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게티가 데려온 남편

by 은색연필

"아가씨 고집이 보통이 아니네! 결혼은 꼭 늦게 해야 해!"


점쟁이 아저씨 말에 움찔했다. 고집쟁이 소리를 귀 따갑게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일찍 결혼하면 이혼하게 돼! 사주에 남자가 없어." 절대 흘려듣지 말라는 듯, 아저씨 눈빛이 단호했다.


서른 중반을 넘기고, 진짜 혼자 살 수도 있겠다 싶은 밤이면 가끔 그 아저씨 말이 떠올랐다. 그 무렵 20년 지기 절친이 대뜸 소개팅을 제안했다.


"내가 남자 소개한 적이 있었냐? 너랑 취향이 정말 똑같아."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예상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한 남자가 나를 반겼다. 호감 가는 서글서글한 얼굴이었다. 식당엔 달콤한 토마토소스향이 가득 차 있었다.


말이 술술 통했다. 처음 만난 사람 같지 않았다. 서로의 접시 위로 포크가 넘나들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파게티를 나눠먹고 있었던 것이다. 소개팅이란 어색한 격식을 어느새 소스에 묻어 버렸다. 면발 한올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웠다. 나름 예쁘게 차려입었던 치마 위에 소스 얼룩이 생겼다.


"음식을 잘 드시네요."


다정한 목소리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기분이었다. 스파게티 면발처럼 스르르 마음이 열렸다. 여기저기 맛있는 음식을 찾다 다니며 데이트했다.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채 몇 달이 걸리지 않았다.


생각과 취향, 식성까지 닮아서 그런가, 크게 싸우지 않았다. 가끔 '나 이거 먹고 싶어.'라고 동시에 말하는 순간엔 웃음이 터져 나온다. 문득 궁금하다. 일찍 결혼했더라면 달랐을까? 안 살아봤으니, 그 예언은 확인할 길이 없다.


지인이 명리학을 공부한다며 내 사주를 봐주겠다고 했다. 마침 심리학 책을 읽고 있었던 터라 직접 들여다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대기만성형' 같은 말은 특히 듣기 좋아서 그냥 믿고 싶었다. 그러다 남편에게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사주에 나는 남편이 없고, 당신은 아내가 없어."


곧 진지하게 덧붙였다.


"어떻게 그런 사람끼리 만나서 잘 살지?"


운명이란, 결국 우연의 합이 아닐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테레자는 토마시가 읽고 있던 책, 때마침 흘러나오던 베토벤의 선율, 그런 신호를 쌓아 토마시를 '운명의 남자'로 받아들였다.


나도 그랬을까. 그날 컨디션이 좋았고, 조명도 은은했다. 토마토소스 냄새마저 평소보다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남편이 더 괜찮아 보였던 걸까. 하지만 결국 결혼은 내 선택이었다. 막연한 끌림보다 식성부터 가치관까지 꼼꼼히 따졌다.


오늘도 시시한 농담을 건네며 저녁 메뉴를 의논한다.


"오늘은 우리를 이어준 스파게티를 먹을까?"

"오, 스파게티 생각한 거 어떻게 알았어?"


운명도 우연도 파스타 면처럼 얽히고설켜 있겠지. 아무렴 어때, 맛있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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