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발

by 은색연필

큰 조카는 늘 내 귀엔 생소한 이름의 로봇을 사달라고 조르곤 했다. 선물을 받을 때면 통통한 두 볼이 발그스레 변했고, 빨리 포장지를 뜯고 싶어 까치발로 동동거렸다. 그 찰나의 기쁨을 보고 싶어서 자꾸만 뭘 쥐여주고 반응을 살폈다.


어느새 초등학교 5학년된 조카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 시크해졌다고 해야 하나? 신발이나 옷 같은 건 선물도 아니란다. 요즘 사달라 하는 건 오직 하나, 편의점에서 파는 게임 아이템 카드다.


솔직히 내키진 않는다. 게임 대신 책 한 권 읽히고 싶은 어른의 욕심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몇 만 원 쥐어주며 카드를 사라고 했다.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조카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왜 그래? 이걸로 카드 사면 되잖아?"

"현금으로 주면 엄마가 카드 못 사게 한단 말예욧!"


원망 어린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할 수 없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마자, 조카는 망설임 없이 진열대로 곧장 뛰어갔다. 얼마나 저 카드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걸까. 카드를 움켜쥔 손에 힘이 느껴진다.


"담엔 안 사줄 거야" 괜히 엄숙하게 말했지만, 어린 시절이 떠올라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어른들 몰래 친구들과 오락실로 뛰어가던 발이 얼마나 빨랐던가. 주머니 속에서 딸랑거리는 동전소리에 심장이 같이 뛰었다.


예전엔 선물을 고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써보고 좋았던 것,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고르면 그만이었다. 정성이 담겼으니 상대도 기뻐할 거라 믿었다.


막냇동생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발견하면 선물하곤 했었다. 동생은 자기 취향이 아니라며 시큰둥할 때가 많았다. "잘 어울려! 그냥 입어." 섭섭함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땐 내가 언니 노릇을 톡톡히 하는 줄 알았다. '오지랖'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쓰는 건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요즘은 그저 조용히 현금 봉투를 건네는 일이 많아졌다. 봉투를 받아 든 상대의 표정은 환하다. 안전한 선물이라 좋으면서도 너무 편해서 심심하다. 내겐 탐탁지 않던 게임 카드를 받은 조카의 두 눈에 기쁨이 가득하다. 또 까치발을 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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