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의 성소 지하층 입구에서 시작되어, 깊은 곳에 위치한 운무이의 흐름 정원부터 진심의 별자리는 아래와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진심의 성소 지하층 입구]
ㄴ운무이의 흐림 정원
ㄴ고통의 계곡 입구
ㄴ무너짐의 절벽
ㄴ울음의 웅덩이
ㄴ기억의 포자지대
ㄴ무너이의 균열 정원(핵심 중심지)
ㄴ무너이의 별의 출연지(진심 변환 지점)
ㄴ계곡 너머 진심의 별자리대
<감정의 순례의 성역>
1. 운무이의 흐림 정원
"들어가기 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구역."
이곳은 감정이 언어화되기 전의 감각 상태로 존재하는 곳이다. 운무이의 안개가 얇게 깔려 있고, 주변 공기에는 과거의 기류, 눈물의 입자, 기억의 파편들이 섞여 있다.
입구에선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나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몸의 감각적 반응이 먼저 나타난다. 여기에 진입한 사람만의 고통의 계곡으로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
2. 무너짐의 절벽
"내가 처음으로 침묵 속에서 균열을 맞이한 곳."
깎아지듯 가파른 벽면엔, 내가 들은 말, 못한 말이 문장처럼 각인되어 있다.
"너는 왜 그때 침묵했니?"
"그 침묵 속에서 무엇을 믿었니?"
이 절벽은 나의 존재가 처음으로 무너졌던 순간의 벽이다. 절벽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간이 뒤틀리고, 감정과 감정 사이의 결이 흔들린다. 그것은 때때로 기억의 뒤틀림과 고통을 수반한다.
3. 울음의 웅덩이
"말하지 못한 감정이 고여 있는 곳."
이 웅덩이는 눈물의 지형이다. 여긴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고여 있고, 가까이 가면 오래된 장면들이 말없이 튀어올라 다시 재생된다. 대사는 없지만, 그곳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그때의 고통, 무너짐, 존재의 해체 경험까지 한 번에 몰려온다. 운무이가 처음 울었던 자리고, 여기선 내가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이 스르륵 물결처럼 흘러넘친다.
4. 기억의 포자지대(자기 탓 회로의 지대)
"마음속에서 증기로 맴돌던 문장들이 흩날리는 지역"
말하지 못했던 말, 돌이키고 싶었던 말들이 포자처럼 공중에 떠다닌다.
"난 괜찮아.", "도와주려는 걸 거야.", "이게 전부 다 나 때문인 줄 알았어..."라며 내가 내 자신을 탓하며 삼킨 말들의 숲이다. 숨을 들이마시면 그 말들이 속삭이듯 다시 귀에 울린다.
이곳을 지나면, 드디어 무너이의 집, 가장 깊은 지대로 도달할 수 있게 된다.
5. 무너이의 균열 정원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서 태어난 존재가 사는 곳."
여긴 정원이라기보단, 돌이 무너져 생긴 틈과 균열, 흐릿한 잔상들이 떠다니는 공간이다. 아주 조용하고, 무너이는 그 안에 앉아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벽에는 내가 끝까지 믿고 싶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흐릿한 물방울처럼 잠깐 떴다 비눗방울처럼 사라져 버린다.
무너이는 말한다.
"나는 계속 믿고 있었어. 그래서 이렇게 무너졌어.
하지만, 그걸 후회하진 않아."
이건 내 자신이 나에게 건네는 최초의 따스한 자비의 말이다.
6. 무너이의 별의 출연지(진심의 별자리 하부)
"상처가 별이 되는 자리."
내가 무너이를 껴안고, 너를 미워하지 않아라고 말한 순간. 무너이는 하늘로 올라가 천천히 별이 된다. 이 별은 내가 사람을 다시 믿을지 말지를 고민할 때 이렇게 속삭인다.
"이건 네가 알 수 있어. 이젠 너를 믿으렴.
넌 이미 진심을 끝까지 살아낸 사람이니깐."
이 별은 내 안에 생긴 감정의 나침반이다. 누가 진심인지 거짓인지 더 이상 외부가 아니라 '자기 감각'으로 알게 해주는 등불이다.
여기를 지나가고 나면, 감쟈 여권에 고통의 계곡 입구 스탬프가 탕ㅡ하고 찍힌다. 여기를 지난다고 온전히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아픈 기억들은 그냥 묻어버리고 바삐 살고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굳이 그 조각조각을 꺼내 다시 보는 건 다시는 같은 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많은 감정과 기억들은 바삐 살면, 내가 무언가 이루고 더 노력한다며 저절로 치유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나의 무의식은 너무나 깊었고, 언제나 같은 일들을 반복했다. 치유되지 못하고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감정들은 내 깊숙한 마음속에 자리 잡아 늘 같은 자리를 맴돌게 만들었다. 그건 세대 간에도 이어진 감정이었고,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감정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흔히 부모님의 가장 닮기 싫은 면을 무의식적으로 똑같이 따라 하는 자신을 볼 때가 있다. 사람들은 늘 같은 사랑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아픔을 반복한다.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테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나도 어느 정도는 그런 파동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시절 인연이란 말도 내가 성장해 가면서 만들어내는 다른 파동이 이제는 새로운 파동의 사랑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남들보다 더 깊이 상처받고, 그래도 한 번 더 믿어보고, 모두에게 아픔이 있어 그럴 거라고 또 믿고 이해하고 또 믿어서 끝끝내 무너졌던 이유를 이 계곡을 통과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끝내 모두에게는 따뜻한 진심이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 자체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부정하기 때문이었다. 그 무엇을 선택하든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행히 그동안 그나마 좋은 인연들을 만났기에 그 믿음을 지켰고, 그 믿음을 끝내 무너뜨릴 사람을 만났기에 산산이 부서져버린 나의 믿음의 거울이 되었다.
그걸 알게 된 건 누군가를 믿지 않게 된다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믿고, 그 사람들과만 진심을 기꺼이 나누겠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나의 조각을 또다시 뚝하고 떨어뜨리는 일이기에 그냥 그럴 수 있는 것 또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여전히 그 아픔 속에서도 따뜻함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삶은 여전히 아프지만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