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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Jan 13. 2019

사진 117장을 인화했다

많이 찍고 많이 뽑는 삶이었으면

어제는 사진을 인화했다. 뽑아야지, 뽑아야 하는데 옅은 다짐만 하다가 몇 년이 흘렀나 모르겠다. 이번에는 반드시 한 번 정리를 하자, 큰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또 그렇게 기약없는 시간을 보냈을 지도 모르겠다. 이번 만큼은 꼭 뽑아야지 마음을 먹고 사진을 간추렸다. 이건 애들이 귀여워서, 이건 내가 잘 나와서, 이건 아내가 이뻐서, 이건 자매가 사이좋게 나와서...넉넉한 마음으로 쓸어담다보니 총 117장이 됐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였다.

현상소에 가 파일이 들어있는 USB를 넘기고서야 요즘 인화비가 얼마인지 알게 다. 장당 450원. 가격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인화비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사진을 뽑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지하철을 타면서 교통카드만 대다가 오랜 만에 기계에서 승차권을 사는 것처럼 낯설었다. 생각보다 비싸네 싶다가, 사진첩에 담아 평생 볼 걸 생각하면 또 저렴하게 느껴졌다.


사진을 뽑아야겠다 마음먹은 건 사진첩에 관한 좋은 기억들 때문다. 처갓집에 가면 안방 수납장에 커다란 앨범이 몇 권 놓여있다. 커버에는 꽃이 그려져있고 안쪽에는 한 장 한 장 사진을 넣을 수 있는 얇은 비닐이 있고 그 옆으로는 간단한 메모도 할 수 있는, 그 옛날 전형적인 모양의 앨범. 장모님은 그곳에 아내의 학교 생활 통지서며, 사진을 가지런히도 정돈해 놓으셨다.


처음 그 앨범을 봤을 때의 재미가 아직도 선하다. 아내 외모의 절정기는 6살 무렵 유치원 때였다. 본인도 인정했다. 큰 눈, 선한 얼굴이 이영애 만큼이나 이뻤다(죄송합니다). 아내는 저를 만나면서부터 커트 머리를 고수하는데 나의 영향도 크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긴머리 한 모습을 봤는데 정말 안 어울려 이런 모습이었으면 대시도 안 했을 거라고 막말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별로였다. 하하. 그때부터 '앞으론 무조건 커트로 가자!' 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녀의 사진 속 추억은 달콤했다. 노란 한복을 입고 교정에서 찍은 사진, 저도 아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수학 여행을 가서 노는 모습, 장인장모님과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정작 본인은 그 사진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옛 사진이 별로 없는 나는 한 장 한 장이 특별해 보다. 부모님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않았던 데다, 아버지 일이 워낙 바빠 함께 여행을 가는 건 꿈도 못 꿨. 간혹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동네 어귀에서 나팔바지를 입은 엄마, 아빠와 찍은 지인들의 사진이 올라오면 재미있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해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이탈리아관광청 소장님은 제가 아는 분 중 가장 화목하게 사시는 분이다. 남편과 사이도 좋고, 아들 딸과의 관계도 좋다. 1년에 한 번은 꼭 해외 여행을 다니시는데  돌아오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출력해 한 권의 앨범으로 만든다. 하와이 여행 앨범 제목은 하와이, 뉴 칼레도니아 앨범 제목은 뉴 칼레도니아 하는 식으로 이름도 붙여 넣는다.

사진을 뽑아온 날 네 식구가 식탁 주변으로 빙그르 둘러앉아 이 사진 저 사진 손에 잡히는 대로 들여다 봤다. 주말 가족 드라마에서처럼 뭔가 되게 화목하고,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풍경을 상상했는데 그닥 드라마틱하지는 않았다. 애들은 별 관심도 없었다.
 
"우리 **, 동생이랑 친하게 지냈던 것 좀 봐라, 심지어 안아주기도 했다"하며 사진을 건넸더니 "어 그래? 그 때는 얘가 착했나보지!"  
"++야, 이것 좀 봐라. 언니 이쁘지?" "뭐야. 그럼 난 안 이뻐? 으앙~~"
"여기가 어디 수영장이지? 사진을 봐도 기억이 안 나네?" "그러게 진짜 모르겠다. 푸하하"
"자기도 풋풋했었구나. 젊었네~"

사진을 뽑을 때의 내 마음은 그냥 단순했다. 잘 나온 것 같은 내 사진을 고르면서는 아이들이 커서, 남자를 보는 눈도 좀 생기고, 사위도 데리고 집에 왔을 때 "우리 아빠, 젊었을 때 꽤 괜찮았지?" 하고 말했으면 했다. 아내가 장인어른의 늠름한 사진을 보여주며 내게 그랬던 것처럼. 여행 좋아하는 엄마 아빠 만나 여기저기 잘도 다닌 걸 감사하는 것 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행복 속에 있었던 사람은 정작 그 시간을 잘 기억하지 못하더라. 청소년기의 행복은 더욱 더. 아내만 해도 그렇다. 여기저기 산으로, 들로, 바다로 많이도 다닌 것 같은데 거의 기억을 못한다. 장인어른이 살아 계실 때 "저희 이번에 울진 가요~" "저희 이번에 설악 가요~" 하면 장인어른이 그러셨다. "거기 자네 마누라도 다 갔었던 덴데...또 기억 못하지?" 제 대답은 많은 경우 이랬다. "네, 기억 안 난대요~"

사진을 정리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차분히 사진 파일을 정리할 수 있을 만큼만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많이 찍고 많이 뽑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사진은 찍는 것보다 뽑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소확행, 소확행 하는데 사진 뽑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소확행의 순간이 아닐까.'

P.S 사진을 뽑고 나니 역시 내 사진을 가장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되더라. 첫째인 **와 장난을 치며 웃는 사진이 많았는데 먼 기억처럼 아득하면서도 잠시 반짝이는 무언가를 본 기분이 들었다. '젊은 아빠'는 한 개인의 생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괜찮게 나온 사진이 팍팍 줄어드네. 휴, 나도 옛날에는 동안 소리 좀 들었는데 어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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