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울산 특산물 / 출처 : 연합뉴스
울산 정자항에 대게잡이 어선 한 척이 쓸쓸히 정박해 있다. 한때 40여 척의 어선이 바다를 가득 메우며 ‘정자대게’의 전성시대를 이끌던 이곳에는 이제 단 한 척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울산 앞바다는 한때 대게의 보물창고로 불렸다.
2003년, 국립수산과학원이 울산 연근해를 대게의 주요 서식지로 공식 확인하면서 정자항은 대게 조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정자대게’라는 브랜드가 탄생했고, 곧가자미와 돌미역과 함께 울산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자리매김했다.
정자대게의 성장세는 눈부셨다. 통계청 어업생산동향조사에 따르면, 2003년 213톤이던 대게 생산량은 2004년 442톤, 2005년에는 654톤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2006년에도 570톤이 어획되며 초매식까지 열리는 등 지역 특산물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사라지는 울산 특산물 /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2015년을 기점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어획량은 74톤으로 급감했고, 2016년에는 34톤, 2019년에는 23톤까지 추락했다. 2024년에는 65톤을 기록했지만, 이는 전성기였던 2005년에 비해 90% 이상 감소한 수치다.
지난 11일 정자항에서 만난 한 상인은 러시아산 대게로 가득 찬 수조를 가리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금어기가 끝나면 정자대게도 들어오긴 해요. 하지만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죠. 몇 년 전부터는 대게 위판도 하지 않고 있어요.”
윤병구 울산근해자망선주협회장은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대게 어획량이 줄다 보니 조업을 해도 수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어선들이 대게잡이를 포기하고 가자미 조업으로 전환했어요. 지금 대게를 잡는 배들도 수심이 깊은 먼바다까지 나가서 조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게 어획량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는 수온 상승이 지목된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올해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바다의 연평균 표층 수온은 18.74도로, 최근 57년 중 가장 높았다. 동해는 18.84도로 집계됐다.
사라지는 울산 특산물 /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온 상승 외에도 다양한 복합적 요인을 지적한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울산 앞바다는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는 구간이 있어 대게 서식지가 넓지 않았다”며 “자원이 유지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한 어획으로 인해 고갈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울산은 대게가 서식하는 국내 최남단 지역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수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보다 적합한 환경을 찾아 이동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울산 앞바다의 변화는 대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상에도 올랐던 강동 돌미역 역시 위기에 처해 있다. 정자항에서 돌미역을 팔고 있던 김용순 씨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작년 같았으면 지금쯤 수확을 다 마쳤을 텐데, 요즘은 파도가 너무 세서 미역이 제대로 자라질 못했어요.”
사라지는 울산 특산물 / 출처 : 연합뉴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울산 앞바다에 풍랑특보가 발효된 날은 총 104일이었다. 2022년 67일, 2023년 63일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잦은 풍랑 탓에 해녀들의 ‘바위 닦기’ 작업이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미역이 바위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다.
돌미역 채취량도 크게 줄었다. 울산 북구에 따르면, 2021년 255톤이던 돌미역 생산량은 2023년 147톤으로 3년 사이 40% 이상 감소했다. 같은 기간 양식 미역은 116톤에서 119톤으로 소폭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불법 해루질도 어민들의 또 다른 고민거리다. 울산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전복, 미역, 뿔소라 등을 노린 해루질 절도 사건은 총 23건 발생했다.
김재선 울산해경 계장은 “미역이나 전복 같은 경우, 야간에 문어를 잡는 어업인들이 몰래 채취하는 사례가 많다”며 “야간 작업을 제한하는 조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