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인베이글 Jan 13. 2019

공황장애

애쓰는 이들의 그림자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월례회의를 한다. 지난 달 만들어낸 잡지와 온라인플랫폼의 주요 내용도 보여주고 회사의 향후 전략도 공유하는 시간이다. 1부는 초청 연사의 강연으로 이뤄지는데 배우는 것이 많아 기대고 하고 열심히 듣는다.


오늘 연사는 소통전문가로 유명한 김**였다. 어찌나 재담이 좋은지 1시간 30분 내내 웃었다. 강연을 들으며 계속 얼굴을 보다보니 <아침마당>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토라진 아내, 꽉 막힌 남편, 못말리는 꼰대의 말과 행동을 재연할 때마다 방청객은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강연 말미 그가 공황장애를 겪었던 과거를 고백했다. 그마저 유머로 승화시켰지만 웃는 모습에서도 아픔은 전달된다. 그는 공황장애를 그만두지도 못하고 열심히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포식자가 앞에 있는데 뿔로 받아 버리지도 못하고 재빠르게 도망갈 수도 없는 상태. 한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연예인이 많아지던 언젠가 검색으로 알아봤던 그 어떤 텍스트보다 구체적이고 명쾌한 정의였다. 스스로 찾은 처방도 인상적이었다. 마음이 힘들 때는 친구에게 털어놓거나 전문가를 찾으라. 체온이 올라가면 열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태워버리니 땀 흘려 운동하거나 사우나를 하라.


며칠 전 자못 심각한 기분이 돼 공황장애를 다시 한 번 검색한 적이 있다. 사내 메일을 확인하는 데 느닷없이 심장이 요동쳤다. 펑크난 자전거 바퀴에 누군가 빠른 속도로 바람을 넣을 때처럼 호흡이 가파왔다. 머릿 속도 잠시 백지 상태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 예전보다 빈번해지는 듯해 겁이 난다. 어떤 영화에서처럼 냉장고 문을 열면 물고기가 쏟아져나올 것 같은 환영에 시달리진 않지만 마음과 육체가 어떤 위기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우울해진다. 수면의 질도 나빠졌다. 2018 리뷰 보고서에서 놓친 부분, 외부 프리랜서 기자에게 전달해줘야 할 내용, 다음 주 미팅 일정이 계속 떠오른다.


공황장애 판정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 고통을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 공황장애를 겪었거나, 겪는 중이라고 하면 얼마나 애를 썼을까 싶다. 잘 해 보려고 최선을 다했을 시간들이 짐작된다. 너무 애쓰며 살지 않는 것이 트렌드이자 삶의 기술처럼 인식되지만 그건 애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고, 평균수명은 눈에 띄게 늘어가는 이 시대를 '애쓰는 사람들의 시대'라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쉴 새 없이 우리를 웃겼던 강연자는 공황장애 이야기 말미에 셀프 허그를 제안했다. 양쪽 팔을 엇갈려 스스로를 안아주고 토닥토닥 해 주는 시간. 허그도 셀프로 해야하나 씁쓸했지만 쓰담쓰담 천천히 팔을 쓸어내리고 있자니 또 위로가 되었다.


좌절과 절망, 견뎌내고 애써야 하는 시간들은 또 반복될 것이다. 어느 날은 글 한 구절에, 또 어느 날은 따듯한 한 끼 식사나 쉼호흡 한 번에 짧은 용기와 위로를 얻을 것이다. 이런저런 노력도 여의치 않을 때는 이렇게 셀프허그라도 해야지.


신년이 밝았고 오늘도 하루가 시작된다. 우리 모두의 애 쓰는 시간들이 너무 처절하진 않기를, 화상처럼 깊은 흉터는 남기지 않길 바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