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매일 같지 않았다.
어떤 날은 잠깐 스쳐가는 이슬이었고,
어떤 날은 온 세상을 무너뜨릴 만큼 쏟아졌다.
그날은, 후자였다.
우산을 써도, 어디로도 피할 수 없는 비.
나는 진료실에 앉아 조심스레 물었다.
“그냥… 제가 서 있는 자리에 비가 많이 온 것뿐이에요?”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믿고 있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하루를 버틸 수 있다고.
그래야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그날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보냈다.
그게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인 줄 알았다.
고통에도, 눈물에도 이유가 있어야
비틀거리더라도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말했다.
“세상엔 의미 없는 일도 있어요.”
그 한마디에
살기 위해 붙잡고 있던 문장이
툭— 부서졌다.
그 비는,
그저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많이 내렸을 뿐이었다.
누구 때문도, 내가 잘못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쏟아진 거였다.
피할 수도, 도망칠 힘도 없어서
나는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무릎 꿇듯 앉아 있는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아?”
아주 다정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렇게라도 버텨준 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준 너.
정말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