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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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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Mar 23. 2019

한옥살이의 10가지 소소한 즐거움

즐거움이 곧 고충이 되는 신기하고 재밌는 생활

작고 오래된 한옥에 산다. 심지어 화장실이 밖에 있다. 푸세식은 아니다. 처음 이사를 와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갔는데 머리가 천장에 닿아 앉아서 샤워를 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땐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40넘어 이 무슨 처량한 신세냐. 북촌에 있는 으리으리한 한옥과는 뼛속(한옥의 뼈대라 할 만한 서까래도 다르긴 하다)까지 다른 서촌의 생활형 한옥. 그럼에도 나름 사는 재미가 있다. 안식도 얻는다. 한옥에 살아요? 뭐가 좋아요? 춥지요? 고생이시겠네요? 놀러가고 싶어요. 그 수많은 물음과 의견에 대한 소회.


1 뭐니뭐니 해도 빗소리

한옥에 살아 특히 좋은 건 빗소리다. 직장에 있을 때 비가 오면 아, 오늘 연차를 냈어야 하는데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양철로 만든 크고 넓은 빗물받이는 빗소리를 증폭시키는 훌륭한 스피커다. 몇 년째 그 소리를 듣자니 지금 내리는 비가 토도독인지 후두둑인지 파바박인지 느낌이 온다. 바람의 세기도 느껴진다. 비오는 날이면 처마 밑에 둔 캠핑 의자로 나가 앉곤 한다(추울 땐 곧 돌아오지만). 뭔가 촉촉해지는 기분. 적당한 어둠과 차분함도 스며든다. 경보하듯 바쁘기만 한 리듬이 슬로우, 슬로우로 바뀐다. 침대에 누워 도톰한 이불을 덮고 듣는 빗소리도 참 좋다. 특히 폭우가 내릴 때. 기와와 양철 지붕을 세차게 때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동굴 초입에 있는 듯하다. 느긋하고 편안하며 포근한 상태. 그 옛날 비가 오면 사냥을 포기하고 하루 쉬었을 네안데르탈인처럼 '오늘은 다 접고 빗소리나 들으며 쉽니다' 하는 기분이 된다.   


비가 늘 낭만적인 건 아니다. 장마철에는 필시 비가 새는 곳이 생긴다. 사흘 밤낮을 퍼부어대니 기와지붕 사이사이로 빗줄기가 흘러드는 것이다. 이럴 때는 방법이 없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주인집에 전화를 거는 수밖에. "저 어디 어디 쪽에 비가 새는 데요?" 하고 말하면 집주인은 "그래요, 사람 보낼게요" 한다.    


2 햇빛 쫓는 즐거움

언젠가 지인이 그러더라. "단독 주택에 살아보고 나서야 해가 계속 이동하는 걸 알았다. 하하하." 아침에 해가 떠 저녁에 저물기까지 10시에는 이 방, 2시에는 저 방에 빛이 내린 걸 눈으로 보고서야 태양의 이동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한옥은 보통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ㄷ자(우리 집은 ㄷ자를 반대로 돌려놓은 역 ㄷ자)나 ㅁ자로 방이 배치된다. 그러다 보니 방마다 빛이 들어오는 시간이 다르다. 빛이 태 부족한 방도 생긴다. 지금 집 이전, 다른 한옥에 살았을 때는 옷방이 그랬는데 빛이 안 들어오니 옷에 금방 곰팡이가 피어 빛 좋은 날에는 마당에 옷가지를 다 꺼내놓고 솔로 쓸고 방망이로 때려가며 옷 손질을 해야 했다.


지금의 한옥 역시 빛 들어오는 시간이 다 다르다. 가장 먼저 해가 찾아오는 곳은 안방. 옆집 마당과 면한 곳에 작은 창문이 있는데 출근 준비를 하며 세수를 하고 들어와 안방 미닫이 문을 열면 맞은편 창호문으로 빛이 한가득 일렁인다. 빛의 입자들이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느낌. 주말에는 창호문을 통과한 빛이 황토색 장판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구경한다.


오늘도 그랬다. 8시경에는 미닫이문 바로 앞쪽까지 빛이 들어와 제법 큰 사각형을 만들어내더니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왼쪽으로 조금 비켜서 이전보다 작은 무늬를 만들어낸다. 1시간 전의 형태와 또 다른 크기와 모양. 또 한두 시간이 지나자 형체가 흐릿해지더니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감춘다.


