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괜찮아요’가 입에 붙었다.
아파도, 피곤해도, 힘들어도
나는 늘 ‘1인분’을 해내야만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눈을 감으면
“조금만 더 버티자”는 말이 습관처럼 떠올랐다.
다음 날 출근해서 웃고, 회의하고, 농담도 했다.
겉으론 아무 문제없어 보였을 거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사소한 일 하나가
나를 툭— 끊어버렸다.
작은 메일 하나, 짧은 질문 하나에도
숨이 턱 막히고, 대답이 두려워졌다.
그제야 알았다.
내 안의 ‘버티기’가 이미 한계를 넘었다는 걸.
나는 생각했다.
2 달이면 충분할 거라고.
그 정도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마지막 출근 날, 진단서를 제출하며 팀원들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그리고 말했다.
“1인분을 못해서... 죄송해요.”
나는 웃고 있었지만, 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날 이후, 비로소 나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쉼’이라 불리는 시간.
그런데 이상했다.
기다리던 쉼이었는데, 그 시간이 오히려 나를 천천히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밥도, 책도,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망가져 있었다.
나는 간절히 물었다.
“세상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누군가는 말했다.
영화를 보든, 잠을 자든, 게임을 하든 시간을 보내보라고.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볼 수 없었고,
잠들 수도 없었고,
게임을 켜는 일조차 버거웠다.
불안은 짙어졌고,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생각보다 훨씬 더 버겁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이제 회사로 돌아갈 수 없나?’
그 말을 꺼내자,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해요? 에이~ 실망인데요.”
그 순간, 조금 혼란스러웠다.
왜 실망이라는 걸까.
내가 그렇게 나약하게 보였던 걸까.
그 말의 뜻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건 내가 끝까지 무너졌다고 믿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그래야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까.
‘끝’이 아니라 ‘지금’에 머무를 수 있게 하려는, 한 사람의 배려였다.
나는 이제 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단순한 말로는
닿지 않는 고통이 있다는 걸.
‘충분히 쉬면 다 나아진다’는 말이
어쩌면 가장 잔인할 수 있다는 걸.
쉼이라는 이름의 시간은,
나를 천천히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파도였다.
그 안에서 나는
버티는 법이 아니라,
울어도 괜찮은 법을 배웠다.
아무것도 못해도
나는 존재했고,
나의 마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