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고지는 대전이지만 평택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 숙소를 구해서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엔 사람만 둘이었는데...
나의 동반자가 완연한 봄의 5월에 하얀 구름 한 개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어렸을 때 이 하얀 구름에게 혼쭐난 이후에 난 그 종을 싫어했고, 그 종도 나를 싫어했다. 대신 강아지는 서로 미친 듯이 좋아한다.
여하튼 데려온 하얀 구름 고양이의 이름은 데려올 때도 그렇지만 내 동반자가 '호야'라고 일방적으로 지어서 불러버렸다. 이름은 한번 부르고 나면 바꾸기 어렵듯 내 의견이 반영 안 된 '호야'라는 이름도 정이 쉽게 가지 않았다.
아니 싫었다.
나는 저 하얀 구름 같은 고양이를 보는 순간 '베키'라는 이름이 떠올랐었다. 떡을 만드는 하얀 가루 같아서 한국말로 '백희'도 연상이 되고, 빵을 만드는 하얀 가루인 영어인 베이킹파우더도 연상시키는 이의적인 이름을 얹어주고 싶었다.
고양이의 종은 터키시 앙고라와 페르시안이 믹스된 오드아이를 가진 아름답고 우아한 녀석이었다. 도도하고 우아하고 심지어 까칠하기까지 한 호야는 내가 그동안 책으로만 배운 오드아이 고양이에 대한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나는 이번 생엔 고양이가 처음이라서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예뻐해야 하는지 모르는 백지였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대로 고양이인 호야를 강아지처럼 예뻐하고 기르기 시작했다. 목줄도 매서 산책도 시키고, 매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옆에서 자기를 부탁했지만 호야는 산책만 따라줄 뿐 나머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밥, 간식, 풀도 뜯어다주고 목욕까지 온갖 아양을 떨면서 부탁이 많은 내게는 곁을 내주지 않았다. 미웠다.
그러나 내 동반자는 호야를 존중해줬다. 호야가 스스로 오기 전까지는 만지지 않았고, 호야가 말 걸기 전에는 말도 안 걸었다. 호야는 그런 동반자를 더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호야는 겁이 많고 소심하고 조심성이 많은 녀석이다. 그러나 내게는 강력하다. 이빨을 드러내고 소리를 질렀고, 하약질은 기본이고, 깨물고 할퀴면서 내 피를 물 흐르는 것처럼 지켜봤다. 그래도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도도했다.
며칠 전 오전 숙소 주인이 TV 셋톱박스를 교체해야 한다고 연락이 왔으나 우린 둘 다 회사에 나왔었으므로 교체가 어려웠었으나 내 동반자의 과감한 결정으로 숙소 비밀번호를 주인에게 알려주면서 한키에 해결이 되었다.
집으로 퇴근한 동반자는 집 문을 열고 '호야'라고 한번 부르고 비번을 바꾸고 뒤를 돌아다봤는데.. 호야가 없더란다. 원래대로라면 호야는 앞발을 주욱 뻗으면서 우아하게 사부작사부작 소리도 없이 뒤에 와 서 있었야 했고, 눈이 마주치면 '야옹~'이라고 말을 걸어주어야 했다. 동반자는 덜컥 겁이 나서 '호야'라고 연거푸 부르자 3분 뒤쯤 어디서 '야아 아 아옹~'이라고 아주 작은 대답 소리가 들리더란다.
희미한 목소리를 듣고 찾아간 곳은.. 세탁기 뒤쪽이었다. 거기서 세탁기와 벽 사이의 공간에 얼굴을 반쯤만 보이면서 올려다보는 색이 다른 두 개의 눈동자가 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직도 겁이 잔뜩 들은 동그란 눈동자가 떨리는 녀석에게 '이제 나와도 돼. 나와 봐.. 아빠 왔잖아'하니까 슬금슬금 발을 뻗어 나와서 제 아빠의 발목에 온 몸을 비비면서 '야오오옹~'이라고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아빠.. 나 무서웠잖아.... 모르는 사람들이 막 들어와서 날 보고 놀래고, 툭 툭 툭 소리 내어서 내가 너무 무서워서 저기에 숨어있었어.... 야야 아아 아옹~"
그러는 거 같더란다. 나는 호야의 모습을 얼른 훑어보았다. 호야는 제 아빠와의 30분간의 시간으로 많이 안정이 되어있었다. 나는 호야의 발을 보는 순간 실소가 터졌다. 호야의 발이 까매졌기 때문이다. 나는 호야의 엉덩이를 살펴봤지만 엉덩이는 하얗다.
녀석의 예민한 성격에 아마 앉지도 못하고 내내 서있었을 것이다. 오전에 세탁기 뒤에 들어가서 오후 우리가 퇴근할 때까지 밖의 상황이 어떤지 몰라서 나오지도 못하고 그 좁고 어둡고 먼지 투성인 공간에서 서성였을 녀석을 생각하니 저 발이 왜 저리 까만지 알겠기 때문이었다.
"쟤, 발 좀봐... 오늘은 밤에 실신해서 자겠네... ㅋㅋㅋㅋㅋ "
"밤마다 우다다다 해서 한 번씩 깼는데 오늘은 진짜 떡실신이겠다.ㅋㅋㅋㅋㅋㅋ"
이런 대화를 하며 저녁밥을 먹고 치우고 씻고 커피를 한잔 타서 방으로 들어오던 나는 또 한 번 웃었다. 호야가 정말 떡실신을 하여 누워서 자고 있었고, 평소같으면 내 목소리,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실눈을 뜨고 '누가 목소리를 내었는가'하는 근엄한 얼굴로 제 신경줄을 건드린 나를 힐난하듯 쳐다봤을 호야가 눈도 안 뜨고 꿈나라에서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