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짖는 플라스틱 햄버거 가게
켄 리우 "종이 동물원" 을 읽고
안녕하세요. 봄비가 그치고나니 날이 쌀쌀하네요.
봄이 조금씩 다가오는 3월의 두번째 주말,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이틀동안 아이와 함께 블록으로 햄버거 가게를 만들었습니다. 패티에 토마토에 야채까지 알차게 든 데다가 반으로 갈라지기도 하는, 꽤나 멋진 햄버거 가게였습니다. 하지만 멋진만큼 만들기에도 공이 들어 주말내내, 함께 나들이간 카페에서까지 붙잡고 있었네요. 아이와 아내까지 옆에서 스티커를 붙이고 필요한 블록들을 찾아주며 열심히 거들었죠. 아이는 완성된 블록을 들고 신나서 "아빠는 손님해, 나는 요리사할게! " 라며 돌아다녔지만 이미 블록 조립에 지쳐버린 저는 "응응" 하고 대충 대답하고는 뻗어버렸습니다. 평소같으면 안놀아준다고 짜증을 냈으련만 햄버거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건지 아이는 그러고도 한참을 혼자 주인과 손님역할을 주거니받거니하며 놀더니 잠들때도 침대 옆에 곱게 올려두고 잠들었습니다.
아이가 잠들고 겨우 정신을 차린 저는 얼마전 읽었던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 이라는 책을 다시 펴보았습니다. 산지 일년은 지난듯 한데 아직도 단편집의 첫이야기밖에 읽지 못한 책이죠. 실은 처음 이야기가 너무 아름답고도 가슴아프게 남아 다음 이야기로 차마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줄거리는 단편인만큼 길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결혼이주를 한 여성이 이야기의 화자인 아들과 겪는 갈등이 주 내용이라고 해야할까요. 이야기는 짧지만 저는 며칠을 잠들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을 묘사하는 짧은 문장에서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뵙고 올라오던 길에 기차 창 밖으로 보이던 석양이 겹쳐보이더군요. 그리고 제 일상은 계속 흘러갔죠. 유유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딱히 아버지를 다시 떠올릴 일은 없었습니다. 제 아이를 만나기 전엔 말이죠.
아이가 커가고 있습니다. 어느새 이빨이 두개나 빠지고 팔다리가 쭉쭉 늘어나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도 제법 똑똑하게 가사를 따라 부르고 아빠를 잠만 잔다고 혼내다가 사이좋게 지내자고 어르기도 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짜증을 내다가 마구 빰을 부비다가 문득 불안해져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딸, 커서도 아빠랑 놀아줄거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결국 아이가 지금 저와 아내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기억너머로 사라지고 아이는 자신의 과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나아가겠죠. 하지만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아이가 저를 어떻게 얼마나 떠올리게 될지, 어떤 모습으로 가슴 어딘가에 간직하게 될지 그런 질문에는 자신이 없어지네요. 바로 어제도 "아빠 화내지마" 라며 몇 번이나 울먹였으니까요.
늦은 밤 야근을 끝내고 들어가면 언제 울먹였냐는 듯 아이는 벌떡 일어나 제게 달려오겠죠. 물론 만화를 본다고 본체만체하는 날이 요즘은 더 많지만요. 저는 블록을 좀 더 많이 만들겁니다. 플라스틱 덩어리들이 아이에게 닿아 마법처럼 살아움직이는 걸 더 보고싶으니까요. 마치 종이 호랑이가 울부짖듯 제 플라스틱 햄버거 가게도 울부짖을겁니다.
"으르라앙"