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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Jan 13. 2019

<스카이 캐슬>이 일깨워 준 것들

애면글면하지도, 채근도 하지 않기

요즘  <스카이캐슬>을 재미있게 본다. 같은 땅에 저런 세상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애 교육엔 별 관심 없는 우리 부부를 보면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까. '어쩔려고 그러세요?여긴 대한민국이에요~' 답답해 할 거다. 그래도 우리 애들을 드라마 속 아이들처럼 키우고 싶진 않다(그럴 능력도 안 되지만). 예서를 포함해 드라마 속 아이들은 항상 화가 나 있다. 분노탱천. 걸어다니는 화약고 같은데 자녀가 그런 상태가 된다는 건 슬픈 일이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면 차라리 지구 반대쪽 어느 소수민족의 삶이 더 현실적이겠다고 했다. 천둥번개가 쳐도 방해받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방음벽을 친 스터디룸이라니, 서울대 의대 입학을 목적으로 억대 수업료를 받는 코디라니. 그런 전문가들은 김연아나 박태환에게만 붙는 줄 알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한다. 내게는 교육관 같은 것이 있나.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침대에 누워 곰곰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막연히 애들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살면서 힘들고 나쁜 일은 가급적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스카이 캐슬>속 부모와 자녀관계를 떠올리자니 이렇듯 별 생각이 없는 게 다행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에게나, 애들에게나.


교육관처럼 거창한 것은 없지만 소소한 바람같은 건 있다. 크면서 막무가내로 푹 빠지는 것이 한 두 개는 꼭 있었으면 좋겠다. <응답하라 1994>를 보면서 난 서태지에 열광하는 윤진이가 그렇게 보기 좋았다. 브로마이드를 사모으고 팬클럽에 가입하고 콘서트장에서 목이 터져라 열광하는 모습이 행복하고 건강해 보였다. 학창시절, 딱히 좋아하는 것이 없었던 나는 그런 애들을 보면 여직 부럽다. 사회에 나와보니 인간의 매력은 무언가 깊이 좋아하는 것이 있을 때 반!짝! 하고 발현되더라.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 눈은 반짝이고 얼굴엔 생기가 돈다. 그런 대상이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빙그레'를 볼 때면 마음이 아팠다.  


우리 집 첫째 아이는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를 좋아해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교보문고에 달려가고, 방에 포스터도 붙여넣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공부를 좋아하면 또 그 나름대로 대견하겠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공부를 막 잘할 것 같지는 않다. 공부만이 유일한 옵션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컴퓨터와 로봇이 기사를 쓰고 주식 투자도 하는 시대 아닌가. 이런 시대일수록 메마른 영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술적 감성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딸들아 그러니 많이 흥얼거리고 보고 즐기며 살아라.


노인을 기피하지 않았으면, 어르신들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때로 노인은 편협하고 고집불통이지만 다정하고 속깊은 이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벤자민에게 친밀한 시간을 선물한 노인들처럼. 잘 안 들리고, 과거 지향적인 그들을 위해 천천히 말하고, 단어를 고르고, 요즘 이야기도 들려주는 아이라면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살 것 같다.


양정웅이란 연극연출가가 있다. <한여름밤의 꿈>, <십이야>로 셰익스피어의 안방이라는 런던 글로브극장과 바비칸센터에서 작품을 올릴 만큼 실력을 인정받는 이다. 그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는 한편의 성장 영화처럼 재미있었다.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대학로에서 연극을 계속했는데 해외에 나가서 집시처럼 살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어느날, 라센칸이 한국에 와서 워크숍을 하고 오디션을 봤는데 덜컥 합격을 했어요. 신이 나서 바로 외국으로 떠났지요. 그렇게 그곳에 갔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새롭더라고요. 영국 사람, 독일 사람, 스페인 사람 10여 명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했어요. 연극을 하면서 문화와 공간과 시간은 달라도 인간의 본질은 같구나 하는 걸 느꼈지요. 내가 제임스 조이스, 카뮈의 문학에 감동받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자연스럽게 깨우쳤죠. 고등학교 때는 춤바람이 나 졸업할 때까지 학교보다 나이트클럽을 더 자주 갔어요. 영화 <백야> 속 그 유명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춤도 그 때 보고요. 그런 경험과 시간들이 연극연출을 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우리 애들이 그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점점 희귀해지는 모험가가 되어 인생의 한 시절이라도 호기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밥벌이를 하는 것이 중요할 텐데 경험이 쌓이고 시선이 깊어지면 자신에게 맞는 인생의 길도 더 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모르는 게 약이라는 옛날 속담은 자녀 교육에 특히 잘 맞는 듯 하다. 나 역시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싶은,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일들을 학창시절에 많이 했는데 그 때 부모가 개입해 어쩌려고 그러냐 애면글면했다면 제법 긴 그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니 친구관계든, 유튜브로 자주 보는 영상이든 너무 다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넌 왜 큰 길 놔두고 좁은 길로 가느냐 채근하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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