적이 없으므로 차라리 경유가 낫겠다고 생각한 것. ‘에티하드’를 선택하며 중동 항공기의 기내식이 엄마에게 별로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있었지만 경유 자체에 대한 우려는 없었다. (지나고 보니 올바른 선택이었냐고? 글쎄, 이건 여전히 망설이지 않고 고르기 어려운 선택지 같다. 물론 비즈니스라면 무조건 직항이겠지.)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나는 공항 철도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고 동생과 엄마는 본가가 있는 청주에서 공항 리무진을 타고 인천으로 왔다. 인천 공항에서 가족들을 만나니 그제 서야 조금 실감이 나는 듯 했다. 엄마가 추석 선물로 받았는데 버리기 아까워서 가져왔다는 샤인머스캣을 나눠 먹으며 수화물을 맡기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매번 명절 뉴스에 어마어마한 인천 공항 인파가 나오길래 조금 쫄아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그렇게 붐비지 않았다. 무사히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에 도착한 우리는 로마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라 대다수가 한국인이었지만 중동 사람들로 보이는 분들도 간혹 있었다. 그리고 중동국가 항공기에 걸맞게 ‘에티하드’는 비행 전에 짧은 기도문 같은 걸 틀어주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기도문이 나올 때 나는 무사히 잘 도착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비행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기내식도 무난했고, 승무원 분들은 친절했다. 다만 아니나 다를까 나는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문제는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 엄마와 나는 동생이 오프라인으로 저장해 온 ‘무빙’을 정주행하며 꾸역꾸역 버텼지만 그나마도 집중력이 떨어져 중간까지 밖에 보지 못했다. (참고로 아직도 결말은 보지 않음)


경유지에 내릴 때 우리는 탈출하듯 비행기에서 나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깜깜한 밤인데도 숨이 막힐 듯 후텁지근한 날씨가 이곳이 중동국임을 실감하게 했다. 낙타 모형과 대추야자를 파는 면세점을 지나 우리 세 식구는 환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약 세 시간 정도의 대기. 그래도 비행기 안에서와는 다르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고. 핸드폰에 연결 된 와이파이가 있으므로 다행이었다. 게다가 아부다비 공항에는 무료로 제공하는 샤워실이 있어 여차하면 샤워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숨도 자지 못한 우리는 샤워를 할 정도의 기운이 없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샤워실은 화장실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화장실 갔을 때 슬쩍 동향을 살펴보니 역시 정보력이 빵빵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점하여 이용하고 있었다.


“엄마, 봤어? 샤워하고 나오는 사람들 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그래? 여기 푹신한 자리 앉아 있는 사람들도 다 한국인이야.

어쩜 이러니, 저 앞에 어떤 신혼부부가 엄청 작게 속닥거려서 보니까 걔넨 일본 애들이더라.”


나라 별로 공공장소를 이용하는 특징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긴 비행과 대기 시간 탓에 엄마와 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그렇게 대기를 하다가 혹시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면 라운지라도 결제해서 갈까 싶었는데


“됐어, 몇 시간 안 되는데 가서 맛있는 거 한 번 더 먹자”


하는 소리에 결국 그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세 시간 가량을 버텼다. 돌이켜 보면 이때가 나에게는 제일 체력적으로 힘든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나이 60먹은 우리 엄마는 정말 괜찮았을까.


그렇게 환승한 비행기에서는 세 명 모두 거의 기절하고 말았다. 내릴 때까지 기절해 있었으면 좋으련만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잠들었다가 깨버린 엄마와 나는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퍼즐 게임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보냈다. (퍼즐로 온갖 국가 여행은 다한 듯)

그렇게 다시 한 번 길고 긴 비행의 시간이 지나 창문 너머로는 해가 뜨고 있었다. 지평선을 따라 태양이 만들어내는 주황빛 선을 보며 지구의 반대편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지옥 같았던 비행기에서 탈출했다. 내리자마자 울리는 핸드폰과 외교부에서 쏟아지는 문자들. 아, 드디어 왔구나 유럽.


이탈리아 로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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