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폴바셋에 있어. 이리로 와."
"언니, 그렇게 말하면 이 넓은 데서 어떻게 찾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나밖에 없잖아. 1층 가운데 있어."
이 분명한 대답에, 동생은 기가 차다는 듯 소리쳤다.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찾아? 여기저기 보이는데!"
토요일 오후의 아웃렛은 분주했다. 밀려드는 쇼핑객, 떼쓰는 아이와 엄마들 목소리가 뒤엉켜 소란했다. 유모차 부대가 사방에서 나타났다. 역시 엄마들의 피난처다. 매끈한 바닥이 유모차를 끌고 오라고 유혹하는 곳이니까.
쇼핑몰은 우리 자매들에게도 키즈카페이자 스트레스를 풀 오아시스였다.
언제나처럼 카페인 수혈이 시급했다. 동생이 찾기 쉽게, 가장 눈에 띄는 카페로 직진했다. 자리가 없을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폴바셋. 그렇게 동생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저기 보여서 못 찾겠다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대화가 몇 차례 허공에서 맴돌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내 입에서 나온 '폴바셋'은 동생의 귀에 '풀밭에'로 가닿은 것이다.
언니가 다짜고짜 '우리 풀밭에 있으니 여기로 와'라고 했다니. 아이와 주렁주렁 짐까지 달고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풀밭에서 사람을 찾으라니. 어이없을만했다.
한바탕 웃고 지나간 일이지만, 뒤늦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동생은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반응한 것은 아닐까.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조카를 돌보느라 동생이 많이 지쳤던 시기였다. 동생의 귀는 '폴바셋'을 듣지 못했다. 대신 꽉 막힌 쇼핑몰을 벗어나 숨 쉴 수 있는 '풀밭'을 무의식이 찾은 게 아닐까.
유모차, 상품, 커피... 무엇보다 쇼핑몰은 집에서 가깝다. 만남의 장소로 정해진 건 당연했지만, 이것은 머리가 내린 결정이지, 마음은 초록색 쉼이 필요하다고 외쳤을지도 모른다.
습관처럼 간 쇼핑몰 만남이었지만, 그날 마신 아메리카노 냄새가 입에 남았다. 이 뜻밖의 오해가 웃음을 남겼기 때문이다.
기저귀 가방, 젖병, 유모차... 그 시절의 흔적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언젠가부터 작은 핸드백 하나면 만남이 충분하다. 하지만 쇼핑몰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면 상전 모시듯 눈치를 살펴야 한다. '게임 실컷'이라는 달콤한 뇌물이 없다면, 절대로 엄마들을 따라나서지 않는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인데, 막상 찾아온 평화가 생각보다 낯설다.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어디든 따라오겠다고 울고불고하던 꼬맹이들이 보고 싶다. 순식간에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던 말썽쟁이들이 사라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깨끗해 보이는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다 동생에게 카톡을 보낸다.
"우리 풀밭에서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