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없었다. 다만, 길은 보였다.

by 윤슬하


그때의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 고통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그렇게 믿으며 견뎠다.


이유가 없는 고통도 있다는 말은
내가 붙잡고 있던 기둥 하나를
툭— 부러뜨렸고,


지금껏 쌓아온
나의 모든 이미지와 신념이
살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과 같다는 걸 깨닫는 순간
마지막 남은 기둥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렇게 쌓아올린
나의 두 번째 삶은
무언가 다를 거라 여겼지만,
영화 같은 일은 없었다.


다만—
내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
그 길이 어디쯤인지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누워 있는 나를 탓하지 않고,
하루하루
자책 대신
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게 되었다.


불평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아프다 운다고
세상이 친절해지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누구보다 나를 지켜야 한다.
부지런히 배우고,
아프더라도 다시 운동하고,
쉼에도 죄책을 갖지 않으며,
거절에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건—
나의 가치와 상관없는
그저 환경과 사람의 한계일 뿐이다.


탓할 시간에
조금 더 나를 돌보고—
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깨달음은 내게
그렇게
새로운 길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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