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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Jan 13. 2019

잡지 기자로 살았던 시간

낭만으로 기억될 시절들

10개월 전, 디지털 플랫폼으로 직장을 옮겼다. 향수병이랄까. 종이 매체에 있던 날들이 한 번씩 생각난다. 합숙훈련하듯 치열했던 마감 풍경도 떠오른다. 마감에 들어가면 에디터들은 ‘볼모’ 신세가 된다. 열심히 자판을 쳐 하나씩 급한 데로  계속 기사를 넘겨야 한다. 편집이를테면 공장장다. 납품 속도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여지없이 경고장이 날아든다. 세상은 이렇게 변했는데 여전히 종이를 붙들고, 지면 레이아웃을 기준 삼아 원고량을 늘렸다 줄였다 한다. 마감 때 편집부에 있다 보면 바깥세상보다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곳에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업은 정말 좋았다.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멋진 어른들을 만나는 일이 그중 최고였. 이런 분들을 만날 때면 ‘좀 더 부지런히 살자’ 고양된 기분으로 파이팅 외쳤다. 그런 자극이 2~3일을 못 간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래도 그런 자극이 있었기에 조금은 건설적인 하루하루를 살 수 있었다. 그 반복적 자극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형편없는(금도 뭐 그럭저럭인 사람이지만) 사람이 됐을 다. 어느 때는 좋은 분과의 인터뷰 마음에 빛이 들어오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황량한 벌판에 빛이 들어왔다 나가면 작은 씨앗을 품게 된 것 같았다. 그런 날엔 나만의 화두를 만들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다.


마감을 기준으로 짜여지는 한 달리듬도 좋았다. 마감 직후 2~3일은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늦잠을 자고, 한가로움을 만끽하고, 카페에도 다. ‘찜’해 놨던 영화도 보고 산에도 오른다.

그 다음 주는 서서히 시동을 거는 시간이다. 배당표를 올려놓고 하나하나 취재 일정을 잡아 나간다. 그 다음 주에는 열심히 취재를 다. 생각보다 별로인 사람을 만나 실망도 하고, ‘아 이런 말은 너무 좋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가 있지?’ 감동하면서 삶의 의지를 불태우기도 다. 그 다음 주는 드디어 마감. 아침 10시쯤 출근해 밤 11시까지 사무실에 박혀 기사를 쓰다보면 어떨 때는 팔이 시큰하다. 손목터널증후군이 아닐까? 싶어 검색을 한 것도 여러 차례였다. 그래도 틈틈이 동료, 선후배와 시시한 농담을 하고, 밥을 먹으며 재미난 얘기를 하고, 지난 추억을 되돌아보며 하하호호 웃다보면 시간이 금세 갔다.


돌아보면 잡지기자의 삶도 많이 달라다. 팍팍해졌달까. 예전에는 마감을 전후로 낭만적인 시간이 많았다. 저녁 시간이면 으레 차를 나눠 타고 신당동으로, 압구정동으로 맛집을 찾아다다. 봄날엔 남산으로 벚꽃 구경을 갔고, 밤이면 파전이나 삼겹살에 동동주와 소주를 곁들였다. MT는 연례 행사였다. 강원도 오대산 쪽에 있는 통나무펜션을 빌려 1박 2일 화끈하게 놀았다. 몇몇 선배들은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다며 야밤에 느닷없이 차를 몰아 동해로 떠나기도 했다. 그것도 마감 한복판에. 어떤 선배는 늦은 밤 책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사를 썼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으니 이야기도 많이 생겼다. 오대산 통나무집으로 MT를 간 날이었다. 삼삼오오 족구도 하고 산책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 있다 광고부 차장님이 다부진 생김새의 빨간색 산악바이크를 끌고 오셨다. 인근 산자락에나 올라갔다 오자는 것이다. 얼떨결에 뒷좌석에 탔는데 이 분 운전 스타일이 사뭇 공격적이었다. 지나온 흙길에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코너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이러다 사고나는 거 아니겠지?’ 하던 찰나. 산악바이크가 공중으로 붕 뜨더니 비탈 쪽으로 추락했다. 나도 고꾸라졌다. 오토바이는 나무 그루터기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실감이 안 나 잠시 멍했다. 다행히 차장님도 괜찮은 듯 보였다.


복통이 느껴졌다. 중요한 부위에도 통증이 전해졌다. 더 멍한 상태가 다. 뭐야. 어쩌지. 나 결혼도 안 했는데. 어찌어찌 하산하던 용달차에 밧줄을 매달아 산악바이크를 끌어올렸도 그 차를 얻어 타고 숙소로 왔다. 복통은 어느 정도 가셨는데 중요 부위는 저렸다. 어찌나 걱정이 던지. 당시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의 잡지 마감은 빡빡하고 건조하다. 개개인의 생활이 중요해져 밥 먹을 때를 제외하면 거의 함께하는 시간이 없다. 타닥타닥 근면한 노동자처럼 열심히 키보드만 두드린다. 잠시 웃고, 잠깐 논다. 아무리 함께하는 기간이 길어도 예전처럼 물리적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적으니 정도, 이야기도 쌓이지 않는다. 잡지 뿐이랴. 공동의 유희가 사라진 시대같다. 그것도 나름 재미가 있는데.


언젠가 한 IT 기업에 탐방을 간 적이 있다. 회의실 바깥쪽 작은 모니터에 산소와 이산화탄소 배출량 같은 것이 표시돼 있었다. 홍보 담당 직원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회의를 시작한 지 일정 시간이 경과돼 공기의 질이 나빠지면 자동으로 알람이 울립니다. 그럴 때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회의를 재개하지요.

캠핑장에 온 듯 놀고, 마시고, 게임하고, 자고, 기타 치며 일하는 업무 환경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 이면에는 이렇듯 과학적이고 치밀하며 체계적인 제어 장치가 있었다.


가끔 궁금하다. 오늘의 이 시간들도 세월이 흐르면 낭만적이고 재미있었던 시절로 기억될까? 효율과 낭만은 공존할 수 없을까? 젊은 사람은 앞을 보고 나이든 사람은 뒤를 본다는 데 나도 벌써 그런 나이가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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