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보자기

by 은색연필

코끝을 스치는 매캐한 나무 타는 냄새. 그 냄새는 여지없이 기억 속 할머니 집으로 날 부른다. 할머니가 후후 불어 불씨를 살려낸 아궁이가 벌겋게 타오르면, 솥뚜껑 사이로 새어 나온 밥 냄새에 온 집안이 구수해졌다. 그 열기로 데워진 아랫목은 따뜻하다 못해 엉덩이를 요리조리 옮겨야 할 만큼 뜨거웠지만, 나는 그 지글지글한 느낌이 좋았다.


일하느라 바빴던 부모님은 나를 할머니 집에 자주 맡겼다. 나뿐만 아니었다. 내 동생들과 사촌들까지 줄줄이 모여들었다. 할머니 집 마당에 있던 감나무처럼, 손주들과 닭, 돼지, 소까지 주렁주렁 매달고서 잠시도 쉬지 못했다. 밭일은 덤이었다. 산더미 같은 짐을 머리에 이고 지고 끄떡없이 걸었다.


아빠는 팔 남매의 장남이다. 내가 큰아들의 첫 손녀여서 그랬을까. 할머니는 나를 유독 예뻐하신 것만 같다. 장손인 내 동생 몰래, 깊숙이 숨겨둔 알사탕을 내 입에 넣어주시곤 했으니까. 나는 그 한 알을 사랑이라고 믿었다.


할머니 곁엔 늘 보자기가 있었다. 갖가지 물건들이 거기서 나왔다. 나는 그중 빨강, 노랑 고운 보자기를 골라 허리에 묶고 머리에 쓰며 드레스라고 우겼다. 보자기 드레스를 펄럭이며, 공주가 된 양 재롱을 떨곤 했다.


"할머니, 이 담에 커서 돈 많이 벌면 예쁜 보자기 이~~ 만큼 사주께."

"오~오냐."


그 철없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나는 할머니 집 대신 친구를 찾았고, 객지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보자기 약속을 까맣게 잊었다. 이따금 할머니 집 아랫목의 그 뜨끈했던 감각이 그립긴 했지만.


병석에 누워계신 할머니를 오랜만에 뵈었을 때, 방 안은 이상하리만치 낯설었다. 한때 그 많은 식구들로 북적이던 공간이, 고요하기만 했다. 아랫목의 온기는 있었지만 그 쓸쓸함까지 데우진 못했다. 약해진 할머니의 손은 보자기 하나도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할머니는 곁을 떠났다.


결혼을 며칠 앞둔 밤, 할머니가 꿈속에 찾아오셨다. 곱게 쪽진 머리에 고운 한복을 입고 계셨다. 미소 띤 얼굴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셨다. "좋은 사람 만났으니 이제 됐다." 하시는 것 같았다. 꿈에서 깨고도 한참 동안 그 미소가 눈앞에 남아있었다.


이제 보자기 드레스를 입고 춤추던 꼬마는 없다. 하지만 지금도 나무 타는 냄새에는 할머니 온기가 배어있다. 울며 떼쓰던 손녀를 한없이 안아주던, 그 따뜻한 냄새.


양갱 몇 개 들고 찾아가지 못한 마음이 보자기가 되어, 겹겹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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