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꽤 많은 은인이 있다.
그 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은인들이 생긴 시점은 내가 작가생활을 하고부터였다.
비정규직 예술인의 삶이란 늘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야 하고 신세를 져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해 인가, 만화방 미숙이란 작품이 뮤지컬 어워즈 극본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난생처음 시상식장에 참석을 하였다. 그리고 수상소감을 준비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은인들이 떠 올랐기에 그냥 간단하게 말하자라고 생각했었고, 그때 수상소감은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저의 지독한 가난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그 수상소감은 끝내 발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수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뮤지컬 극본상에 같이 노미네이트 된 작품은 라디오 스타와 내 마음의 풍금 이렇게 세 작품이었는데
그 해 수상은 내 마음의 풍금이 받았다.
웃겼다. 모두가 내가 받을 거라 했다. 그래서 내심 기대를 했었다. 이유는 나머지 두 작품은 이미 영화로 성공한 작품들을 뮤지컬로 옮겨왔기에 창작극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라고 생각했었다. 뭐 그건 내 개인적 생각이고
아무튼, 결론은 작가로 살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살았다는 말이다.
그중에 가장 큰 빚을 지고 있었던 분의 이야기이다.
엠비시 프로덕션으로 일할 때, 내가 집이 없는 지방인이라는 걸 알게 된 피디님이 장모님의 건물에 있는 1층 슈퍼자리를 작업실로 쓰라고 공짜로 주셨다.
거기에서 6~7년 정도를 살았다. 그 당시 월세로는 500에 4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는 방 딸린 점포였다.
아현동 언덕 최고봉에 있던 그곳은 내 작업실로 사용하다가 대구에 살던 단비와 단비 아빠까지 올라와 살게 된 집이었고, 작가질과 또 가장질까지 두 집 살이를 해야 했던 나에게 부담을 덜어준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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