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모호해서 꿈이다

by 은색연필

서랍 속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자격증들과 눈이 마주쳤다. 분야가 뒤죽박죽이다. 시험 전날까지 달달 외웠던 내용은 모두 희미해졌는데, 자격증에 찍힌 합격 도장만 어둠 속에서 빨갛게 더 익은 것 같다.


"너는 꿈이 뭐야?"


나는 꿈이 자주 바뀌었다. 터무니없는 상상에 빠져, 불로초 찾기 같은 황당한 꿈도 꾸었다. 괜찮은 아이로 보이고 싶어서 다른 아이의 대답을 슬쩍 훔쳐서 내놓기도 했다. 꿈이라기보다 오늘의 날씨처럼 변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른이 되어서도 자꾸 다른 일에 눈길이 갔다. 중간에 직업을 바꿨고,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을 배웠다. 그러느라 인생이 참 어수선하게 바빴다.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가 그랬다.

"갑자기 운전이 안 됐어. 차가 계속 갓길로 새 버리는 거야. 알지?"


나도 아는 느낌이다. 핸들을 똑바로 잡고 있는데, 차가 조금씩 옆으로 밀려난다. 느리게, 천천히, 조금씩 밀려나간다. '이게 아닌데'하면서도 도로로 돌아가지 못한다.


윌리의 꿈은 아주 분명했다. 성공. 돈. 타인의 인정이다. 흐릿하지 않았다. 아들이 자신을 빛내줄 거라 확신했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무시하던 지인 아들이 성공해서 윌리의 열등감을 자극했다.


삶을 놓아버린 아빠를 보는 아들의 목소리가 아프게 다가온다.


"아빠의 꿈은 틀렸어. 전부, 다. 틀렸어. 자신이 누군지 전혀 몰랐어."


꿈이 분명했다면 내 인생은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윌리는 이 질문에 다른 답을 내놓는다. Wrong dreams. 잘못된 꿈을 꾼 한 사람이 삶을 버렸다. 틀린 꿈을 향해 매달린 시간은 매몰 비용이 되었다. 중간에 핸들을 꺾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느낌. 갓길인 줄 알면서도 계속 밀려나가는.


내 방황의 증거들인 서랍 속 자격증을 만져본다. 매번 궁금해서 배웠고, 배우는 동안 즐거웠다. 이것이 갓길이었을까.


밤에 꾸는 꿈은 늘 모호하다. 걷다가 날기도 하고, 느닷없이 바닷속에 잠기기도 한다. 현실의 꿈도 그렇게 보면 안 될까?


생계를 위한 일에서 물러난 지금,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몇 시간째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갓길의 흰 선이 사라진 넓은 도로를 이제야 만난 것이다. 오늘 하루를 내 맘대로 설계한다. 꿈이라 부르기 힘든 꿈이다.


자격증이 든 서랍을 닫는다. 달그락 소리가 듣기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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