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회복은 닮았다. 내가 바라는 현실과 회복은 직선이었는데, 사실은 한참 그 아래서 나는 좋았다 나빴다를 오고 갔다. 한 때, 한참 의욕이 앞서 공부했던 미주식 그래프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 사이 간극은
기대 내가 뻗은 가능성.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희망 그 가능성이 현실로 닿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두려움 혹시 안 닿으면 어쩌지?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닐까?,
절망 손을 뻗었는데 닿지 못했을 때, 되돌아온 공허함
고통 내가 진짜 원했기 때문에 생긴 흔적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고통과 절망은 내가 진짜 삶을 살아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고통일뿐인걸. 그래서 우리는 결국 누군가와 연결되길 원하고, 또 의미를 창조해 내는 삶을 반복하는가 보다.
"의미가 없음을 앎에도 또다시 무언가의 의미를 창조해 내는 것."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또다시 인연을 갈망하고 연결되는 것."
이것을 뛰어넘는 인간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이건 받아들여하는 숙명일까?
<한 바퀴 돌아 또다시 같은 질문>
온전히 받아들이고 의미를 포기하면 뭔가 알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고 또다시 제자리걸음 질문을 한다.
이걸 죽을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니. 사람들이 미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 해도 대단하지 않을까.
고통과 절망에서는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게 전부일까. 아니, 사실 그것조차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나선을 한 바퀴 돌아, 다음 나선으로 가기 전 휘어지는 곡선에서 나는 무언가 달라진다 믿었다.
그렇지만 예전과는 다른 시점으로 또다시 같은 질문을 한다.
엄마한테 물었다.
" 엄마는 의미가 없다면 어떻게 살 거야?"
"내일이 와도 언젠가 좋은 날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 거야?"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면?"
엄마가 헛소리하지 말고, 운동이나 가라고 하셨다. 다들 같은 마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