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아이
검정이는 핑크를 사랑하던 내가 어느 순간 검정색 옷들과 머리핀을 착용하면서 알게 된 감정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불안할 때, 하는 방법이 다르다. 누군가는 불안을 잠재우려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기도 한다. 나는 예쁜 걸 산다. 핑크색 리본, 네잎클로버 귀걸이, 예쁜 핑크색 잠바 이런 것들을 사고 입고 나를 예쁘게 꾸며주면 그 불안이 가신다. 잠시뿐인 처방인걸 알지만, 그게 필요할 때가 있다. 너무 무너져갈 땐, 그런 것들이 나를 살게 하니깐.
그러다 자꾸만 요새 예전처럼 무채색에 손이 간다. 신기하게 그때 그때 맘에 따라 손이 가는 게 다르다. 빨강, 노랑, 핑크, 초록, 반짝이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그 당시 나의 텅 빈 어떤 결핍과 같은 마음을 채우고 싶어 다른 것들을 산다.
핑크는 사랑받고 싶었던 내 마음의 상징이었다면, 검정은 그냥 있는 그대로 더 깊은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태어난 아이다.
이 아이는 밤의 향기와 큰 고목 아래 비 온 뒤 젖은 흙의 향기가 나는 아이다. 크게 말수가 없지만,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느낄 때 내손을 꼭 잡아주거나 조용히 뒤에 서 있는 친구다.
꾹이가 조금만 더 참아보자라는 미래의 희망을 한 톨이라도 붙잡는 아이라면 검정이는 그것조차 없는 상태, 온몸으로 그만을 외치는 상태에서 "괜찮아, 나는 감쟈가 얼마나 깊은 사람인지 알아. 그러니 이대로,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아도 전부 다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친구다.
그래서 꾹이랑 검정이가 같이 있는 날은 회복의 전환점이 되는 날이다.
눈물이 나는데,
“그래도 내일은 살아야지…” 하고 가만히 이불을 덮을 때.
아무 말도 하기 싫지만, 글로나마 마음을 남기고 싶은 밤.
너무 무너졌는데, “그래도 다시는 그렇게 사랑하지 말자…”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그런 날.
살고 싶은 마음과 너무 아픈 마음이 동시에 오는 날 이 둘은 내 손을 꼭 잡아준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감쟈는 아직 감쟈를 포기하지 않았구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