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주파수

by 은색연필

트로트 가락이 잠을 깨운다. 엄마가 우리 집에 있다는 확실한 신호다. 엄마가 머무는 동안 집안은 평소와 다른 주파수에 맞춰진다.


아침이면 간드러진 꺾기 창법 사이로 건강 프로그램이 흘러든다. 화면 속 의사들은 진지하게 '좋다'와 '나쁘다'를 말하고, 엄마의 눈빛도 덩달아 진지해진다. 어떤 영양제를 먹을지 이미 결심한 눈빛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나직이 흥얼거리며 약봉투를 정리하는 엄마의 손끝에 시선이 머문다.


해가 지면 거실은 다른 장르로 넘어간다. 긴박한 배경음악이 깔리고 복수극의 악인이 등장하면, 엄마의 안타까운 추임새가 얹힌다.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그동안의 줄거리를 되감아 들려줄 태세다.


그 소란함을 막기엔 방문이 연약하다. 문틈으로 넘어오는 소리는 나를 괴롭히면서도 이상한 안도감을 준다. 엄마가 내 곁에 무사히, 건강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주말이 되면 소음의 결이 달라진다. 조카들이 들이닥치면 거실은 날 선 전자음으로 채워진다. 게임 효과음과 유튜버들의 과장된 하이톤이 순식간에 공간을 장악한다.


"...노 ...차티!"


이름이라기보다 기묘한 주문에 가까운 외계어들로 공간이 가득 찬다. 도무지 어느 대목에서 깔깔대는지 알 수 없다. 나는 그들만의 디지털 행성에 착륙 허가를 받지 못했다.


엄마와 조카들이 함께 있는 순간, 트로트 볼륨과 게임 소리는 한 공간에서 맞부딪치며 거실의 주도권을 놓고 다툰다. TV 화면을 양보한 조카들은 스마트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 거기 아니라고!" 아이들의 앳된 고함엔 절실함이 있다. 볼륨 줄이라는 내 말은 웃음소리에 묻혀 맥없이 흩어지기 일쑤지만, 그 펄떡거리는 생동감이 집안에 따뜻한 생기를 불어넣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소리는 성가시고, 동시에 반갑다.


가족들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현관문이 닫힌다. 짙은 고요가 내려앉는다. 냉장고 모터 소리가 또렷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귀가 까다로워진다. 화려한 비트보다는 낮게 깔리는 잔잔한 선율을 찾고, 때로는 그마저도 버거워 완벽한 침묵을 고른다. 조용함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러운 휴식이다.


누군가의 온기가 머물다 갔다는 다정한 소란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 비로소 나의 문장들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몇 주 만에 키보드가 규칙적인 소리를 뱉는다. 그 리듬에 맞춰, 멈춰있던 나의 생각이 조용히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