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불명 한복 논란 / 출처 : 연합뉴스
서울 경복궁 앞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시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형형색색 반짝이는 금박 무늬가 박힌 화려한 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때문이다.
올해 7월,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역대 최대인 136만 명을 기록하며 ‘한복 입고 고궁 방문’이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가운데, 정체성을 잃은 ‘국적 불명 한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통 한복은 잘 나가지 않습니다. 사진이 잘 나와야 하니까 화려한 디자인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요.”
지난 4일 경복궁 인근 한복 대여점 ‘궁 가는 여우’에서 만난 중국인 점원 설지씨의 설명이다. 그는 금박 무늬가 붙어 있는 반짝이는 비단 치맛자락을 들어 보이며 “특히 이런 디자인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국적 불명 한복 논란 / 출처 : 연합뉴스
실제로 결제를 기다리던 외국인 관광객들은 대부분 금박이 화려하게 박힌 퓨전 한복을 입고 있었다. 팔이 비치는 시스루 저고리와 서양 드레스처럼 부풀린 링 속치마가 가미된 디자인도 눈에 띄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8일 발표한 ‘4대궁 및 종묘 한복착용 입장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은 172만 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4천700여명이 방문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퓨전 한복이 전통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8년 종로구청은 시스루 저고리나 짧은 치마 등 ‘국적 불명’ 수준으로 변형된 한복에 대해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당시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한복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변형되고 왜곡된 경우가 많아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국적 불명 한복 논란 / 출처 : 연합뉴스
현재 경복궁 인근의 일부 한복 대여점은 의상을 자체 제작하기도 한다. 한 대여업자는 “광장시장에서 원단을 구입해 매장에서 믹싱해 한복을 만든다”며 “금박 무늬도 하나하나 손으로 붙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격 경쟁이 심화되면서, 저가 한복의 경우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거나 중국산 원단이 혼용된 사례도 적지 않다.
또 다른 대여업자는 “만졌을 때 플라스틱처럼 느껴지는 등 재질이 떨어지는 경우 대부분 중국산”이라며 “겉보기엔 새 상품처럼 보여도, 대여료가 1만 원대라면 중국산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통 의복으로 여겨지는 한복이 중국산 원단이나 제품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한복의 정체성과 진정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전통성과 현대성의 공존을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전통 한복의 고유한 디자인과 재료, 색상, 착용법 등 핵심 요소를 보호하면서도 퓨전 한복과는 명확한 구분 짓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국적 불명 한복 논란 / 출처 : 연합뉴스
문화재청 등 공식 기관이 주도하는 ‘한복 인증제’ 도입을 통해 전통성과 품격을 유지하는 업체만 공식 인증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전통 한복 착용 예절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문화 체험의 품격을 높이고, SNS 등에서 공유되는 이미지의 전통성 왜곡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경복궁 앞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퓨전 한복 논란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전통의 뿌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