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코골이엔 주어가 없었다

by 이나

젖은 솜이불이 되어, 3년 만에 누운 마사지 베드에서 온기가 퍼졌다. 한겨울 차가운 바람에 얼었던 몸이 한순간에 노곤해졌다. 동생이 옆 베드에 나란히 누워서 더 좋았다. 자매가 함께 누리는 평온한 시간이었다.


동그란 구멍 속으로 얼굴을 밀어 넣고, 깊은 휴식을 기대했다.

그런데 관리사의 손길이 닿자마자, 내 어깨가 먼저 격렬히 반응했다. "우두둑" 굳은 근육이 풀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어휴, 어깨가 정말 많이 뭉치셨네요."


그간 내 몸을 얼마나 방치해왔나. 미안한 마음과 통증 사이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드르렁, 드르렁!"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짧은 낮잠을 즐기는 동생답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잠이 들다니, 내심 부러웠다.


그런데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커어헉!" 하는 우렁찬 소리가 샵 안에 울려 퍼졌다.


참다못한 두 관리사님이 결국 '빵'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에 깬 듯, 동생이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힘들었나 보다."


나도 안쓰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게. 많이 피곤한가 봐."


속삭이듯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때 관리사 한 분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아지 코 고는 소리예요. 유난하죠?"


속으로 '참 배려심 깊은 분이구나' 싶었다. 동생이 민망하지 않게 핑계를 대준 줄 알았다.

우리 자매는 동시에 "네에~" 하고 답했다.


그런데 코 고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으잉?"


진짜였다. 구멍에서 얼굴을 빼고 살펴보니, 아까 입구에서 꼬리를 흔들던 조그만 강아지가 방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 사이에 놓인 방석 위에서 세상모르게 단잠을 자고 있었다.


코골이 주인은, 바로 이 녀석이었다.


동생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언니! 난 언니가 자는 줄 알았어. 아프다고 살살해달라더니, 평소엔 낮잠을 안 자는 언니가 코까지 골길래 진짜 피곤한가 했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코골이 주인공'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리사님의 조용한 사실 해명조차 '배려'로 번역해버린 것도 똑같았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이 이야기로 한바탕 웃었다.



눈치와 맥락 사이, 한국어의 세상


손바닥만 한 강아지 코골이가 인간처럼 우렁찬 것도 웃겼지만, 웃음이 터진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우리가 말보다 분위기와 상황을 먼저 읽는 사람들이라서 생긴 일이었다.


그날 우리는 주어가 없는 말을 주고받았다.

"많이 힘들었나 보다."

"그러게. 많이 피곤한가 봐."


우리는 각자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주어를 채워 넣었다. 동생은 나를, 나는 동생을 떠올렸다. 한국어가 가진 '고맥락'의 방식이 작동한 것이다. '너'도 '나'도 없지만, 상황과 눈치로 문장의 주인을 찾아 넣었다.


반면 영어 같은 '저맥락' 언어는 이런 오해가 끼어들 틈이 상대적으로 적다. 주어, 동사, 목적어를 명확히 밝혀서 오해가 자랄 공간을 줄인다. 빠진 정보가 있으면, 그만큼 더 묻게 된다.


이날의 웃음은 결국 '주어 없는 우리말'이 만든 유쾌한 촌극이었다. "생각해 볼게요."로 거절을 대신하고, "괜찮아."로 속상함을 숨긴다. 기쁨조차 겸손이라는 사양의 말 뒤로 밀어 넣는 일이 많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하는 노랫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침묵과 생략 사이에서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려 한다.


한바탕 웃고 나서, 이런 생각이 남았다.


마음에 담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상대도 나도 진실과는 동떨어진 오해를 품은 채

각자 계속해서 평행선을 걸을 수도 있겠구나.


고맥락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배려를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말없이 멀어지게도 한다.


마음속에 품어두었던 생략된 말들을 꺼내어 확인해 보려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어쩌면 어떤 오해의 매듭은, 거짓말처럼 스르르 풀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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