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이야기가 좋다. 서로를 향해 가는 이야기에는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붙잡아 주는 것, 대신 아파하는 것, 해결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의 삶에 손을 뻗었다. 상대도 나를 붙잡아 주길 속으로 기대하면서.
상대의 짐을 나누려 했다. 맏딸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속에서 책임감이 일었고, 어디까지가 내 마음이고 어디서부터 상대의 마음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해결책을 내밀곤 했다. 상대의 고맙다는 말이 사랑이 닿았다는 대답 같았다.
그러나 내가 돕기를 자처했던 사랑 안에는, 나의 기대가 많이 섞여 있었다. 이해받고 싶다는 기대, 혼자가 아니고 싶은 기대, 내 존재의 빈자리를 누군가 함께 메워주길 바라는 기대.
<구토>의 로캉탱도 사랑으로 삶의 허무를 채우려는 희망을 잠시 품었다. 세상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을 때, 그는 옛 연인 안니에게서 마지막 가능성을 찾았다. 다시 사랑하고 싶었다기보다, 그녀를 통해 다시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안니도 자기 삶이 버거운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사랑이 부족해서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사랑은 그런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로캉탱만큼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 사랑의 밑바닥에도 비슷한 느낌이 깔려 있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곧 나를 지탱하는 일이기도 했다. 상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감각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사랑이라 믿었지만, 어쩌면 구원받고 싶었던 것이다.
구원을 바라는 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서로에게 필요한 모습을 덧씌우기 때문이다. 그 기대를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상대가 보인다. 채울 수 없는 결핍을 안은 채 살아가는, 나와 같은 한 사람.
완전히 혼자가 된 후, 로캉탱은 글쓰기로 삶을 구원하리라 결심했다. 나는 두 가지를 다 놓지 않으려 한다. 글쓰기와 구원을 바라지 않는 사랑.
각자의 외로움을 안은 채, 끌어당기지도 밀어내지도 않으면서 옆에 있는 것. 그런 사랑을 하려 한다. 그래서 여전히 사랑이야기가 좋다. 서로를 향해 가는 이야기. 그리고 끝내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