한옥의 매력 중 하나는 창호문이 아닌가 싶다. 빛을 모으고, 순화하고, 일렁이게 하는 마술사. 좀 다른 얘기지만 인간은 필연적으로 온기를 필요로 하는 듯하다. 살아있는 사람, 살아있는 동물, 살아있는 식물, 살아있는 목소리가 주는 생기와 평화 같은 것 말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에서 강도(이정진 분)는 사람들에게 인정사정없이 빚을 받아내는데 피붙이도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한 할머니 집에 가서는 값나가는 물건이 하나도 없자 할머니가 자식처럼 키우는 토끼의 귀 양쪽을 낚아채 온다. 내겐 그 장면이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느껴졌다. 토끼의 생명과 온기 없이 그 할머니가 생을 버틸 수 있을까... 잠시 옆길로 샜는데 창호문을 운동장 삼아 소곤소곤 흔들리는 빛의 입자를 볼 때면 자연의 생명력, 자연이 살아있다는 것을 새삼 인지한다. 그 고요한 움직임에서 편안하고 따뜻한 기운을 느낀다.  


이 빛이 늘 은혜로운 것만은 아니다. 지금 한옥의 구조상 여름이면 주방으로 난 창을 통해 직사광선으로 빛이 쏟아지는데 그 빛이 하도 쎄 아내는 선글라스를 끼고 요리를 한다. 그야말로 작렬하는 빛 아래서 선글라스를 끼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라니. 언젠가 아내가 인스타에 올린 글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눈 멀 것 같아 선글라스 끼고 밥합니다."

 

3 호호 추운 겨울

"겨울에 춥지 않아요?" 한옥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다. 당연히 춥다. 아주 죽겠다. 서까래 밑 천장에서부터 오랜 세월의 여파로 아귀가 맞지 않는 미닫이문 틈 사이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면서 실내온도가 18도를 넘기기 힘들다. 추운 날이면 꽁꽁 언 나무에서 퍽! 퍽! 섬유질 터지는 소리도 들린다. 18도로 살면서 한 달 도시가스비용은 35만 원. 처음에는 '따뜻하게나 살았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제 이력이 나 아무렇지도 않다. 한 번씩 그렇게 큰돈을 내고 나면 잔액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이 처량할 뿐.


겨울이면 봄이 옴과 동시에 지하실로 넣어뒀던 난로를 들고 올라온다. 전기난로도 써 봤지만 충분하지 않아 기름 난로로 바꿨다. 3~4일을 돌리고 나면 기름이 다 떨어져 마당에서 빨간 호스가 달린 사각 기름통을 옆에 두고 주유를 해야 하는데 그러고 있노라면 1980~199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언제 방영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나 <목욕탕집 남자들>의 배경지 같달까.  


저녁이 되면 그렇게 집에 들여온 난로 위에 보리차를 끓인다. 물이 졸아들면 채워 넣고 다시 졸아들면 또 채워 넣는다. 가장 맛있게 뜨거울 때를 골라 컵에 따라 마신다. 가래떡도 구워 먹는다. 너무 추운 날은 그 난로를 들고 안방으로 갔다 주방으로 갔다 한다. 저녁 늦게까지 글을 써야 하거나 일을 해야 할 때는 난로를 식탁 옆에 최대한 가까이 붙여 넣고 작업을 한다.


우리 엄니 말마따나 "참 가련하게 산다" 싶으면서도 뭐 나쁘지 않다. 또 언제 이렇게 살아보겠나.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가가 쓴 <그늘에 대하여>에 보면 '추위가 낭만이다'(크게 공감했으면서도 정확한 문장이 안 떠오른다. 이런 뉘앙스였다)란 구절이 있는데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춥기에 난로가 들어오고 그 난로를 중심으로 '애틋한'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렇게 봄이 오면 아, 고생 끝났다, 정말 좋다 싶으면서도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든다.


겨울의 한옥생활을 낭만으로 미화했지만 고달픈 날도 많다. 하하. 왜 아니겠는가. 어쩔 때는 너무너무 씻기가 싫어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잔 적도 많다. 머리에는 떡이 지고 이곳저곳 찝찝한 곳이 있지만 밖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벗을 엄두가 안 난다.


P.S 짧게 짧게 한옥생활의 즐거움과 고충 10가지를 한 글에 다 욱여넣으려고 했더니 글이 끝도 없이 길어지는고만요. 아무래도 상중하로 나눠야겠습니다(그 세편을 다 볼 사람도 많지 않을 듯싶지만). 10가지를 다 채울 수 있을까, 뭘로 채우나 싶기도 한 데 손도 곱고 머리도 굳어가니 여하튼 다음을 기약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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