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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Jan 13. 2019

당신은 정말 언제 태어난걸까?

그녀의 사주가 완전 '꽝'이기를

다가오는 3월 8일은 내 생일다. 앞으로는 계속, 쭉 이 날이 내 생일일 것이다. 43년 만의 변화요, 43년 만에 확정한 양력 생일이다. 이전까지 내 생일은 음력이었다. 2월 8일. 음력을 기점으로 삼다보니 매년 양력 날짜가 달랐다. 어느 해에는 3월 5일, 또 어느 해에는 3월 7일.


직장에서는 연락처 마지막 칸에 직원들 생일을 표시해두고 밥도 같이 먹고 케이크를 사 와 축하해 주는데 나만 음력 생일이다. 선후배들은 옛날 사람도 아니고 음력으로 생일을 새는 것이 ‘요즘 사람’ 같지 않다며 놀린다.


생일 정리는 인턴 직원이 한다. 처음에는 꼬박꼬박 마이너스 표시를 해 주더니 새로운 직원이 오고 인수인계가 잘 안되면서(이런 것까지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짜증이 날 법도 하다) 어느 해부터는 아무런 표시도 없이 양력으로 뭉뚱그려져 있다.


문제는 43년간 기준점으로 삼아온 음력 2월 8일조차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주민등록상에는 생일이 2월 5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어머니에게 여러 차례 물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은 적이 없다. “분명히 2월 8일이었는데…”하면서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나도 답답해지면서 “됐어, 됐어”하고 말게 된다.


날짜만 헛갈리는 거면 ‘그래, 느지막이 낳은 막둥이니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길 텐데 태어난 시간도 도통 감을 못 잡겠다. 워낙 늦둥이인데다 위로 5명이나 더 있어 그런가 어머니도 당최 기억을 못하신다. 어느 날은 “저녁 9시 뉴스 끝날 무렵”이라 하시다가 또 어느 날은 “새벽 6시 닭 울 때”라고 하신다. “뭐여 어떻게 그것도 몰라?!” 따져 물으면 “모르겄다. 모르겄어”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누나랑 형에게도 몇 번 물어봤는데 반응이 비슷했다. “학교 갔다 오니까 너 낳았다고 하던데”부터 “너 몇 시에 나왔는지까지 어떻게 기억을 하냐”까지.


덕분에 나는 사주를 못 본다. 12간지에 따른 시간이 2시간 단위로 묶이는데 저녁 9시와 아침 6시는 너무 간극이 커 “몇 시쯤이라고 하던데요”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한 번씩 사주팔자를 보고 나면 기분 전환도 되고 재미도 있을 것 같은데 점쳐 보는 기쁨이 내 사주팔자에는 없나보다.    


몇년 년, 사주명리학 연구로 유명한 고미숙 선생을 인터뷰하면서 이런 사정을 얘기하고 “방법이 없습니까?” 물은 적이 있다. 이 분야의 대가답게 선생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럴 땐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해법을 내놓으셨다. 무엇인고 하니 아침 6시대와 저녁 9시대를 포함해 가능성이 높은 몇 개 시간대를 꼽아 사주를 다 본 후 본인의 과거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시간대를 잡으면 된다는 거였다. 미래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지만 과거의 궤적은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으니 그 내용을 잘 살펴보면 된다고. 이를테면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쳤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시간대를 ‘정답’으로 보면 된다는 거다.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기쁘면서도 그걸 알아내자고 몇 개 시간대를 차례로 대입해가며 역술인과 오랫동안 논의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사주풀이가 박사 논문을 쓰는 것은 또 아니니까.  


그 방법도 날아가고 그나마 내가 의탁하는 것은 아내의 사주다. 어쨌든 나와 부부로 엮여 있으니 그녀의 남편 운이 나의 사주 아니겠는가. 한 번은 아내가 삼청동에서 뜨개질을 배우던 분에게 소개받은, 성북동 재산가 할머니들에게 무척 신망이 높은 역술인을 찾아간 적이 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보통 용한 것이 아니어서 돈 많은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은 빌딩을 지을 때처럼 큰 사업을 벌이거나 이사를 갈 때 이곳을 찾는 모양이었다. 역술인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 후 꼭 식사를 함께 하며 담소를 나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비용은 적당해 10만 원.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아내도 사주를 보러 갔는데 결과가 참담했다. 아내의 사주는 좋다. 여기에 세세하게 소개 할 순 없지만 정말 좋다. 반면 내 사주는 형편없다. 골자는 “나이가 들수록 추레해진다. 자식들만 보고 살 팔자다” 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오더니 아내는 한 번씩 내가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휘적거리거나 떡 진 머리와 츄리닝 바람으로 뒹굴뒹굴 하거나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대면 “나이들수록 추레해진다더니...”하며 혀를 끌끌 찬다.


다시 생일이 다가오는 요즘, 아내가 설거지 하다 그런다. “당신은 정말 언제 태어난 걸까?” 구한말 사람도 아닌데 정확한 생일을 모른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몇 번 놀리다보니 또 재미있기도 한 모양이다. 나도 알고 싶지만 도리가 없으니 포기할 수밖에. 다만 바라는 건 아내가 본 나의 사주가 ‘완전 꽝’이었으면 한다는 거다. 나이들수록 추레해진다니...너무도 슬픈 이야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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