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장미에서 사과 맛이 났다

by 은색연필

"띵동 띵동"


주말 오전, 초인종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며 나른함을 깨웠다. 무심히 문을 연 순간, 커다란 꽃다발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꽃 배달 시킨 사람 없는데요. 잘못 왔네요."


확신을 담은 목소리였다. 기념일도 아니고, 축하받을 일도 없는 평범한 날에 꽃다발이라니.


"OO 씨 아니신가요?"


코끝으로 장미향이 훅 밀려들었다. 황급히 열어본 카드에는 둘째 동생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젯밤 통화에서 사소한 일로 동생에게 날 선 소리를 내뱉었다. "언니가 하는 배려는 당연한 거야?" 하고.

차가운 화살에 꽂힌 것 마냥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곧 해맑은 목소리가 답했다.


"미안해 언니." 늘 그랬듯 애교를 떤다.


동생은 사과를 품고 다니다 지금이다 싶을 때 툭 꺼내는 사람 같다. 미안할수록 사과는 더 붉어졌다. 어서 빨리 이 사과를 베어 물고 나를 받아줘, 하는 것 마냥.


언제나 그렇듯 바로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은 아니었나 보다. 이번엔 빨간 사과로 모자랐나. 밤새 고민했을까. 아껴 쓰는 동생이 아침부터 꽃다발을 보내다니.


평생 처음이었다. 졸업식에서도 못 받았던 동생의 꽃 선물이었다. 기특함과 고마움, 그리고 옹졸했던 내 마음이 섞여 묘한 여운이 남았다.


우리는 세 자매다. 카톡 카톡, 쉴 새 없이 울려대며 서로 뭐 하는지 캐묻는다. 자기만 빠졌을까 봐.


둘째와 막내는 투닥거리며 친구처럼 자랐고, 나는 군기반장이었다. 고작 설거지 좀 더 하고, 가족을 더 챙겼다는 이유로 화를 쌓아두었다가 터트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동생들이 내 기분을 살폈다. 늘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다. 화를 낼 타이밍엔, 기가 막히게 잘 익은 사과를 꺼내 내밀었다.


이번에 동생은 꽃다발을 내밀었다.


이제 동생들은 더 이상 보살펴야 할 존재가 아니다. 피부과에서 주근깨만 몇 개 없애도 바로 알아챌 만큼, 서로를 속속들이 아는 오랜 친구다.


예쁜 화병에 담긴 꽃이 화사하다. 장미향이 내 마음 구석구석을 돌며 지난날 추억들을 비춰준다.


분홍 장미에서 사과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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