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연필이 너무 멀었다.

by 윤슬하


요즘은 문구 코너 앞에만 서도

마음이 먼저 멎는다.


별일 아닌 것들이,

살아야 했던 날들엔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나는 그때,

연필 하나를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불안은, 방법이 없어요.

노력하는 수밖에요.


그림을 그린다든가, 신경을 돌릴 수 있는 걸 해보세요.”


살아야 하니까,

그림을 배우기로 했다.


미술 선생님은 말했다.

“다음 시간엔 4B 연필 사 오세요.”


나는 다이소에 갔다.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사람들이 뿌옇게 보였다.


분명 현실인데,

어딘가 비현실 같았다.


그때 나는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간신히 걸어서 학용품 코너에 도착했다.


“다섯 개만 있는 거 사야지.”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런데, 없었다.

너무 많이 들어 있거나

다른 종류의 연필만 있었다.


그 순간,

불안이 나를 덮쳤다.


“집에 갈래.

제발, 아무거나 사서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어.”


나는 아무 연필이나 집어 들고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가만히 곰인형을 꼭 안고

조용히 누웠다.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연필을 사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아니, 살아가는 일이.

지금 이 순간을 넘기는 일이

이렇게 버거운 일이었구나.


그날 이후,

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사소한 일’이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연필 하나는,

생의 끝자락에서 붙잡은

마지막 끈일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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