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11)
나에게는 지금 스물네 살이 된 딸 단비가 있다.
워낙 엄마 답지 않게 귀엽고 예쁘게 태어난 딸인지라 어렸을 때부터 내 후배들인 이모, 삼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 컸다.
그 아이가 20살 직장인이 되어 첫 월급을 타고 명절이 되었을 때 나는 단비에게 스팸이며 화장품이며 선물 세트를 사게 하고 인근 이모, 삼촌들에게 데려갔다.
이 삼촌은 너에게 해마다 두 번씩 상품권을 십 년 간 준 삼촌이야.
이 이모는 네가 살고 있는 그 집을 십 년 동안 그냥 살게 해 준 이모야.
이 삼촌은 네가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할 때 항상 니 교복을 해준 삼촌이야.
그렇게 삼촌과 이모들에게 직접 산 선물세트를 드리며 인사를 하게 했다.
해마다 두 번의 명절에는 엄마가 없어도 주인집 노부부가 살고 있는 빌라 옆집에 가서 과일 상자를 건네는 일도 꼭 시켰다.
어쩌면 가난한 엄마를 두어서 치러야 할 일이 아닌가!
나는 뜻하지 않는 긴 별거 생활 때문에 단비와 떨어져 지낸 세월이 대다수이다.
일주일에 한 번 단비가 사는 집에 가면 반찬을 해 놓고 올 법한데 그러지 않았다.
나의 핑계는 단순한 논리였다.
"엄마는 70년대 태어났어. 엄마의 엄마는 30년대에 태어나신 분이고. 그때 우리나라를 가난했기 때문에
모든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염장 아니면 당장이야. 소금. 간장. 설탕에 절인 음식이 대부분이라서 그거 먹으면 고혈압 당뇨로 고생하니까 그냥 엔간하면 생 걸로 먹어. 엄마 음식 먹으면 살쪄"
나는 단비에게 요리를 가르쳐 준 적도 없다.
명절 때면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만두나 동그랑땡을 만들 때 그저 만두 빚는 방법 정도 가르쳐 주고는
개당 백 원의 용돈을 주며 일이백 개의 만두를 빚게 할 뿐.
이 또한 핑계는 단순했다.
"너 뭘 배우면 그게 다 너에게 일이 돼. 요리하지 마. 안 하고 살아도 돼. 네가 살 세상은 앞으로 엄청나게 맛난 음식들이 지천으로 깔릴 테니까 그냥 사 먹어. 해 먹으면 돈도 더 들고 피곤해. 네가 요리를 못하면 주방 들어갈 일은 없을 거야. 엄마가 살아보니 주방 들락날락 거리는 여자들 인생은 기구해져. 그냥 더 좋은 곳 다녀!"
그런 이유로 단비는 단 한 번도 내게 '엄마 그거 어떻게 만들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 나의 지인들과 자리를 하면 지인들이
"단비는 좋겠다. 엄마가 요리를 잘해서 음식 많이 만들어 주지?"
그러면 단비는 눈을 멀뚱멀뚱 거리며
"저 엄마 음식 많이 못 먹어봤어요."라고 말을 했다.
단비가 나의 음식을 제대로 먹어 본 것은 초등학교 사 학년 때였다.
그 당시 서울로 이사 온 단비가 친구들과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단비와 단비 학교 친구들을 운영하던 대학로 술집에 불러 파티를 열어주었다. 낮시간 가게를 운영하지 않는 시간에 불러 직접 만든 치킨이며 볶음밥이며 깐풍기 같은 요리들을 만들어 주었는데 단비는 아직도 그때의 맛을 기억해서 한 번씩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렇지만 절대로 그걸 어떻게 만들어라고 묻지 않는다.
옛말에 음식 잘하는 여자는 소박맞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지금은 정말로 쾌쾌 먹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나는 앞으로도 단비에게 음식을 잘하란 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
여자는 음식 잘하는 거보다 설거지 잘하고 청소 잘하는 게 더 사랑받는 거 아닌다.
요즘 남자들은 음식 못한다고 타박하지 않는다. 청소 안 한다고 타박할 뿐.
밖에 나가면 가게마다 요리 잘하는 이모님들이 있지 않은가!
오늘은 더 맛난 집에 갈까를 검색하는 이 시대에 저 말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말이 되었는 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내 동생은
내가 병실에 누워있던 그 해. 내 손을 잡고 이야기했다.
"언니야. 니 죽기 전에 내한테 음식은 좀 가르쳐 주고 죽으래이~"
솔직히 나는 내 동생에게도 요리를 가르쳐 주고 싶지 않다.
엄마는 그런가 보다.
딸의 손에 물 묻는 게 싫은가 보다.
언니도 그런가 보다.
내 동생의 손에 물 묻는 게 싫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