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혼자 앉아 있는 거실에 정적이 흘렀다. 느닷없이 찾아온 코로나라는 병이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4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혼자 있는 시간이란 감각이 정확히 찾아왔다.
신발을 찾아 신고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늘 다니던 길이 새롭게 느껴졌다. 따뜻한 햇살의 촉감 위로 새들의 노랫소리가 내려앉았다.
가족들은 이따금 성질 급한 나를 두고 '롸잇나우병'에 걸렸다고 놀렸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긴 밤이면 머릿속이 계획들로 차올랐다. 어서 아침이 오길 기다렸다가 신발부터 신었다.
나는 사형제 중 맏딸이다.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 대신 동생들을 챙기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잘한 일들을 챙기느라 내 하루는 자주 조각났다. 사람 좋아하는 탓에 전화벨도 자주 울렸다. 두세 시간씩 고민을 들어주는 일도 잦았다. 호기심 많은 성격까지 채우려면 수첩에 스케줄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진해서 '롸잇나우병'에 걸려 있던 것이다.
이런 내가 외향형 인간이라 확신했었다. 사람들 틈에서 왁자지껄 웃는 내가 나답다고 여겼다. 북적이는 곳을 좋아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색했다.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이 오자, 이상하게도 꽉 찬 느낌이 들었다. 허전한 게 아니라 채워지는 느낌. 나는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다가 벤치에 앉았다. 나무가 나를 단단히 받치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수첩에 그 기분을 몇 줄 적어보았다. 편안하게 안정되었던 호흡이 살짝 들떴다.
집으로 돌아와 심리학 공부를 했다. 책과 영상, 수업까지 닥치는 대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수록, 나 자신이 더 궁금해졌다. 어느 날, 멍하니 책장을 바라보다가 시선이 멈췄다.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들이 꽂혀 있었다. 줄거리는 희미한데, 그 책들을 읽던 시간의 감정만큼은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키보드를 누르며 순간의 감상들을 붙잡아두었다. 속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발행'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칫했다. 바로 누른다. 글이 조금씩 쌓이고, 글 속에 나라는 사람이 보였다.
신발을 신고 공원으로 나간다. 벤치에 앉아 햇살이 얼굴을 쓰다듬는 감촉을 느낀다. 수첩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