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참아이, 외로이, 눈치이, 자책이
이유 없이 짜증이 올라와 그린티프라푸치노를 사들고, 한강을 갔다. 사람들이 많았고, 누군가는 뛰길래 저러면 좀 기분이 좋아질까 싶어 같이 뛰어도 보았다. 그러다, 옹기종이 돗자리 펴고 앉아있는 사람들 틈 나 혼자 걸으면서 이번엔 또 외롭지 않은 신기한 경험 속 나는 한국산 감정이 들을 만났다.
왜 나는 그토록 힘들었을까?
그 수많은 뿌리엔 한국산 감정들도 한몫을 했다. 집단주의 속, 흔히 말하는 군중 속의 나는 그러면 안 돼. 넌 너무 생각이 많아. 그런 표현은 하면 안돼. 이 정도는 참아야지. 남들도 다 이 정도는 하잖아. 좋은 대학 가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야 해.
근데 그건 내가 안게 아니야. 내가 깨달은 게 아니야. 저런 비싼 아파트 말구, 집은 그냥 내 몸 하나 편히 쉴 곳이면 되는걸. 왜 나는 여기서 끊임없이 도토리 키재기를 한 걸까.
툭ㅡ 눈물이 났다. 그때 5명의 감정 친구들이 태어났다.
1. 정이
: 초코파이 정. 우리나라의 한과 더불어 대표적 민족 정서인 정이는 한복 치마에 넝쿨 같은 띠가 감겨 있다.
웃고는 있는데 눈가에 살짝 눈물 맺혀있다.
손에 노리개를 쥐고 있는 아이다. 웃고는 있지만, 가끔은 자기 뜻은 아니다. 부담스러울 때도 고맙다 웃는 아이. 그저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연결되고 싶지만 정이라는 이름 아래 가끔은 너무 외로운 아이다.
2. 참아이
작은 아이인데, 등에 큰 돌문 같은 방패를 짊어지고 있다.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입술 깨물고 있는 게 습관이다. 참아이가 들고 있는 돌 위에 '참아야지' 글자 살짝 새겨져 있다.
이 정도는 참아야지. 남들도 다 힘들어. 넌 그것도 못 참니?. 지금 참아야 나중에 뭐든 되지? 늘 지금을 마음대로 살지 못한 아이. 그 마음이 돌덩이가 되어 내려앉은 아이가 참아이다.
3. 외로이
이 아이는 집단주의 버전의 진화한 한국산 외로 이다. 단체사진에 껴 있는데 고개는 살짝 옆으로 돌리고 있다. 웃으려 하지만 눈빛은 텅 빈 느낌. 종이등불을 들고 있는데 불은 꺼져 있다. 모두가 함께 있는데, 연결되지 못해서 더 외로워져 간 아이. 그 아이가 한국산 외로이다.
4. 눈치이
머리에 작은 안테나와 레이더 달린 아이다. 항상, 눈 크게 뜨고 사방을 살피는 중이다. 스마트폰에 "읽음 1" 떠 있는 화면 들고 있다.
조금만 뭐라 하면 나한테 하는 말인가 하면서 심장이 쿵쿵거린다. 괜히 가만히 있으면 더 눈치 보이고, 숨 막히는 분위기를 제일 힘들어한다. 제일 싫어하는 말은 그 정도는 눈치 껏 알아서 해야지...
5. 짜증이+자책이 (콤보)
김 나는 고구마 같은 짜증이가, 옆에 무릎 꿇은 자책이를 데리고 있다.
짜증이는 “하아…” 한숨만 쉬고, 자책이는 땅만 보고 있다.
작은 주머니 안엔 “내 잘못인가 봐”라고 적힌 종이들이 잔뜩 들어있다. 내가 너무 예민하구나. 남들 다 똑같이 하는데 나만 못하는 거구나. 나만 쓸모없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짜증이 집단 속에서 자책이 되어버려 항상 같이 다니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들에게 한국산이란 택을 떼기로 했다. 잘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 아이들이 진짜 이름을 찾도록 곁을 지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