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우리는 서로의 짝꿍

(부제 ; 이탈리아 남부투어 1 – 남부투어의 시작)

by 장소연

어마무시한 로마에서의 첫 날이 지나고 다음 날은 무려 남부투어가 잡혀있는 날이었다. 새벽 같이 일어난 우리는 서둘러 예약해 둔 우버에 올라탔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아 깜깜한 새벽, 한산한 로마의 시내를 가로질러 떼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기로 한 사람이면 한 번 쯤 생각해볼 법한 남부투어. 이 남부투어가 무엇인지 설명하자면, 먼저 이탈리아의 지형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처럼 반도의 지형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가로가 아닌 세로 긴 지형을 가지고 있어서 북쪽과 남쪽의 도시들의 특징이 다르고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고 한다.) 바다를 전혀 접하지 않은 도시와 바다를 접한 도시가 존재한다. 대한민국으로 여행을 와서 수도인 서울만 보고 간다면 진짜 한국을 여행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 남부투어가 생긴 이유도 비슷하다. 결국 비유하자면 서울에서 출발하여 경주, 부산 등 남부 도시를 찍먹하고 오는 코스의 패키지라고 보면 된다.


보통 우리나라 여행사에서 구성하는 남부투어는 코스가 거의 비슷하다. 역사적인 도시 폼페이를 시작으로 항구도시로 유명한 소렌토나 나폴리를 선택적으로 하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아말피 해안도로를 따라 포지타노까지 간다. 물론 하루 만에 다 돌기 벅찬 일정이지만 하루 동안에 이탈리아 남부를 맛보기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제법 괜찮은 투어랄까.

다시 돌아와 3박 4일이라는 짧은 이탈리아 일정에 남부투어를 넣은 이유는 온전히 내 욕심이었다. 남부투어의 마지막 코스에 있는 '포지타노'라는 곳에에 엄마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건 다시 2015년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를 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때 당시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아일랜드에서 지내면서도 다른 국가를 여행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인 친구와 친구 가족이 유럽으로 여행을 오게 됐고 감사하게도 일정이 맞아 이탈리아 여행에 합류했다. 혼자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 친구 가족과 함께한 덕분에 우리는 베네치아에서 만나 로마를 거쳐 남부로 내려갔고 그 때 친구 가족과 함께 포지타노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사실 지금도 그 친구와 가끔 이야기하지만, 온전히 아름답기만한 기억은 아니었다. 그 때 당시 우리는 렌트카로 이동을 했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접 운전해서 가는 것을 상상해보라. 외국에서의 초행길, 길고 긴 운전시간, 게다가 그 아름다운 아말피 해안도로를 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높고, 좁고, 구불구불한 절벽 길을 따라 가야 했던지. 이동하는데 온 시간을 쏟아 정작 포지타노를 즐길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아름다운 해변에서의 수영은 커녕 발도 잠깐 담그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래도 레몬과 레이스로 장식 된 물건들이 골목골목 진열되어 있던 거리와 절벽 한가득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풍경, 거기에 대비되는 짙은 청색의 바다는 꽤나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언제고 이곳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게다가 이번에는 직접 운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 통하는 가이드도 있으니 가는 길이 꽤나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패키지를 예약하기 전 엄마에게도 의견을 물어보니 엄마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기에 다시 한 번 포지타노에,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 6시 40분에 떼르미니 역에 오게 된 거다. 모이기로 한 장소 앞으로 가자 누가 봐도 남부투어를 가기 위한 오늘의 동지들이 한두 명씩 보이기 시작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인상이 좋으신 여자 가이드 분이 차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모아 데리고 갔다. 커다란 대형 버스에 올라타니 패키지 투어에 온 기분이 실감났다. 그렇게 모두를 태운 버스가 출발하자 가이드님의 본격적인 소개와 인사가 진행되었다. 둘러보니 가족단위의 여행객이 가장 많았고 간간히 신혼부부들과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이 섞여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모이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다들 조금씩 들떠있는 듯 보였다. 이어서 가이드님은 버스 뒤 쪽으로 걸어가 투어 내내 통신용으로 쓰이는 수신기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녀는 수신기를 하나씩 나눠주면서 어떤 손님들이 왔는지 혼자 온 사람은 있는지 확인을 하는 듯했다. 이윽고 우리 자리 근처에 온 가이드님은 뒤 쪽에 앉은 남동생과 나란히 앉아 있는 우리 모녀를 보고는 여느 다른 손님들에게 했던 것처럼 스몰토크를 건넸다.


"가족 여행 오셨나봐요, 근데 왜 짝꿍은 두고 오셨어요?"


단번에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던 나와 엄마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이윽고 엄마의 짝꿍, 그러나니까 어째서 남편은 두고 왔느냐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네 좀 일이 바빠서"


거짓말.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엄마의 짝꿍, 나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둘째는 중학생 막냇동생은 초등학생일 시절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이제는 십 년도 훌쩍 지나 충분히 딱지가 앉은 일이지만 가끔 이렇게 악의 없는 질문을 받으면 구태여 정직한 쪽을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이드님이 지나간 자리, 나는 괜히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여러 가지 생각인지 감정인지 모를 것들이 뒤섞였다.


그러게 아빠 없이 우리가 이탈리아를 오는 날이 다 오네. 우리 참 잘 견뎠다. 아빠가 있었으면 어땠으려나. 지금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짝꿍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 혹은 미안함? 그게 무엇이든 외로움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제 엄마의 짝꿍이니까. 그렇게 버스는 고속도로에 접어들고 해가 다 뜨지 않았던 어두웠던 창밖은 새벽을 지나 햇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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